유족, 승소에 채권 압류·추심명령도
경문협 지급 거부해 추심금 소송까지
2심도 패소 판결…“채권 존재 안 해”
경문협, 과거 北에 사용료 지급했는데
“이용자, 직접 지급 어려워 ‘위탁’한 것
경문협·北, 지급 합의했다 볼 수 없어”
北, 권리 주체 될 수 있는진 판단 안 해
유족 “이해 안 되는 판결”…대법 상고
“北, 경문협 안 주면 달라 못 한다는 것”
다른 유족, 국군 포로들도 추심금 訴
전시 납북자 유족과 탈북 국군 포로들이 북한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잇따라 승소하고도 배상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사장 임종석)이 징수한 북한 저작권료 수십억 원이 쌓여 있는데도 그렇다. 이 돈을 피해자들 배상금으로 쓸 수 있을지,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전시 납북자 딸인 A씨는 경문협을 상대로 한 추심금 소송을 원고 패소 판결한 항소심 결과에 불복해 지난 11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A씨는 “북한의 불법행위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 위자료 5000만원을 지급하라”며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2021년 승소했다. 6·25전쟁 당시 경찰이던 A씨 부친은 강제로 납북돼 행방을 모른다. 이 판결은 ‘공시송달’로 확정됐다. 공시송달은 소송당사자 주소 등을 알 수 없어 송달할 서류를 법원에 보관하고 그 취지를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에 게재해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법원은 A씨가 경문협의 북한 저작권료에 대해 신청한 채권 압류 및 추심명령도 받아들였다. <세계일보 2022년 8월15일자 10면 참조>
경문협은 2005년 북한 저작권사무국, 민족화해협의회와의 ‘합의’에 따라 국내 방송사 등으로부터 조선중앙TV 영상물을 비롯한 북한 저작물 사용료를 걷는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대북 송금 길이 막히자 남북저작권센터와 ‘협약’을 맺고 북한 저작권 대리·중개 사업을 위임했다. 이 센터는 경문협이 만든 주식회사다.
센터는 2009년부터 경문협을 피공탁자로 해 서울동부지법에 북한 저작권료를 공탁하고 있다. 이 돈은 2020년 기준 23억여원에 달했는데, 매년 2억원 안팎 늘고 있다. 경문협이 “북한 저작자들에게 줄 돈”이라며 배상금 지급을 거부하자, A씨는 추심금 소송에 들어갔다.
A씨 측은 북한 저작권사무국이 북한 기관인 점을 들어 1·2심에서 “북한이 합의 당사자로 권리 의무 귀속 주체”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은 “북한은 경문협에 대해 피압류 채권을 갖는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며 경문협 손을 들어줬다. 북한이 권리능력과 당사자능력을 향유하는 단체가 아니라는 취지다.

2심을 맡은 서울고법 민사4부(재판장 이광만)는 지난달 27일 “피압류 채권, 즉 이 사건 합의에 따라 경문협이 징수한 저작물 사용료에 대해, 북한이 경문협에 대해 갖는 지급 청구 채권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북한이 권리능력이나 당사자능력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 없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다”면서 A씨 항소를 기각했다. 경문협이 북한 저작물 사용료를 국내 이용자에게 받아 북한에 주기로 합의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2005년 경문협이 북측과 합의에서 ‘북한 저작물 사용을 원하는 자와 포괄적인 사전 협상을 할 수 있는 권한’만 부여받았고, 사용료 수령 등에 대한 권한까지 부여받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경문협이 2005∼2008년 국내 이용자에게 받은 사용료를 북한에 준 건 “방송국 등 이용자가 직접 북측에 사용료를 지급하기 어려워, 경문협 또는 남북저작권센터에 지급을 위탁하기로 그 이용자와 경문협 또는 센터 간 합의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런 사정만으로 경문협이 북측에 사용료를 보내기로 북측과 합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A씨 측은 “이해가 안 되는 판결”이란 입장이다. 소송 대리인 구충서(사법연수원 7기) 법무법인 제이앤씨 대표변호사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경문협이 북한 저작물 사용료를 북한에 보내 주라는 이용자 부탁에 이를 위탁받아 보낸 것이지, 경문협이 북한에 보내 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게 아니고, 북한도 경문협이 주지 않으면 달라고 못 한다는 것”이라며 “이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구 변호사는 “2심 재판부가 북한이 권리능력과 당사자능력이 있는지 등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아 이 부분은 대법원에서 다툴 수 없게 됐다”고 했다.
2020년 북한을 상대로 한 손배소에서 첫 승소 판결을 받아 낸 탈북 국군 포로 고(故) 한재복씨와 노사홍(94)씨도 A씨와 똑같은 법적 절차를 거쳐 경문협에 대한 추심금 소송 2심을 진행 중이다. 재판 장기화에 한씨는 결과도 보지 못하고 올해 2월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국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위당 정인보 선생, 국내 1호 변호사인 홍재기 변호사 등 다른 전시 납북자 10명의 유족 12명도 지난해 북한 상대 손배소에서 이겨 경문협을 상대로 추심금 소송을 냈다. 두 사건 모두 서울동부지법에 계류돼 있으며, 구 변호사가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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