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배달’ 문화 탓 무리하게 주행
신호 무시 인도·횡단보도 침범 ‘만연’
헬멧 미착용에 불법 좌회전 시도까지
귀가시간에 스쿨존서 과속·역주행도
코로나 후 이륜차 사고 年 2만건 넘어
매일 55건… 2022년 484명이 목숨 잃어
추적시 2차사고 우려 경찰 단속 난항
“배달료 현실화 등 업계 체질개선 시급
전면 번호판·적재 기준 제도화” 지적
“아이고 어떡해, 음식도 다 쏟아졌네.”
지난 13일 오후 서울 노원구 동일로 지하철 7호선 마들역 인근 사거리 횡단보도가 오토바이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순간 난장판이 됐다. 급하게 우회전하던 125㏄ 배달용 오토바이가 넘어지면서 배달통에 있던 돈가스덮밥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팔꿈치가 쓰라린 듯 팔뚝을 움켜쥐며 일어섰다.

이 오토바이는 무리하게 속도를 높여 우회전하다가 횡단보도 신호등에 녹색불이 들어오자 길을 건너려는 사람을 피하려고 급정거해 중심을 잃고 자빠진 것이다. 하마터면 보행자를 칠 뻔한 아찔한 장면이었다.
운전자 본인은 물론 다른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오토바이의 폭주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시민의 절대 안전구역이어야 할 인도와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사이를 질주하고 차로에서는 아슬아슬 곡예운전으로 차량 흐름을 방해하는 길 위의 난폭꾼 오토바이. 오토바이의 무법질주는 막을 수 없나.
◆인도 질주, 신호위반 일상
도로교통법상 오토바이는 자동차와 동일하다. 인도, 횡단보도 주행은 엄연히 불법이다. 매 끼니부터 커피, 디저트, 세탁물까지 30분 안에 오토바이로 배달되는 초고속 배달세상이 도래하면서 오토바이 폭주는 경찰도 손을 놓은 듯 일상화하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10시 찾은 서울 동대문 일대의 패션타운은 배달 오토바이의 성지 같은 곳. 이곳 오토바이들 뒷좌석에는 비닐로 싸인 3~4개의 의류 더미를 받치는 기다란 철대가 설치돼 있다. 한가득 쌓인 옷더미를 끈으로 두어 번 동여맨 오토바이들이 도매상가와 소매업체, 택배사 사이를 밤새 분주히 오간다.

동대문 패션타운의 대표 상가 ‘apm 패션몰’ 인근 사거리 교차로에는 수십 대의 오토바이가 신호를 어긴 채 보행자 사이를 질주하는 야단살풍경이 펼쳐졌다. 오후 10시쯤부터 30분간 보행자 신호등에 10번의 초록불이 들어올 동안 총 58대의 오토바이가 사거리로 달려왔다. 멈춰선 오토바이는 단 5대뿐이었다. 나머지 오토바이는 속도만 살짝 낮춰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달려갔다. 오히려 속도를 높여 좌회전을 시도하는 오토바이도 있었다. 수차례 길을 건너기 위해 뛰어오는 시민과 오토바이가 충돌할 뻔한 순간이 포착됐다. 몇몇 라이더는 헬멧도 착용하지 않은 채 인파 속을 뚫고 나아갔다.
시민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패션타운 인근에 거주하는 윤모(26)씨는 “이 동네 길목에는 도매상들 트럭도 많이 주차돼 있어서 길도 좁은데, 갑자기 나타난 오토바이들이 과속해서 부딪힐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문제는 오토바이의 무법질주가 특정 시간,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배달 증가와 함께 배달 라이더(Rider)가 급증하면서 촌각을 다투는 배달전쟁이 속도전쟁을 야기하고, 속도전쟁은 다시 시민안전을 위협하는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1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배달업에 종사하는 배달원 수는 지난해 상반기 23만7188명으로,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19년(11만9626명)보다 거의 2배 증가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오토바이 사고 건수는 매년 2만건을 넘고 있다. 매일 약 55건의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오토바이 사고로 지난해만 484명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오토바이 폭주, 스쿨존도 무방비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도 오토바이 무법천지다.
지난 12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학동초등학교 정문 앞에는 방과 후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학동초교 앞 도로는 폭 8m 미만(도심부 이면도로 기준) 스쿨존으로, 서울시가 2월 발표한 보호구역 종합관리대책에 따라 제한속도를 시속 30㎞에서 20㎞로 낮춘 곳이다. 이곳은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차단봉이나 연석, 펜스 등이 없어 더욱 운전자의 주의가 필요하다.
인근에는 차량의 현재 속도를 표시하는 안내판도 설치돼 있다. 이곳을 지나는 오토바이는 어떨까. 1시간여 동안 학동초 정문 앞을 지나간 배달 오토바이 18대 중 15대가 기준 속도를 훌쩍 넘겼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학부모 차량을 피해 인도를 침범해 달리는 오토바이도 있었다.

한 아이가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보며 “야, 차 오는데 뛰면 어떡해”라며 친구를 붙잡았다.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오토바이가 먼저다. 일방통행을 무시하고 역주행하는 오토바이도 4대나 포착됐다. 해당 학교 보안관은 “구청에서 눈 올 때 도로가 얼지 말라고 열선을 깔아 줬는데, 그건 차량을 위한 것”이라며 “학생들 안전을 위해서라면 차단봉을 설치하고, 오토바이 역주행 단속카메라부터 설치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오토바이 폭주 단속과 관련해 “오토바이는 자동차에 비해 차선변경이나 역주행, 심지어 인도 주행으로 자유롭게 도망칠 수 있다”며 “경찰이 추적하다가 오토바이가 넘어져서 다치거나 사망하면 경찰이 무리한 법집행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어서 이래저래 단속이 어려운 편”이라고 말했다. 공권력의 사각지대가 발생하면서 폭주 오토바이 운전자가 활개 치는 셈이다.
정미경 도로교통공단 책임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배달 오토바이 운전자의 약 39.8%가 과속,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등의 행태를 보였다. 정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배달 오토바이 운전자는 위험 운전 행동의 위험성이나 법규 위반 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이동시간 단축과 경제적 이익을 위해 고의로 법규를 위반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운전자·업계 사람안전 우선해야
사람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오토바이 운전자의 각성과 함께 속도 경쟁을 부추기는 배달 업계의 체질 개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달플랫폼에 소속돼 전업으로 음식 배달을 하는 김모(46)씨는 “배달플랫폼 회사에서는 9년째 기본배달료를 동결하는데 물가는 올랐다”며 “만약 A라는 곳에 배달을 가면서 B, C에도 배달하면 회사는 세 곳 배달 수수료가 아니라 동선이 겹친다면서 수수료를 깎아버린다. 결국 한 시간에 1만∼2만원을 벌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곳을 배달하기 위해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토부가 지난해 배달플랫폼 종사자 1200명 대상 근로여건 조사 결과, 라이더들은 월평균 약 25.3일을 일하며 보험료와 렌탈료를 제하고 약 286만원을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고강도·저임금 현실이 라이더들을 난폭 운전으로 내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해당 조사에서 라이더 10명 중 4.3명은 최근 반년간 교통사고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촉박한 배달시간에 따른 무리한 운전(42.8%)’이 가장 많은 사고 원인이었다.
직장인 김희언(29)씨는 “위험하게 운전하는 오토바이를 보면 화가 나다가도, 나도 배달을 시키면 최대한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스스로 이중적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며 “배달이 늦어지더라도 안전운전을 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라이더가 빨리 달려야만 하는 상황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정훈 아주대학교 교통시스템 공학과 교수는 “배달 업계에선 배달료를 현실화하고, 공공 측면에선 영업용 오토바이에 대한 관리 규정을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며 “오토바이 전면 번호판 부착을 통해 교통법규 위반 단속을 강화하고 배달·배송용 적재 기준도 따로 마련하는 식의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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