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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합창교향곡’ 수난 잇따라…대구 ‘검열’ 논란 이어 서울 ‘팸플릿 배포 금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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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5-15 10:41:02 수정 : 2023-05-15 10: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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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우리말로 부르는 베토벤 교향곡 9번-자유의 송가’ 공연 당시 촉발
구자범 지휘자 등 공연 주최 측 “예술의전당의 팸플릿 사전검열” 비판…“두루뭉술한 부실 사과에 법적대응 검토”
예술의전당 “검열한 적 없고 운영 미숙으로 벌어진 일”…“우리가 잘못한 건 맞아” 홈페이지에 사과문 올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으로 평가받는 베토벤(1770∼1827) ‘9번(합창) 교향곡’이 잇따라 수난을 겪었다. 지난달 대구에서 특정 종교 편향 및 사전검열 논란 끝에 9번 교향곡 공연이 파행을 겪은 데 이어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려진 ‘합창’ 교향곡 공연에서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공연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최 측이 준비한 프로그램 안내 책자(팸플릿)를 예술의전당 측이 배포하지 말도록 했다가 뒤늦게 허용한 것이다. 이에 오랫동안 공들여 공연을 준비한 주최 측은 ‘사전검열’이라고 주장하며 반발했고, 예술의전당은 ‘내부의 미숙한 운영으로 그런 일이 발생했다’며 주최 측과 관객에게 사과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주최 측은 부실한 사과문 등 예술의전당 측의 무성의한 태도를 문제 삼아 법적대응도 불사할 태세여서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예술의전당이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 홈페이지 캡처

논란이 촉발된 지난 7일 오후로 시계를 돌려보자.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우리말로 부르는 베토벤 교향곡 9번-자유의 송가’ 공연이 열린 날이다. 베토벤이 독일 대문호 실러(1759∼1805)의 시 ‘기쁨(환희)의 송가’를 바탕으로 지은 이 곡은 1824년 5월 7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베토벤 지휘로 초연됐다. 그 무대는 베토벤이 지휘한 마지막 무대였다. 이 곡의 초연 199주년을 맞아 최초로 우리말 가사로 들려진다는 소식에 국내 언론과 클래식 팬은 공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보였다.

 

공연 규모 자체도 엄청났다. 구자범이 지휘하고 전국 교향악단 수석급 단원들이 주축이 된 참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국립합창단, 서울시합창단, 안양시립합창단, 참콰이어가 무대에 섰다. 합창단원만 250명 가까이 되는 등 오케스트라 단원과 솔리스트 성악가 4명 합쳐 340명에 달하는 연주자가 무대를, 관객들은 3층까지 모든 좌석을 가득 채웠다. 

 

이번 공연 프로젝트는 독일 하노버 국립오페라극장 수석지휘자와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를 지낸 구자범이 기획하고 이끌었다. 대학 시절 철학도였던 그는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연주하고 싶어 지휘자가 되기로 결심했으나 이 곡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한 번도 지휘하지 못했다고 한다. 구자범 지휘자는 전제 군주제 시대에 실러와 베토벤이 추구했던 자유와 혁명 정신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공연을 해보기로 마음 먹고 오랜 시간 연구한 뒤 가사를 직접 번역했다. 그가 일반 프로그램 안내 책자와 달리 무려 54쪽에 달하는 책자를 만들어 관객에게 무료로 나눠주려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번 공연에 합창단(참콰이어)의 한 명으로 참여한 이세현 화가의 그림을 표지로 한 책자에는 ‘번역 가사 전문’과 ‘베토벤 9번 우리말 번역본 해설’, 연주자 소개 등이 담겼다. 특히 6쪽부터 시작되는 번역본 해설은 소논문을 방불케 할 정도로 상세하게 기술됐다. 구 지휘자는 실러의 시 제목이 왜 ‘기쁨(환희)의 송가’가 아니라 ‘자유의 송가’여야 하는지를 소개하며 시에 담긴 혁명정신을 해부한 후, 베토벤이 그 시를 바탕으로 교향곡 전체 시나리오를 어떻게 짰는지, 극적·음악적 구조를 해체해서 보여준다. 

 

24쪽에서는 “문학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내가, 굳이 이 어려운 번역 작업을 시도하게 된 이유는 시중에 떠도는 9번 교향곡의 번역본에 너무나 오역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오역이 많은 이유로 번역자들이 △시 안에서 화자가 변한다는 것을 몰랐다 △베토벤이 시를 분해해서 시나리오로 각색했다는 것을 간과했다 △시의 행간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적었다는 점을 꼽았다.  

 

구 지휘자는 44쪽 ‘뒷 이야기’를 전하는 대목에서 귀가 전혀 들리지 않던 베토벤이 마지막으로 ‘합창 교향곡’을 지휘한 건 ‘참 목소리(얼)’를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지휘라고 믿는다”며 “이번 5월7일 연주회에서도 그(베토벤)의 얼이 노래로 울려퍼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었다.   

 

그런데 예술의전당 측이 이 같은 바람으로 구 지휘자가 애써 준비한 생애 첫 ‘합창’ 교향곡 공연에 생채기를 내버렸다. 관객들이 미리 읽어두면 공연 감상과 이해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많은 안내 책자 배포를 예술의전당 관계자가 막은 것이다. 공연 주최 측에 따르면, 예술의전당 직원이 책자 표지가 공연 포스터와 다른 점을 문제 삼은 데 이어 일부 내용도 트집 잡아 배포를 금지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대구에서 ‘합창’ 교향곡을 둘러싸고 논란이 됐던 사례까지 언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구자범 지휘자는 13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예술의전당 관계자가) 처음에는 ‘포스터와 (표지) 모양이 왜 다르냐’며 포스터에는 ‘자유’란 말이 없는데 표지에는 왜 ‘자유’가 있냐고 해 ‘그럼 표지를 찢고서 배포하겠다’고 했다”며 “그러자 (해당 관계자가) 책자 안 내용까지 문제 삼아 사진을 찍고선 ‘확인이 필요하다’며 누군가에게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확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배포를 중지시키는 바람에 관객들은 안내 책자 없이 입장했고 공연이 시작됐다”며 “나중에서야 ‘배포해도 문제가 없다’는 통보가 왔다. 이게 사전검열이 아니고 뭐냐”고 반문했다. 공연 안내 포스터에도 독일어로 ‘Ode an die Freiheit’로 돼 있는데, 이 역시 ‘자유의 송가’란 뜻이다. 

 

예술의전당 측은 통화에서 “검열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저희가) 공연 때 중요하게 확인하는 것 중 하나가 대관 신청 심의 때 들어온(제출한) 것처럼 (공연) 주관사나 제목, 내용이 같은지를 보는데 당시 실무자가 책자 표지 제목과 이미지가 (포스터와) 달라지자 ‘중대한 변경 사유가 아닌가’ 판단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어 “대관 담당자한테 그걸(책자 내용을) 보내놓고 (배포해도 괜찮은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그러다 항의하는 쪽(주최 측)이랑 대화를 나누다 불필요한 얘기도 나온 것 같다. 일단 저희가 잘못한 건 맞으니,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7일 오후 5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우리말로 부르는 베토벤 교향곡 9번-자유의 송가’ 공연 포스터와 구자범 지휘자가 준비한 54쪽 분량의 프로그램 안내 책자(팸플릿) 표지. 영음예술기획·참음악 제공

이와 관련, 예술의전당은 사과문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지하고 장형준 사장도 직접 구자범 지휘자에게 전화해 사과의 뜻을 표했다. 

 

예술의전당은 11일 홈페이지 ‘공지사항’ 항목에 올린 사과문에서 “우리말 가사를 담은 프로그램 북이 당일 배포 과정에서 예술의전당의 원활하지 못한 진행으로 관객 여러분께 전달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바 있다”며 “주최, 주관자 및 참여 아티스트 그리고 해당 공연의 관객 여러분께 불편을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예술의전당은 “희망하는 관객에게 이 공연 해설 팸플릿을 우편으로 배송할 계획”이라며 “관객 여러분과 번역과 연주를 통해 공연에 애쓰신 구자범 지휘자님, 출연하신 아티스트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 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구 지휘자와 연주자들은 사과 내용이 무성의하고 진정성도 떨어진다며 법적대응 검토 등 강경한 모습이다. 구 지휘자는 “당일에 무슨 일이 있었고 자신들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사실관계도 명확히 적시하지 않은 채 우연히 일어난 한 개인의 실수처럼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 한다”며 “이걸 어떻게 진정한 사과라고 할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공연에 참여했던 연주자 사이에서도 예술의전당 측의 사과문이 나온 후 법적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양 측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한 이번 사태를 둘러싼 논란과 후유증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대구시립예술단이 지난 1일 대구 수성아트센터(수성아트피아) 재개관을 기념해 ‘합창’교향곡을 공연하기로 했다가 특정 종교 편향성을 이유로 공연이 무산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지난달 서면으로 진행된 대구시립예술단 ‘종교화합 자문위원회’에서 한 자문위원이 4악장 가사 중 ‘신’, ‘창조주’, ‘천사’, ‘천국’ 등의 가사를 문제 삼아 종교적 편향성을 지적하며 대구시립교향악단과 대구시립합창단의 ‘합창’교향곡 공연을 반대한 것이다. 2021년 개정된 대구시립예술단 설치 조례에 따라 시립예술단은 공연 프로그램의 종교 중립성 확보를 위해 종교계 4명을 포함해 학계·법조계·문화계 전문가 등 9명으로 구성된 종교화합 자문위원회를 두고 있다. 특히, 종교 중립성과 관련된 안건의 경우 출석한 종교계 자문위원이 모두 찬성(만장일치)해야 의결된다. 대구시립예술단 공연 중 조금이라도 종교 중립성과 관련된 공연이라고 판단돼 자문위원회 논의 테이블에 올려질 경우 종교계 자문위원 중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공연할 수 없다는 얘기다.   

 

대구시는 논란이 확산하자 시립예술단 종교화합 자문위원회를 폐지키로 했다. 대구시는 지난달 27일 “종교 중립성과 관련된 안건에 대해 종교계 자문위원 전원 찬성으로 의결하는 현 제도는 사전검열 기능을 수행해 예술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조항으로 판단, 시립예술단 설치 조례상 종교화합자문위 조항을 삭제키로 했다”고 밝혔다. 자문위 삭제 조항은 입법예고와 시의회 조례안 심사를 거쳐 오는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다만, 시립예술단이 종교 편향적 공연으로 사회적 물의를 야기할 경우 작품 선정에 책임 있는 예술감독은 징계위원회 의결을 거쳐 해촉하기로 하는 등 종교 편향 방지대책을 별도로 수립해 시행키로 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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