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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의사람연구] ‘좀비마약’에 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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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4-11 00:41:22 수정 : 2023-04-11 00: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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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동물 마취제 ‘자일라진’ 확산
우리 MZ세대서도 펜타닐 번져
청소년 노린 ‘마약 음료’도 등장
금지 약물 넓히는 등 대책 시급

미국에서는 현재 하루 평균 196명이 펜타닐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중독자가 늘면서 2021년 사망자 수는 2019년 대비 94%나 증가하였다. 미국에서 펜타닐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 사건이 잇따르면서 값싼 합성마약은 다시금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광범위한 수면마취제까지도 마약류 대체재로 사용되는데, 이 약물의 사용자가 급증해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 문제가 된 약물은 자일라진이라는 1962년 개발된 동물용 마취제다. 세계 각국에서 수의사들이 말이나 소 등 동물을 마취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이 약물은 미국 내 마약 중독자들 사이에서 펜타닐 등에 대한 혼합물로 사용된다. 현지에서는 자일라진을 ‘트랭크(tranq)’라 부르며 펜타닐 등 기존 마약에 섞어 투입하는데, 부작용이 아주 심하다고 한다. 팔다리에 심한 부스럼이 생기거나 몇 시간 동안 정신을 잃어 성폭행이나 강도 피해를 입기도 한다. 마치 영화 속 ‘좀비’를 연상케 하는 기괴한 몸짓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합성마약의 부작용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피부가 괴사하고 팔다리를 절단하기까지 해야 한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현재 자일라진 확산세가 가장 거센 지역은 필라델피아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는 지난해 필라델피아 거리에서 수집된 약물 샘플의 90% 이상에서 자일라진이 검출되었다고 밝혔는데, 최근에는 필라델피아뿐 아니라 수도 워싱턴 등 36개 주의 마약에서 자일라진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미국 당국은 자일라진의 유통이 중국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확신하면서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를 미국과 중국의 ‘신 아편전쟁’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도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에서 펜타닐이 번지고 있는 것이 목격된다. 14세 여아가 인터넷을 통해 구한 펜타닐을 사용하였다가 의식을 잃어 모친이 이를 신고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최근에는 패치 형태의 펜타닐이 손쉽게 처방되기도 한다. 진통제의 일종으로 취급되는 펜타닐의 처방은 2019년 20여건에 비하여 2021년에는 100만건이 넘게 처방되었다. 심각한 중독성이 있는 펜타닐의 처방이 무분별하게 늘어난 이유를 단순히 질병의 증가로 인한 고통 완화 목적이라고 간주하기에는 부적절하다.

심지어 자일라진은 정부 규제 약물로 분류되어 있지도 않다. 국내의 경우, 자일라진에 앞서 동물용 마취제인 졸레틸에 의한 약물 오·남용 사례가 알려지긴 했다. 졸레틸의 불법 사용을 막고자 최근 이 약물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해 관리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자일라진 성분은 쉽게 접근 가능한데, 자그라300, 자이질플러스, 자이진300, 자일라진20, 니르코실2, 럼푼, 셀락탈 등이 바로 그런 약물들이다.

최근 강남에서 발생하였던 여성 납치사건에서도 주사제 약물이 사용되었다. 아직 그 약물이 무엇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만일 수면마취제가 범죄에 이용되는 경우, 과다 사용하여 목숨을 잃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약물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더욱이 최근에는 값싼 동물마취제까지 국제우편을 통하여 일반인도 구할 수 있다고 알려져, 상황이 점점 위험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마약 중독자를 지원하는 필라델피아 실무진은 “필라델피아는 이미 늦었다. 다른 지역이 이를 피하기를 원한다면 우리 얘기를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경고하였다. 법무부는 최근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늦었지만 매우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이미 다크웹을 통하여 국내 어디서나 이런 불법 약물이 유통되고 있다는 현실을 고려해볼 때 잠재적인 사용자들, 특히 호기심을 갖는 10∼20대에게 경각심을 갖게 만드는 일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커다란 숙제인 것처럼 보인다.

학원가가 비상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처럼 번진 마약 조직의 전달책이 대거 증가하였기 때문인데, 10대 청소년이 유인 대상이 되고 있다. 물에 희석한 필로폰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고치고 집중력을 향상하는 약물’이라고 하여 아이들에게 무료로 시음하게도 하였는데, 이렇게 상황이 악화한 데에는 우리의 과실도 없지 않다. 마트만 가면 쉽게 시식할 수 있는 문화와 학력 증진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향정신성의약품이라도 먹여 아이들을 입시 경쟁으로 몰아넣는 기존의 사회 문화가 이런 마약류 약물에 아이들을 취약하게 만들었다. 이제라도 경각심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일단은 시식 문화부터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무료로 음식이나 음료를 마구 나누어 서로 섭취하는 문화는 구강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물질의 위험에 인체를 노출하는 일이니 앞으로는 다 같이 지양하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발달의 지연을 극복한다는 명목으로 향정신성 약물을 과다 처방하는 의료적 관행도 바꾸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종으로 쏟아지는 마약류에 대하여 정부는 보다 빨리 예민한 민감성을 가지고 금지 약물의 범위를 넓혀야 할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무엇이든 순식간에 퍼질 수 있는 사이버 환경을 고려한다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은 경각심을 갖는 일은 매우 절실하다. 교육 현장도 이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 판단된다. 필라델피아의 경고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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