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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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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31 22:42:08 수정 : 2023-03-31 22: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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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입원 소식을 듣고 급히 차를 몰아 고향으로 내려갔다. 부모님 연세가 일흔을 넘긴 뒤부터는 작은 소식에도 가슴이 철렁하게 된다.

다행히 아버지는 밤사이 고비를 넘겼고, 옷가지며 짐을 챙기러 집에 다녀왔다. 그런데 병원과 집을 오가는 길에 행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워낙 작은 도시이기도 하고, 이전에도 인파가 넘치는 곳은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풍경이 고즈넉했다면 이날은 을씨년스러운 느낌까지 들었다. 길거리에 안 보이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나 했더니 과장을 좀 보태면 다들 병원에 있었던 모양이다. 엑스레이(X-RAY) 검사를 위해 오전 6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아버지를 모시고 검사실로 갔더니 이미 휠체어와 이동식 침대가 복도까지 꽉 차 있었다.

이우중 국제부 기자

1990년대 초반 한 소설은 고향을 ‘가장 나이가 많은 도시’로 묘사했다. 변화가 없다는 뜻으로,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표현은 적확한 듯하다. 병원 복도를 지나며 각 병실 문 앞에 붙어 있는 입원 환자들의 나이를 대충 훑어보니 70대 초중반인 아버지는 고령자 축에 끼지 못했다.

병원을 제외하고는 구도심의 오래된 건물들 대부분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상가에 걸린 간판만이 달라졌다. 어릴 때는 우유 대리점이었던 곳이 노인재가복지센터로, 학원 건물은 한국어교실과 한국문화체험 등을 제공하는 외국인 지원센터로 바뀌어 있었다. 이주민들이 이용하는 마트 등의 편의시설이 늘어난 것도 눈에 띄었다.

인구 감소로 인한 지방소멸 위기라는 이야기가 어제오늘 나온 게 아니지만, 나고 자란 곳이 없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은 다른 상념을 불러왔다. 실은 7년쯤 전에 같은 제목의 글을 여기에 쓴 적이 있다. 그때는 “진정으로 사랑했던 고향에로의 통로는 오직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 이 세상의 지도로는 돌아갈 수 없다”던 동명의 소설 내용을 언급하며 어쭙잖은 감상에 젖었는데, 이젠 진짜로 기억에만 존재할 수도 있게 된 셈이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 따르면 기업의 재무제표를 작성할 때 일반적으로 ‘계속기업의 가정’을 한다. 말 그대로 기업이 존속하리라는 가정으로, 경영진이 기업 청산 또는 경영활동 중단의 의도를 가지고 있거나 청산·중단 외에 다른 현실적 대안이 없는 경우가 아니면 계속기업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인구 감소가 지방만의 문제가 아닌 터라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계속기업의 가정을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상경을 앞두고 아버지와 이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버지는 “세계 인구가 증가세인데 국가소멸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건 인도 같은 다른 나라 때문이고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고 반박하려다 곱씹어보니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아버지의 말처럼 노동자를 비롯한 이주민 증가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일 테다. 초등학교 때 배운 ‘대한민국은 단일민족국가’라는 내용이 ‘사람은 좌측통행’, ‘뚜렷한 사계절’처럼 철 지난 지식이 될 날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측통행으로의 변화에 따른 부작용은 크지 않았지만 단일민족국가에서 다민족국가로 이행하는 것은 뚜렷한 사계절을 사라지게 만든 기후변화만큼이나 많은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이우중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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