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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커지는 뱅크데믹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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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29 23:54:53 수정 : 2023-03-30 00: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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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고강도 긴축발 위기 확산 일로
SVB·CS 몰락, 도이체방크도 휘청
국내 부동산PF 등 약한 고리 즐비
선제 대처로 금융·경제 안정 기해야

앨런 그린스펀은 18년에 걸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재직 시절 미 역사상 가장 긴 호황을 연출해 ‘금융의 연금술사’, ‘경제의 마에스트로’라 불린다. 그런 그린스펀이 1994년 ‘채권 학살자’로 돌변했다. 뛰는 물가를 잡기 위해 그해 2월부터 1년간 기준금리인상을 일곱 차례나 단행했다. 연 3%이던 기준금리는 6%로 치솟았다. 그 사이 채권값 급락(금리 급등) 탓에 1조달러(약 1300조원)가량이 사라졌다.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막대한 투자 손실로 쩔쩔맸고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마저 파산할 정도였다.

미국이 감기에 걸리면 세계는 독감에 시달린다. 그해 말 멕시코에서는 자본 유출로 외환위기가 발발(테킬라 위기)했고 불길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주변국으로 삽시간에 번졌다. 3년 후에는 태국, 필리핀, 한국 등 아시아 국가가 연쇄 부도 상황에 빠졌다.

주춘렬 논설위원

약 40년이 흘러 다시 미 긴축발 금융 공황 망령이 떠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1년 새 기준금리를 0%대에서 5%로 인상했다. 파장은 멀쩡한 은행을 망가트릴 정도로 크다. 미 16위권인 실리콘밸리은행(SVB)과 뉴욕의 시그니처은행이 잇따라 파산했다. SVB는 총자산의 60%를 미 국채 등에 투자했는데 예금 지급을 위해 만기 전에 처분해 18억달러의 손실을 냈다. 이 사실이 공개되자 초고속 뱅크런에 휩싸였고 44시간 만에 문을 닫았다. 미 은행이 보유한 채권의 평가손실은 작년 말 기준 6200억달러에 달한다. 미 금융 당국이 1년간 채권 담보가치를 시장가가 아닌 액면가로 평가해 돈을 빌려주는 처방을 내렸지만 약효는 신통치 않다. 최근 2주 사이 중소 은행에서 빠져나간 돈이 5500억달러에 달했다.

“SVB 파산은 ‘느리게 진행되는 재앙’의 서막”(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이었다. 후폭풍이 유럽에 몰아쳤다. 167년 전통의 크레디스위스(CS)가 침몰했다. 잦은 스캔들과 투자 손실로 신뢰에 흠집이 난 CS는 하루 최대 100억달러의 뱅크런을 감당하지 못해 스위스 1위 은행인 UBS에 인수됐다. 스위스 당국은 인수 과정에서 CS 주주에게 UBS 주식을 교환(22.48주당 1주)해주면서도 CS의 신종자본증권(코코본드) 170억달러어치를 전액 소각했다. 통상 채권의 변제 순위가 주식보다 앞선다는 신용 질서를 깬 것인데 이게 화를 키웠다.

코코본드는 이자가 많은 대신 금융 회사 위기 때 원금이 상각되거나 보통주로 전환하는 채권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본 확충 수단으로 활용됐는데 시장 규모가 2750억달러에 이른다. 이 채권 물량이 많았던 독일 최대은행 도이체방크까지 위기설에 시달렸다. 주식 투매가 벌어지고 부도위험 지표도 치솟았다. 은행(뱅크)과 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을 합친 ‘뱅크데믹’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남의 일이 아니다. 국내 은행권의 코코본드 물량은 31조5000억원에 달한다. 도이체방크 쇼크에 놀란 신한·하나·우리 등 국내 은행은 코코본드 조기 상환에 나섰는데 자금 조달이나 자본 확충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 당국은 국내 금융 회사의 해외 투자가 많지 않아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우리 경제 곳곳에는 고금리에 취약한 고리가 즐비하다. 가계와 기업 부채는 작년 말 4500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배를 웃돈다. 5대 은행 등 주요 금융 회사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액이 1조원으로 1년 전보다 55% 늘어났다. 자산보다 빚이 더 많은 고위험가구는 61만5000가구에 달한다. 116조원에 이르는 2금융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도 발등의 불이다.

대표 안전 자산인 미 국채마저 위기의 불쏘시개로 전락하는 판이다. 미 긴축발 위기가 언제 어떤 경로로 한국 경제를 덮칠지 예측 불허다. 뱅크데믹 공포가 신용 경색과 금융 시스템 마비를 거쳐 경기 침체로 비화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정부가 선제 대처로 금융과 경제 안정에 만전을 기할 때다. 금융과 실물 경제 전반에 걸쳐 촘촘한 비상 대응책을 짜고 한·미, 한·일 통화스와프 체결과 같은 방파제도 높게 쌓아야 할 것이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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