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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가장 잔인한 달’. 해마다 이맘때 떠오르는 TS 엘리엇 시 ‘황무지’의 구절이다. 2009년 3월20일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던 이인규 변호사도 이 시를 인용했다. “‘차라리 겨울이 따뜻했다’는 시구절이 있지 않나요?” ‘잔인한 달’의 마지막 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검찰청사에 출석해 13시간의 조사를 받았다.

그에게 문재인 대통령 당선은 잔인한 시기의 예고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인지 2017년 8월 다니던 로펌도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났다. ‘논두렁 시계’ 조사에 대한 조사가 시작된 직후다. ‘논두렁 시계’는 노 전 대통령이 선물로 받은 명품시계를 봉하마을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했다고 알려지면서 나온 말이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비판할 때 어김없이 등장한다.

최근 이 변호사가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라는 회고록을 내면서 ‘논두렁 시계’가 재소환됐다. 그는 수년 전 “‘논두렁에’ 버렸다는 내용은 국가정보원 작품”이라고 말한 적 있다. 이번에는 노 전 대통령이 피아제 시계 2개를 받은 사실에 다툼이 없고 조사 때 “밖에 버렸다”고 진술한 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워낙 논쟁적인 내용이라서 이 변호사에게 ‘잔인한 4월’을 예고하는 듯했다. 의외로 잠잠하다. 물론 ‘정치검사의 2차 가해 공작’이라는 등의 비난이 나오긴 했다. 하지만 사자명예훼손 등 법적 분쟁으로 번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14년 전 의혹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2009년 5월23일 노 전 대통령 사망으로 수사기록은 검찰 창고에 봉인됐다. 먼 훗날 수사기록이 공개되더라도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검찰뿐 아니라 다양한 시각의 기록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세계일보 법조팀이 2010년 4월 ‘노무현은 왜 검찰은 왜’라는 책을 펴낸 건 그 주춧돌을 놓겠다는 취지였다.

앞으로 ‘노무현 신화’에 흠집을 내는 기록이 더 나올 수 있다. 반대로 긍정적 평가에 보탬이 되는 기록이 생산될 수도 있다. 모두 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입체적인 평가를 위해선 필요하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공(功)에 눈감으면서 과(過)만 보려고 해서는 안 되듯, 노 전 대통령의 과를 감추고 공만 보려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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