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염색체 따라 무게 차이 이용
형광물질 등 투여 안 해 위험성 ↓
임상에 적용 적합… 실현 가능성 ↑
한국 등 대부분 국가서 불법 규정
향후 맞춤형 인간 생산 우려 제기
아들과 딸을 구분해 낳고 싶은 생각이 있어도 감히 인간이 대놓고 말하지 않는 건 이를 신(神)의 영역이라 생각해서였다. 의학기술이 발전한 현대에 와서도 성별을 구분할 수 있는 배아 선택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윤리적, 성비 불균형 문제 야기 등을 이유로 감히 도전하지 않는 게 상식이었다.
이 금기(禁忌)가 깨질 위기다. 아기의 성별을 80% 가까운 비교적 높은 확률로 선택할 수 있으면서 안전성도 갖춘 인공수정법을 미국 연구팀이 발표했다고 영국 스카이뉴스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연구는 미국 뉴욕 와일 코넬 의대 잔 피에로 팔레르모 교수팀에 의해 이날 과학저널 플로스원(PLOS ONE)에 공개됐다.

이들은 정자의 염색체가 남성(Y)인지 여성(X)인지에 따라 무게가 약간 다른 점을 이용해 정자를 성별로 선별한 뒤 아들을 원하는 부부에게는 Y염색체 정자로, 딸을 원하는 부부에게는 X염색체 정자로 인공수정을 했다.
그 결과 딸을 원하는 부부 59쌍은 292회 인공수정에서 231회(79.1%) 딸 배아를 얻는 데 성공했고, 아들을 원하는 부부 56쌍은 280회 인공수정 가운데 223회(79.6%) 아들 배아를 얻었다. 실제 배아를 자궁에 이식해 여아 16명, 남아 13명까지 출생시켰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그동안 성별에 따른 정자를 선택하는 몇 가지 기술이 제안되었지만 일부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고, 일부는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면서 “일관되게 안전하고 효과적인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정자 성 선택 기법을 제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발표된 성 선택을 위한 인공수정 방식은 실험 결과가 일관되지 않거나, 염색체 확인을 위해 정자세포에 형광물질을 투여하는 등 위험성 때문에 임상에 적용하기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 공개된 방식은 정자 무게만으로 성별을 판독하기에 임상에서 활용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새로운 방식이 안전하고 실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성별 구별 출산이 가능해지면 이를 둘러싼 윤리적 논쟁 가열이 불가피해진다. 현재 성별과 관련된 질환 같은 타당한 이유 없이 배아의 성별을 부모의 기호에 의해 선택하는 것은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불법으로 규정돼 있다.

대런 그리핀 영국 켄트대 교수는 “아기의 성을 80% 정확도로 결정하는 이 연구는 과학적으로는 타당해 보이고, 일부 국가에서는 법적 허점으로 인해 정자 선택이 가능할 수도 있다”며 “하지만 성별 선택이라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찬나 자야세나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남성병학과 과장은 “이런 기술은 향후 피부색이나 눈의 색깔 같은 신체 특징을 선택하는 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술 발전에 따라 개인 기호에 맞춘 맞춤형 인간 생산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남아선호사상이, 최근에는 딸 선호현상이 두드러지는 한국에서도 이런 기술의 등장은 달갑지 않은 일이다. 한국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누구든지 특정 성을 선택할 목적으로 난자와 정자를 선별해 수정시키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남아선호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아들을 낳기 위해 불법 낙태까지 이루어졌던 적이 있기에 과학 발전에 따른 윤리적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생명의료법 전문가인 최경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미 기술적으로는 가능한 부분도 많았을 텐데 우리가 이런 기술 적용에 주저하는 데에는 통제하는 것만큼 상실하는 것이 생기기 때문”이라며 “이런(배아 선택) 기술은 개인의 욕심에서 비롯된 부분이 상당하다. 한 번 빗장을 열어 주면 지능, 체력 등 더 많은 것을 통제하고 싶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계속해서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다원성을 갖춘 사회가 돼야 하지만 이들 기술은 오히려 사회의 편향을 부추기게 된다. 자연 상태의 성비도 더 틀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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