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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의사람연구] 계략도 범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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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20 23:04:15 수정 : 2023-03-20 23: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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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성범죄 다룬 다큐 파문
이단 못벗어나는 개인 문제지만
재범 가능성 제대로 관리 못한
사법당국에도 책무 묻고 싶어

최근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총재 정명석의 성범죄 혐의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 공개되어 상당한 사회적 파문이 일고 있다. 정명석은 2009년에도 신도를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후 만기 출소하였던 전자발찌 착용자이다. 그런데도 그는 출소 직후 또다시 JMS 메시아로서 복귀하여 충남 금산군 소재 수련원에서 여성들을 총 17회에 걸쳐 강제 추행하거나 준강간하였다. 현재는 다시 구속되어 재판에 넘겨진 상태이다.

만일 ‘나는 신이다’가 방영되지 않았더라면, 피고인에 대한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장막에 가려, 정명석의 실체에 관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법원은 JMS 측에서 지난달 17일 제기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였고 넷플릭스는 계획대로 이를 방영하였다. 나아가 재판부는 프로그램의 구성이 상당한 분량의 객관적·주관적 자료를 토대로 하고 있음을 인정하였다. 결국 실재하는 사건을 토대로 ‘나는 신이다’라는 영상물이 만들어졌음을 시인한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상황이 이러하다면 우리는 바로 한 가지 강력한 의문을 갖게 되는데, 왜 JMS 신도들은 성폭행범 정명석을 메시아라고 여전히 믿는가 하는 질문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대체 왜 터무니없는 이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고 싶다면 심리학자 페스틴저와 샥터의 인지 부조화 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50년대 연구자들은 특정일에 홍수가 일어날 것이지만, 외계의 존재가 와서 자신들만을 구원해줄 것이라는 종말론에 심취한 어느 종교 집단에 실제로 참여하여 관찰하였다. 일정 기간 후 예언의 날이 도래하였고 세상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예언은 빗나간 것이 되고 교주의 신뢰성에는 크게 하자가 생겨야 한다. 그러나 신도 중 교주가 메시아가 아니라면서 믿음을 철회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도리어 더 많은 사람을 향해 강력한 전도 활동을 펼치면서 예언이 들어맞지 않았던 이유를 해명하려고 들었다. 교단은 신도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너무 커서 종말의 날은 연기되었고 신앙심을 입증할 다시 한번의 기회를 획득할 수 있다며 열광하였다. 그러니 구원을 받으려면 더욱 기도에 몰두하고 자기 헌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신도들은 예언이 불발된 사실이 자신들 잘못 때문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고 더욱 이단 집단에 맹종하였다. 그러지 않으면 진짜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협박이 먹힌 것이었다. 대다수의 구성원은 더욱 강렬한 기도행위로서 단합하였고 이단의 신념체계에 완전히 굴종하였다.

만일 신도들이 혼자서 비합리적인 믿음에 빠져 있다가 불발된 것이라면 자책과 함께 쉽게 믿음이 틀렸음을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생계와 일상을 모두 공유한 이단 집단에서는 잘못된 신념에 기인한 집단몰입 때문에 개인의 합리적인 판단능력은 이미 마비된다. 응집력이 강한 집단일수록 이견을 제시하는 일은 즉시 퇴출이나 제거를 의미한다. 혼자서 생계를 이어나갈 방도가 없고 사회적 지지체계를 모두 잃어버린 사람일수록, 혼자가 되느니 예언의 ‘비합리성’을 부인하며 오히려 더욱 신념체계에 몰두한다. 그러지 않으면 신념체계가 무너지면서 지금까지 투자했던 자신들의 실체적·정신적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은 스스로에게는 어리석음을 인정해야 하는 뼈저린 고통이 된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사실을 왜곡해서라도 인지적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원리가 바로 이단 집단에서 발생하는 인지적 부조화를 해결하는 대안임을 학계에 보고하였다. 종교적 신념체계를 유지하는 일은 특히 공동생활을 하는 이단 집단에는 경제적인 문제와도 밀접히 연관된다. 사유재산을 모두 헌납하여 경제적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어 처음에는 동등한 분배가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하지만 결국 교주 집단은 재산을 편취하고 신도들을 착취하게 된다. JMS든 다른 이단 집단이든 메시아와 그들의 무리가 모든 자산을 독점하면서 호의호식하는 일들은 허다하다. 평민 신도들에게는 참기 어려운 헌신을 요구하며 경제적인 손실과 정신적인 상흔을 입히지만 교주 무리는 이런 헌신이야말로 진정한 종교적 신념의 연장이라고 가스라이팅한다.

이단의 믿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개인 신도들의 문제 외에 궁금증이 드는 대목이 하나 더 있는데, 전자감독 대상자였던 정명석은 어찌하여 발찌를 차고도 또 성범죄 재범을 저지르기에 이르렀는지, 우리 사법당국은 이 사람의 재범 가능성을 어찌 관리하지 못한 것인지 묻고 싶다. 이단의 문제가 개인의 믿음만의 문제인지, 아니면 사회적 규범과 질서를 교란하는 위계에 의한 불법행위인 것은 아닌지도 궁금하다. 만일 그러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들의 계략으로부터 시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은 사법당국의 책무는 아닌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비합리적인 신념체계에 몰두하여 가족과의 연이 다 끊어지는 지경에 이른 분이 계신다면 한 번쯤은 자기 의문을 가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느님의 진정한 뜻이 가족을 버리기까지 해야 하는 주문인가? 혹시 어려움에 처한 분들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당장 가족들에게 전화해 보시기를 기원한다. 또한 고통스럽겠지만 자신이 틀렸음을 수용하는 용기를 갖길 권해본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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