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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시속 137㎞로 주택가 돌진한 고급 세단…전문가 “급발진 가능성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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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17 21:00:00 수정 : 2023-03-18 07: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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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돌진 후 전복…탑승자 2명, 전치 12∼14주 부상
운전자 ‘급발진’ 주장…“굉음 내고 브레이크 작동 안해”
경찰 “EDR로 급발진 결론 어렵다”…전문가 “가능성 커”
제조사, 운전자의 ‘입증’ 요청에 “조사 진행 중”
“실수로 가속 페달을 밟았으면 1㎞나 달렸을까요? 운전하는 사람이 그 거리를 달리면서 브레이크를 한 번도 안 밟을 수가 있나요? 죽으려고 작정한 거라면 이제 24세인 딸을 태우고, 속도도 내기 어려운 그 오르막 골목길로 들어갔을까요?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얘기인데 이런 정황에 대한 고려 없이 5초짜리 사고기록장치(EDR) 보고서만 갖고 운전자 과실로 결론을 낸다면 너무 억울할 겁니다.” (지난해 10월 경기 의왕시 급발진 의심 사고 운전자 정모(52)씨)

 

지난해 10월 1일 경기 의왕시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자는 사고 정황과 블랙박스, CC(폐쇄회로)TV 등 영상으로 볼 때 자동차 결함이 분명하다는 입장이지만, 경찰은 EDR 분석 보고서에서 ‘급발진으로 볼 데이터가 없다’고 밝혔다. 운전자는 제조사에 기계 결함 여부를 조사하고 운전자 과실이라면 직접 입증해 달라고 요구했다.

지난 2022년 10월 1일 경기 의왕시 한 주택가로 돌진한 차량이 전복된 모습. 충돌 직전 차량 속도는 시속 137㎞였다. 운전자는 제동페달이 작동되지 않았다며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운전자 제공

◆“굉음 내며 질주…브레이크 안 들었다”

 

17일 운전자 정모(52)씨에 따르면 그는 사고 당일 오후 10시반쯤 귀가하기 위해 의왕시 한 상가 앞에서 딸(24)을 차에 태웠다. 출고된 지 한달 반밖에 되지 않은 현대차 제네시스 G80 차량이었다.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 기어를 P에서 D로 움직이자 ‘드르륵’ 소리가 나면서 차체가 떨렸다.

 

집에 가려면 골목에서 나와 좌회전 해야 했지만, 이상을 느낀 정씨는 차를 멈추고 보험사에 신고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정씨는 “당시 핸들이 뻑뻑해서 힘을 주어 돌렸다”고 말했다.

 

그런데 차가 멈추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제동되는 느낌이 전혀 없었고 시동을 꺼보려 했지만 꺼지지 않았다고 정씨는 설명했다.

 

 

공포에 질린 딸이 “엄마, 우리 지금 문 열고 뛰어내리자“고 했다. 하지만 그 사이 차는 굉음을 내며 가속했다. 어딘가 부딪쳐 세우기엔 너무 무서웠고 들이받을 구조물도 마땅히 없었다. 정씨의 딸은 “레이싱카처럼 소리가 났다. 제네시스에서 이런 소리가 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큰 굉음이었다”고 회상했다. 

 

차는 빨간불을 무시하고 큰 사거리 한가운데를 쌩하니 내달렸다. 왼쪽에서 달려오던 흰색 승용차는 정씨의 차와 충돌하기 직전 가까스로 멈췄다. 이같은 모습은 차량 블랙박스와 도로 CCTV에 모두 담겼다. 정씨 딸은 뒷좌석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공포에 질려있었다고 말했다.

 

차는 계속 직진해 주택가 골목으로 향했다. 오르막인 데다 과속방지턱이 연달아 있었지만 속도는 줄지 않았다. 차는 과속방지턱을 넘으며 튀어 올랐고 골목에 주차된 차량 여섯대를 들이받으면서 공중으로 날아 떨어지며 전복됐다.

 

이 사고로 정씨와 딸은 전치 12∼14주의 척추 골절 부상을 입었다. 다른 부상자는 없었다. 정씨는 “다른 사람이나 사람이 타고 있던 차를 덮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지난 2022년 10월 1일 경기 의왕시 한 주택가로 돌진한 차량이 전복된 모습. 충돌 직전 차량 속도는 시속 137㎞였다. 운전자는 제동페달이 작동되지 않았다며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운전자 제공

◆경찰 “급발진 데이터 없다” 분석에 운전자 ‘이의 제기‘

 

다음날부터 경찰 조사가 시작됐다. 충돌 5초 전부터 0.5초 단위로 기록되는 자동차 사고기록장치(EDR) 데이터를 보면 충돌 1초전을 제외하고는 가속페달이 99% 작동하고 있던 것으로 나타난다. 달리는 동안 제동페달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충돌 직전 차량 속도는 시속 137㎞였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이를 근거로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아 속도가 증가하는 상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운전자가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한 차량 급발진으로 볼 데이터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정씨와 가족들은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정씨는 “블랙박스와 CCTV를 보면 1분가량 차가 이상 주행한 증거들이 많은데, 마지막 5초짜리 EDR 데이터만 보고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은 걸로 추정해서는 안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정씨는 경찰에 추가 조사를 요청했으며 현재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세계일보에 “EDR뿐만 아니라 다른 장치들의 결함 여부도 조사했지만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도 객관적 증거로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급발진’으로 결론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남부경찰청. 뉴시스

반면 민간 전문가 의견은 달랐다. 자동차급발진연구회장인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번 사고 관련 영상들을 살핀 뒤 “급발진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주행 영상을 보면 급발진의 특성이 여럿 보인다”면서 “EDR 데이터로 봐도 그렇다. 시속 130㎞로 달리는 차가 과속방지턱을 넘을 땐 차도 운전자도 붕 뜨게 되는데 그때도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일정한 힘으로 밟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애초에 EDR 자료 자체가 신뢰성이 떨어진다”며 “EDR에 기록된 데이터를 제조사가 실제 운전 실험으로 구현해낼 수 있다면 ‘운전자 실수‘로 볼 여지가 있는 것인데, 그렇지 못하면 제조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운전자가 자동차 결함을 입증해야 하는 법 때문에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22년 10월 1일 경기 의왕시 한 주택가로 돌진한 차량이 전복된 모습. 충돌 직전 차량 속도는 시속 137㎞였다. 운전자는 제동페달이 작동되지 않았다며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운전자 제공

◆제조사의 ‘운전자 과실’ 입증 가능할까?

 

경찰 조사가 거의 마무리되자 정씨는 사고 차량의 EDR과 전자제어장치(ECU), 변속제어장치(TCU) 등을 제조사인 현대차에 보내 결함 여부를 직접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목숨을 건진 거로 감사하며 살기엔 너무 억울하다”면서 “나는 물론 아직 20대인 딸까지 평생 움직임에 제약을 갖고 살아야 한다. 우리 가족이 입은 정신적·재산적 피해도 상당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자동차는 제조사에서 가장 잘 알 것이 아닌가. 기계 결함이나 오류 발생 가능성은 없는지, EDR에 기록된 데이터가 사람의 운전으로 나올 수 있는 결과인지, 운전자 과실이라는 명확한 근거가 있는지를 제조사가 직접 조사해 밝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정씨로부터 받은 차량 장비들을 울산현대차 공장과 본사에서 나눠 조사 중이며 결과가 나오는대로 고객에게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진행한 경찰 조사를 당사자인 제조사가 다시 조사하는 것이 조심스럽긴 하다”면서 ”현재로서는 EDR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다. 급발진 의심 EDR 값이 실제 운전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 재현하는 것은 경찰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급발진 의심 사고는 전 세계 자동차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현행 제조물책임법에 따르면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시 급발진 여부는 운전자가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사고 원인은 운전자 과실’이라는 점을 제조사가 입증하도록 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해 12월 손자가 사망하고 할머니가 입건된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쏠리면서 유족이 올린 ’제조물책임법 개정’ 국민동의청원에 5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이에 국회에서는 관련법 개정 논의가 시작됐다.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 사옥. 뉴시스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소송을 맡고 있는 하종선 변호사는 “최근 급발진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스마트화된 자동차의 소프트웨어가 오류를 일으키거나 코딩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면서 “이런 오류는 데이터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데이터로만 보면 급발진을 입증하기 쉽지 않고,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원 조사 결과는 지금까지 제조사의 면죄부가 돼 왔다”고 꼬집었다.

 

하 변호사는 이어 “급발진 예방을 위해 비정상적 급가속 시 가속을 차단하는 ‘가속제압장치’를 설치하거나, 사고 원인 입증을 위한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데이터 저장 장치 등을 채택하는 자동차 제조사가 늘어나고 있지만 국내 제조사는 둘 다 안 하고 있다”면서 “급발진 의심 사고가 증가하면서 운전자들의 불안이 커지는 만큼, 제조사가 급발진 결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법 개정이 빠르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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