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재앙" 표현까지 쓰며 트럼프 맹비난
美 공화당에 "글로벌 리더십에 충실해야" 조언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면 재앙이다.’
2024년 대선에 재출마해 연임을 노릴 것이 확실시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곁에 뜻밖의 ‘우군’이 등장했다. 바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안보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홀대에 치를 떨었던 나토가 전직 사무총장을 앞세워 트럼프를 저격하고 나선 것이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안데르스 포그 라스무센(70) 전 사무총장은 최근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를 맹비난하며 ‘절대 미국 대통령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라스무센은 덴마크 총리(2001∼2009)를 지낸 정치인으로 총리 퇴임 직후인 2009년 8월 나토 사무총장에 취임해 2014년까지 약 5년간 재직했다.
라스무센은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지명된다면 그것은 지정학적 재앙이 될 것”이라며 “대선 과정에서 그의 영향력은 파괴적일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일부 여론조사에서 벌써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지가 약해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트럼프의 생각이 일부 미국인에게 매력적이라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미국의 정치는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트럼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미국이 깊숙이 개입하는 데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점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트럼프는 미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비판하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종식을 위해 협상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전쟁 초반에는 “푸틴은 역시 천재”라고 칭찬했다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최근 2024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바이든 행정부를 끌어내리고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라스무센은 “유럽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입장에서 공화당은 트럼프나 트럼프주의자들보다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더욱 부합하는 사람을 후보로 선출해야 한다”고 공화당에 충고했다. 현재 트럼프가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들 중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현실에 경각심을 드러낸 셈이다.
나토는 트럼프 행정부(2017∼2021) 시절 그의 동맹 경시, 그리고 미국 우선주의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나토는 30개 회원국 중 어느 한 나라가 러시아 등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면 회원국 전체가 공격을 당한 것으로 간주해 전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규정을 갖고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 시절 이 규정을 조롱하며 ‘유럽의 이름도 낯선 어느 소국이 침략을 당했다고 해서 미국이 전쟁에 돌입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식의 언급을 했다. 이는 유럽 동맹국들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심지어 ‘나토가 존재 의미를 잃었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선 당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비판하며 ‘동맹과 함께해야 한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당선 후에는 다른 나토 회원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를 향해 “미국이 돌아왔다”고 외쳤다. 2021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로는 나토의 단결을 촉구하며 우크라이나를 위한 군사적 지원 노력을 주도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폴란드를 방문한 자리에서 “푸틴은 나토가 분열하길 바랐지만 되레 나토는 더욱 강력해지고 또 커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위협에 안보 불안을 느낀 핀란드·스웨덴이 기존의 중립 노선을 포기하고 나토 가입을 신청함으로써 나토가 오히려 확대되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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