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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엄벌이 능사?… 피해자 회복이 중요”

입력 : 2023-03-15 19:00:00 수정 : 2023-03-15 21: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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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지켜본 3인의 분투기
‘성수여중사건’ 피해자 母 조정실
“피해 학생 부모와 법 마련 힘썼지만
정작 고통 받은 아이 치유는 뒷전”

학폭책 펴낸 ‘스쿨폴리스’ 김주엽
“가해자 부모, 아이 잘못 인정부터
학폭 문제에 사회적 경각심 필요”

‘대구소년투신’ 피해자 母 임지영
“10년 넘게 피해 학생 부모에 용기
정부는 근시안적 대책만 쏟아내”

‘학교 폭력에 따른 하나 뿐인 아들의 투신, 일진을 곁에서 지켜본 스쿨폴리스, 학교폭력으로 생긴 마음의 병을 아직 가진 딸….’

 

학폭으로 가족을 잃거나 일진 곁에서 학폭의 무서움을 몸소 느끼고 지켜본 이들이 울산 등 전국 곳곳에서 학폭과 싸우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정순신 사태’ 등으로 최근 사회 이슈 중심으로 불거진 학폭 문제. 고질적인 학폭 근절·예방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3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성수여중사건’ 피해자 母 조정실(왼쪽부터), 학폭책 펴낸 ‘스쿨폴리스’ 김주엽, ‘대구소년투신’ 피해자 母 임지영

◆학폭으로 다친 딸, 23년간의 싸움 

 

23년이라는 시간동안 ‘학교폭력’과 싸운 조정실(65)씨는 2000년 4월 전까진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는 지금 학교폭력 피해 가족을 돕는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이하 학가협)와 피해학생의 치료회복을 돕는 ‘해맑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가 학폭과의 전쟁에 나서게 된 건 하나 밖에 없는 딸 때문이다. 2000년 4월 중학교 2학년이던 딸이 선배 5명에게 폭행 당해 의식을 잃었다. 딸에게 돈을 뺏고 때린 가해학생들을 조씨가 혼낸 것이 보복폭행으로 돌아왔다. 5일만에 깨어난 딸은 40일간 입원치료를 받아야했고, 4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성수여중폭력사건’이다. 조씨는 “우리가 피해자니까 알아서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현실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 해 8월 학폭 피해 부모 8명을 알게 됐다. 학가협의 시작이었다. 학폭과의 전쟁이 이어졌다. 도움을 요청하는 피해 부모들이 끊이지 않아서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른 피해 가족을 돕는 방식으로 3만명이 모였다. 전투적으로 소송에 나서고 관련 법이나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했다. 조씨는 “그러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했다. ‘처벌’이 능사가 아니었다는 의미였다. 처벌에 집중하는 동안 고통받은 아이들의 치유는 뒷전이 됐다. 가해자 특별교육기관은 6000개가 넘는데 피해자 시설은 없었다. 쌍둥이 배구선수 사건으로 ‘학폭 미투’가 이슈가 되니 피해자 지원센터 100곳이 불쑥 생겼다. 조씨는 “들여다보니 거의 다 병원시설이었고, 한의원도 있었다”며 “무늬만 피해자 지원 시설이었던 거다”고 말했다. 2013년 ‘해맑음센터’가 만들어졌다. 센터는 335명의 아이가 거쳐갔다. 조씨는 “고통받아 봤기 때문인지 사회복지과로 진학하는 아이들이 많다”며 “(관계 부처가)피해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듣고 지원대책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8년간 경험한 학폭과 일진

 

울산경찰청 소속 김주엽(49) 경위는 지난 달 16일 학폭 근절 노하우를 담은 책  ‘그래도 괜찮아. 그땐 나도 그랬어’를 냈다. 김 경위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8년간 100여곳의 울산지역 중·고등학교 학교전담경찰관(스쿨폴리스)로 근무하면서 학폭 현장을 목격하고, 가해·피해 학생들, 학부모들 만났다. 책은 그가 직접 들여다 본 학폭의 모습과 일진에 대한 생각, 피해학생들의 아픔을 담고 있다. 김 경위는 “10년 이상 반복되는 학폭 문제에 대해 사회 모두 경각심을 갖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글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학기 초에 사회 전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관심을 기울이면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 경위는 “남자아이들은 서열을 정하는 과정에 집단화, 무리화가 일어나며 비행으로, 범죄로 이어지고, 여자아이들은 무리를 짓는 과정에서 왕따 같은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김 경위는 가해학생의 부모들이 취해야 하는 행동에 대해 조언했다. 회피하거나 잘못이 없다며 변명을 하기보다 아이의 잘못을 인정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잘 가르치겠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부의 가이드북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장난 끝에 피해가 발생한 행위는 학교폭력이 아니다’고 하는 문구에 대해서다. 김 경위는 “‘장난 또는 사소한 행위, 무심코 한 행위였을지라도 폭력으로 봐야 한다’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들의 투신, 학폭 피해 지원

 

임지영(59)씨는 10년 넘게 학교폭력 피해 학생 부모를 만나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일을 하고 있다. 평범한 고등학교 교사인 그가 이런 일을 하게 된 건 2011년 12월 중학교 2학년이던 둘째 아들 승민이를 학교폭력에 잃고 나서다. 승민이는 같은 학년 또래 2명에게 금품갈취와 협박, 폭행, 물 고문 등에 시달렸다. 고통을 견디지 못한 승민이는 결국 아파트 7층 베란다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대구 소년’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알렸고, 학교전담경찰관(스쿨폴리스) 제도가 생겼다.  

 

임씨는 승민이를 잃었던 2011년과 지금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최근 또 대책이랍시고 새로운 제도를 다시 만드는 데 급급하더라”고 지적했다. “급하게 만든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것 같으면 이미 학교폭력이 사라지지 않았겠느냐. 10년이 넘는 동안 진행된 숱한 연구, 조사결과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더글로리’가 흥행하고 있는 것은 근거로 들었다. “얼마나 피해자 회복이나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사적 복수를 하는 내용이 국민적 공감을 사고 열광을 받겠느냐”고 그는 말한다.

 

임씨가 생각하는 ‘학교폭력 대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피해자 회복’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구에 문을 연 ‘마음봄센터’가 그 예다. 이 센터는 피해학생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곳인데, 일반 중학교 별관 건물 3~4층에 생겼다. 다른 교복이나 옷을 입고 그곳을 오가는 학생들은 학교폭력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 쉽게 드러난다. 임씨는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다시 상처를 받게 된다. 그곳을 피해학생이 찾아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피해자 회복을 최우선에 둬야 하는데 아이들의 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다. 빨리 성과를 낼 수 있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다보니 아무 실효성 없는 제도들에 예산과 인력을 쓰고 있게된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의 ‘2022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분석보고서’를 살펴보면, 초교 4년∼고교 3년 약 387만명 중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응답은 1.7%(5만4000명)로, 2021년 1차 조사보다 0.6%포인트 증가했다.


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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