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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역사상 2번째 큰 규모 은행 파산… ‘13일의 검은 월요일’ 오나

입력 : 2023-03-13 06:00:00 수정 : 2023-03-13 03: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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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SVB 파산 … 글로벌 금융위기 우려

美 자산 규모 16위 은행 붕괴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최대
영업망 둔 加·中·獨 등도 파장
국민연금 294억원 투자 추산
정부, 피해확대 가능성에 촉각

2021년 총 자산 2110억弗로 급증
금리 급상승에 이자율 위험 커져

벤처·스타트업 연쇄 파산 가능성
英선 ‘13일의 월요일 위기’ 제기

폐쇄 직전 거액 보너스 지급 논란
22일 美 금리인상 폭 불투명 전망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돈줄로 불리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 발생 약 이틀 만인 지난 10일(현지시간) 파산 수순에 접어들면서 그 여파가 금융·스타트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2008년 워싱턴뮤추얼 붕괴에 이어 미 역사상 2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라 당시처럼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과 우리 시장 및 경제·금융 당국은 이번 사태에 따른 즉각적인 변동성·불확실성은 없을 것으로 보면서도 확대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美 스타트업 돈줄 폐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경찰들이 10일(현지시간)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 탓에 금융 당국에 의해 폐쇄 결정된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앞에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총자산 2090억달러로 미 은행 순위 16위인 SVB의 파산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부른 워싱턴뮤추얼 붕괴에 이어 이 나라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다. 샌타클래라=AP연합뉴스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이날 불충분한 유동성(자금 여력)과 지급 불능을 이유로 SVB 지점을 폐쇄하고 파산관재인으로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임명했다고 밝혔다. SVB는 미국 내 자산 기준 16위 규모 은행으로, 미국 테크·헬스케어 벤처 기업의 약 44%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

뱅크런의 시작은 그레그 베커 SVB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8일 주주들에 보낸 서한이었다. 그는 “기준금리 인상과 높아지는 예금 인출 수요에 대비해 채권 등 약 210억달러(약 28조원)를 팔아 18억달러의 손실을 봤다”며 이를 메꾸기 위한 22억5000만달러 규모의 증자 계획을 발표했다. 불안감이 급격히 커진 투자자들은 앞다퉈 예금을 인출했고, 이후 회사는 매각으로 방향키를 돌렸으나 미 금융 당국이 폐쇄를 전격 결정, 증자 발표 44시간 만에 SVB는 문을 닫았다.

미국 정부는 파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긴급 대응에 나섰다. FDIC는 SVB의 자산을 신속히 매각해 투자자들이 이르면 13일 예금자 보호 비대상 금액까지 인출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이 11일 보도했다. 현재 미국의 예금자 보호 한도는 25만달러다. SVB의 예금 가운데 90% 이상이 이를 초과한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이 은행이 영업망을 둔 영국과 캐나다, 중국, 덴마크, 독일 등에도 파장이 이어졌다. 한국에는 SVB 지점은 없으나 국민연금이 상당액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 은행 주식 10만795주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294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경제·금융 수장들은 이날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에서 “아직까지는 이번 사태가 미국 은행 등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우세하다”면서도 “글로벌 금융 긴축으로 시장 변동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내외 금융시장, 실물경제 등에 대한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금융권 추가 파산 가능성에 대한 소비자의 심리적 불안이 은행권 전반의 신용 위기로 번질 경우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금융센터는 “2008년 리먼 사태가 글로벌 은행권 전반 위기로 확산된 데는 당시 취약한 재무 상황도 문제였지만 ‘서로를 믿지 못하는 신뢰의 위기’가 작용했음을 감안할 때 향후 은행권 전반에 대한 신뢰도 변화 여부가 큰 변수”라고 밝혔다.

 

◆1년 새 몸집 2배 커졌는데 고금리에 손실… FOMC 영향 주나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이 글로벌 자본시장에 던진 메시지와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 저금리 랠리와 이에 따른 유동성 홍수를 회수하고 물가를 잡기 위해 주요국이 단행 중인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 부작용과 이에 부실 대응한 은행 측 방만을 고스란히 보여준 게 SVB 파산이라서다. SVB 사태가 금융권 전반의 위기로 확산할지도 초미의 관심이다.

 

SVB가 순식간에 망한 가장 큰 이유는 금리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현지시간) SVB가 예금주에게서 자유로운 입출금이 가능한 단기 자금을 끌어모은 뒤 상대적으로 장기로 묶여 있는 미국 국채 등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몸집을 키웠는데 최근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손실이 가중됐다고 진단했다.

사진=AFP연합뉴스

미국은 코로나19가 유행하던 2021년까지 사실상의 제로(0)금리인 0.5% 기준금리(상단기준)를 유지하다 지난해부터 이를 한 번에 0.5%포인트씩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 등을 단행해 현재 금리를 4.75%까지 올려놓았다. 동시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이자가 SVB 재정 건전성을 밑바닥부터 무너뜨린 것이다.

 

은행 입장에선 금리 인상 속도에 맞춰 기존 자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것이 어려운 데다 금리 상승으로 은행이 보유한 국채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현금화를 할 경우에도 막대한 손실을 봐야 한다. SVB가 투자했던 장기 채권 210억달러(약 28조원)어치를 매각해 18억달러 손실을 본 이유다.

 

SVB의 자산 급증도 비슷한 맥락에서 사실상의 부실 확대였다. SVB는 예금 규모를 1년 사이에 거의 두 배로 끌어모으면서 2021년 말 총자산이 2110억달러에 달했다. 늘어난 예금만큼 지불해야 할 이자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악순환이 빚어지면서 겁에 질린 전주들이 단 이틀 사이에 예금을 빼간 게 파산으로 이어졌다.

 

WSJ는 SVB가 이토록 빠르게 덩치를 키우면서 이자율 위험을 그만큼 높게 떠안았는데도 감독 당국은 어떻게 이를 그냥 놔둘 수 있었느냐고 꼬집었다.

피해는 SVB의 주거래처인 미국 실리콘밸리는 물론 이 은행이 진출한 영국, 캐나다, 중국, 덴마크, 독일, 인도, 이스라엘, 스웨덴 등지의 예금주로 전가될 조짐이다. 이 은행 주요 고객인 벤처·스타트업 업계의 연쇄 파산 가능성도 거론된다. SVB는 미국의 경우 정보기술(IT)·헬스케어 벤처 기업의 약 44%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

 

이날 블룸버그·AP통신 등에 따르면 SVB 영국지점도 파산 선언을 앞두고 있으며 이미 거래를 중단하고 신규 고객을 받지 않고 있다. 약 180개의 영국 IT 기업은 “(은행이 문을 여는) 월요일(13일)에 위기가 시작될 것”이라며 당국의 즉각적인 개입을 촉구했다. 이른바 ‘13일의 월요일 위기설’이다. 이들은 “많은 IT 기업이 하룻밤 새 강제 청산에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SVB 파산으로 향후 미국 기준금리 인상 폭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뉴욕타임스는 SVB 파산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21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급격한 금리인상을 선택하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사태로 확산하는 건 최악의 경우다. 몇몇 은행들의 문제가 월스트리트를 넘어 전 세계 금융 시스템으로 전이됐던 2008년과 비슷한 양상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다는 게 일부 비관론자들의 견해다. 시장은 부동산 대출에 많이 노출된 중소 규모 지역 은행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다만 이들 일부 부실 은행이 정리되더라도 2008년처럼 시스템 위기로 전면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란 견해가 아직은 다수다. 우선 SVB처럼 스타트업에 쏠린 영업을 하거나 초과 현금을 대부분 미 국채에만 투자한 은행이 별로 없다고 CNBC방송은 설명했다. 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관투자자 비중이 높은 SVB와 달리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개인 소비자 비중이 높아 뱅크런(대량 인출 사태)에 휘말릴 확률도 낮다.

 

모승규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전반적으로 견조한 미국 경기를 고려할 때 경기둔화 흐름에도 불구하고 대형 크레딧 이벤트(신용경색) 가능성은 아직까지는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베커 SVB CEO

한편 그레그 베커 SVB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파산 발표 11일 전인 지난달 27일 모회사인 SVB파이낸셜 지분 1만2451주(약 360만달러·48억원)를 매각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10일 폐쇄가 결정되기 몇 시간 전에는 직원들에게 거액의 보너스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미 인터넷매체 액시오스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국내까지 불똥 튈라”… 경제·금융당국 긴장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사태에 12일 국내 경제·금융 당국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일단 국내 경제시장에 직접 미칠 파장은 제한적으로 판단되지만 금융시장 특성상 파장이 어디까지 밀어닥칠지 곧바로 가늠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분주해진 수장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두 번째)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첫 번째), 추 부총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세 번째)등 참석자들은 회의에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와 관련한 사항을 24시간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제공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이날 오전 가진 거시경제·금융현안 관련 정례간담회에서 SVB 사태를 집중하여 점검했다. 기획재정부는 이후 참석자들이 사태 파장 점검 및 대응책을 마련한 것에 자료를 배포했는데, 매주 있었던 정례간담회 후 논의 내용을 공개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당국이 선제 조치의 필요성을 인식했으며 상황을 가볍게 보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당국은 이번 사태와 관련, ‘24시간 모니터링’ 체제로 대비하기로 하고 필요할 경우 신속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일단 당국은 이번 사태가 국내 금융시장에 곧바로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국내 은행 중 SVB나 실리콘밸리에 비중을 둔 곳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럼에도 바짝 경계를 세우는 이유는 2008년 리먼 사태와 같이 연쇄 파급효과가 어떻게 일어날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3일 열릴 국내 주식·채권 시장에 앞서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는 SVB 사태의 여파로 다우지수가 1.07%, 나스닥 지수가 1.76% 하락하는 등 약세장으로 마감했다. SVB와 연관성이 있는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당장 영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 세계 스테이블 코인 중 시가총액 2위인 USDC가 준비금 400억달러 중 33억달러가량이 SVB에 묶여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1달러에 고정된 USDC 가격이 한때 0.87달러까지 떨어졌다. 앞서 지난해 ‘테라·루나’ 사태 당시 테라의 스테이블 코인이 1달러 선을 지키지 못하면서 가상자산 시장은 상당 기간 하락세를 겪었다. 지난해 말 기준 SVB금융그룹 주식 10만여주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국민연금도 수백억원대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항간의 3000억원대 손실은 SVB 주가가 정점에 달했을 때인 2021년 말을 기준으로 추계한 것이고 그간의 고가 매도나 저가 매수, 환율 변화 등이 반영되지 않아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면서도 “SVB가 다른 회사에 넘어가는 대신 상장 폐지된다면 수백억원대 손실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지안·송민섭·이예림·이도형 기자, 세종=이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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