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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각자 색은 달라도… 사이좋게 기대어 살아보자

입력 : 2023-03-09 20:58:38 수정 : 2023-03-09 20:5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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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감으로 전하는 긍정파워… 김명식 개인전

인간의 존엄과 자존감에 차별 있을까
다민족다인종 모인 뉴욕 풍경서 착안
키높이 맞춘 집 통해 화합·평등 전해

자연 속에 둥지 틀며 화폭에도 변화
초록색 전원의 생동감 그대로 살아나

그가 그린 그림들을 마주하면 순식간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찌든 일상을 정화하고 사념을 치유하는 힘을 지녔다. 그만의 색채가 전하는 긍정 에너지 덕분이다. 명랑하고 아늑한 인상의 화면 구성이 빼어나다. 밝음, 투명함, 그리고 비타민 같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온 이 시기, 우리 곁을 지켜야 할 그림이 아닐까.

 

김명식 화백의 작품 얘기다. 실제로 그의 그림은 병원, 은행, 호텔 등 대중 공간에서 널리 만날 수 있다.

노랑, 빨강, 하양, 주황, 검정, 파랑, 보라, 초록, 연분홍, 올리브 형형색색의 집들이 나란히 줄지어 서 있다. 표정에 다양한 감정을 띤 얼굴들이 모여 있는 듯하다. 누구 하나 튀지 않고 가지런하게 균형을 유지하며 서로 배려하는 모습이다. 정적인 편안함 가운데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생동감이 감돈다. 그가 지난해 그린 신작 ‘East Side-AU+2’의 첫인상이다.

 

이 작품 또한 그의 ‘이스트 사이드(East Side)’ 시리즈를 잇는다. 미국 뉴욕 맨해튼섬 동쪽 지역으로, 이 시리즈를 시작한 곳이다. 문화 시설들이 모여 있는 뉴욕 이스트 리버 주변 풍광을 그린 작품이지만, 이면엔 ‘인류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공동체 이상주의 신념’이 담겨 있다. 서로 다른 피부를 가진 다민족 다인종 사람들이 뉴욕에서 만나 반목과 화합의 혼재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착안해, 집을 의인화한 작품 시리즈를 내놓았다.

‘East Side-AU+2’ (162.2x130.3cm). 여러 인종을 다양한 컬러의 집으로 표현하던 형식을 그대로 이어가는 작품이다. 2022년 작. 청작화랑 제공

2004년 뉴욕에 머무를 때, 전철을 타고 이동하면서 창밖의 집들을 보다가 “이거다!”를 외친 뒤로 꾸준히 집들을 그려왔다. 저마다 형상들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마치 여러 인종이 한데 어우러진 뉴욕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집들의 크기가 균등한데 색깔이 다른 것은 인종차별이 없는 평등을 말하는 것이다. 차분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싸우지 말고 똑같이”라는 작가의 외침이 들려온다. 피부색을 걷어내면 이 세상 사람들은 차이가 있을까. 제각각 환경과 사연이 다르더라도 인간 본연의 존엄성과 자존감은 평등하다.

간혹 집들의 편편한 벽면에 작게 뚫린 창문과 대문은 정다운 표정을 지은 얼굴처럼 보인다. 그 따뜻한 얼굴들의 표정엔 일상의 근심거리를 내려놓게 하는 포근함이 담겼다. 무심한 듯 여린 미소 너머에서 엄마와 형제, 친구와 이웃의 얼굴이 보인다. 따라서 궁극적인 목적은 화합과 평화 그리고 희망이다.

 

그의 작품 속 지붕 위 초승달이나 새벽 여명에 가려 희미하게 떠오르는 해 등은 모두 희망을 나타내는 요소들이다. 차올라 보름달이 되고, 떠올라 온누리를 비추는 빛이 될 테니.

자연과 문명 그리고 인간의 조화로운 삶을 감각적이고 시원시원한 터치로 담아낸다. 삶 속에서 그림의 선한 의지가 얼마나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도 충분히 확인시켜 준다.

‘East Side -NOV07’ (72.7x60.6cm). 색채 수를 줄이면서 완성도에 충실하고, 담백한 미감을 추구한다. 2022년 작. 청작화랑 제공

김명식 화백만큼 성실하고 부지런한 작가도 드물 것이다. 지금까지 1만여점을 그렸다. 개인전만 해도 서울과 뉴욕, 도쿄, 마이애미, 밴쿠버, 상하이 등 국내외 여러 도시에서 80회 넘게 가졌다. 1984년 신세계화랑에서 첫 개인전 이후 40여년 동안 연평균 2회씩 개최한 셈이다. 이번에 내놓은 26점도 모두 신작이다.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90년대 ‘고데기(Kodegi Hill) 연작’부터다. 고향이었던 서울 강동구 고덕동(옛 경기도 고덕리)의 개발 이전 풍경을 모티브로 삼은 그림이었다. 이 ‘고데기 연작’은 부산 동아대 교수로 임용된 이후에도 한동안 지속되다가, 뉴욕에서의 경험이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 주었다.

잘 알려졌듯 김 화백의 그림은 조용하고 차분하며, 평온하고 안정적이어서 보는 이에게 담백한 미감을 안겨준다. 이 같은 성향이 일본 팬들의 정갈한 감성을 자극했을까, 유독 일본에서 인기가 높다.

김 화백이 일본에 체류할 때 느낀 점은 “의외로 컬러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체로 조용하고 두드러지지 않으려는 분위기였다”고 기억한다. 이때의 영향인지, 그의 그림에도 무채색 풍의 장르가 있다.

내년엔 일본의 메이저 갤러리 미조에갤러리(MIZOE Gallery)에서 초대 개인전을 연다. 도쿄와 후쿠오카에 단독 전시장을 운영 중인 대형 갤러리다. 이 갤러리에선 2011년부터 개인전을 열어와 벌써 5회째를 맞는다.

70대 중반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그의 행보는 광폭이며, 지금도 현대적 경향이나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몸담았던 대학을 정년퇴임하고도 탁월한 선택을 감행했다. 퇴임한 2015년 이후로 경기도 용인에 작업실을 꾸미고 둥지를 틀었다. 스스로 도심을 떠나 자연의 품에서 다시 태어났다. 작품도 걸맞게 큰 변화가 일었다. 그림 속 집들은 이제 온통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이고, 너른 대지와 마주한다. 이렇게 새로 등장한 작품이 ‘컨트리사이드(Countryside)’ 시리즈다. 김 화백만의 자연에 대한 해석을 짐작할 수 있다. 전원에 매료된 녹색 위주 풍경들이다.

‘Countryside -NOV11’ (72.7X60.6cm). 용인 전원에 매료되어 요즘은 녹색 위주의 풍경들을 주로 그린다. 2022년 작. 청작화랑 제공

‘Countryside’ 시리즈는 중경(中景)에 힘을 주고 있다. 그만큼 넓은 시야가 확보됐다. 하늘 위 새의 시선을 빌어 바라본 부감(俯瞰) 시점은 한눈에 방대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조율해준다. 앞쪽의 드넓은 평야를 넘어 군데군데 자리 잡은 집들은 소외되거나 외롭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없이 평화롭기만 하다. 그 사이엔 반드시 길이 있다. 여기서도 이웃과 소통하는 것이다.

작품 ‘East Side’ 시리즈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나 소통을 강조한 삶의 이야기’였다면, ‘Countryside’ 시리즈는 ‘인간 태생의 시원인 자연으로의 회귀에 대한 서정적 고백’이다.

23일까지 서울 압구정로 청작화랑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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