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초 일이다.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해뒀던 A(46)씨는 본인을 ‘과장’이라 소개한 사람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우리는 조그마한 사무실들을 계약하고 관리·임대하는 업체예요. 크게 어려운 일은 없으실 겁니다. 정직원 여부는 3개월 뒤에 면접을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A씨는 일을 해보겠다고 했고, 과장은 사무실 관리를 하려면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하다며 사업자로 등록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A씨는 본인을 간이사업자로 등록했고 다음 날부터 일을 시작했다.
순조로운 듯했다. 네이버스토어에 ‘소사무실’을 치면 여러 소사무실이 나왔고, 이중 회사가 계약하면 좋을 만한 곳을 찾아 과장에게 추천해줬다. 가끔은 과장이 가보라며 소사무실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월급(세전 300만원)도 문제 없이 받았다.
문제가 발생한 건 지난달 중순 쯤이다. 국세청은 간이사업자인 A씨에게 지난달 27일까지 세금신고를 하라고 안내했다. 이 같은 통보를 처음 받은 A씨는 회사에 이 사실을 알렸다.
회사는 “개인사업자 통장이 있어야 한다”며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면 되고, 앞으로는 월급도 개인사업자 통장으로 주겠다”고 했다. A씨는 별 의심없이 은행을 방문해 통장을 개설하려 했으나, 한 달 내 개인적으로 통장을 만든 적이 있다는 이유로 은행은 신규 통장 개설을 반려했다. 통상 금융기관은 신규 입출금 통장을 개설한 지 영업일 기준 20일이 지나지 않으면 또 다른 신규 통장을 개설해주지 않는다. 이는 대포통장이 양산돼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회사에 이를 알렸더니 회사 대답이 조금 바뀌었다. 회사는 당초 개인사업자 통장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갑자기 “어쨌든 세금신고를 하려면 실적이 필요하다”며 “개인 계좌로 돈을 보낼 테니 이를 현금화해서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A씨 계좌로 2330만원이 곧바로 입금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의심을 하지 못했던 A씨는 ATM기에서 현금을 뽑기 시작했다. 600만원을 뽑았을 때 출금한도가 막혀 돈을 더 뽑지 못했다. A씨는 은행 창구에 가서 상황을 설명했으나 돈을 뽑지 못한 채 은행을 나왔다.
이틀 뒤 A씨가 돈을 출금하려 한 개인 계좌를 비롯, A씨 명의 모든 계좌가 거래정지됐다. A씨가 2330만원을 입금받은 계좌는 전기통신금융사기 계좌로 등록됐다. 회사에 이를 알리니 “곧 해결될 것”이라고 했지만, 이후 회사는 연락이 두절됐다. 지금도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다.
A씨는 “알고 보니 (받은 돈이) 대출 사기와 관련된 돈이었고, 경찰서에 신고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며 “문제의 돈은 송금자를 찾아서 돌려줄 수 있었다”고 전했다. A씨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며 “앞으로 의심되는 것은 물어보고 알아본 뒤에 해야겠다”고 했다.
되돌아보면 A씨에게 제의를 한 회사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A씨는 입사 후 본인과 연락한 과장을 실제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을뿐더러 이들이 일하는 사무실도 가본 적 없었다. 항상 전화나 문자로만 지시를 받았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조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A씨가 통장에 입금받은 돈을 출금해 조직에 이를 전달했다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을 것이다. 범죄수익인지 몰랐더라도 본인 통장에 들어온 돈을 현금화해 전달했다면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볼 수 있어서다. 현재 법원은 이 같은 범죄에 단순 가담한 이들도 엄벌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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