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신체 평가는 성차별적 갑질
정부, ‘직장 내 괴롭힘’으로 봐야”
성희롱 노출 콜센터 女 상담사들
민노총 “감정노동 보호 대책 시급”
유엔총장 “여성 권리 세계적 위협
양성평등 실현 300년 걸릴 것” 개탄
“평생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직장 내 외모 갑질’을 겪기 전까지 제게 3월8일은 그저 평범한 하루였습니다.”
직장인 진가영(가명)씨는 “여성 직장인을 향한 3대 갑질로 불리는 성차별, 성희롱, 임신·육아 불이익을 저도 피해 갈 수는 없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회사 직원들이 유독 여직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거나 임원들이 먹은 컵을 설거지하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내가 2023년을 사는 게 맞나 싶었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회사 부장 A씨에게서 “내가 몇 년만 젊었어도 너랑 결혼했을 텐데”, “나랑 둘이 3차 술 마시러 가자” 등의 발언을 듣기까지 했다.

진씨는 지난 2월 회사 인사팀에 A씨를 성희롱으로 신고하고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 결과 A씨 등 가해자들은 퇴사했고, 이전보다 나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됐다. 그는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의 운동을 통해 ‘세계 여성의 날’이 생겼듯, 우리도 좀 더 목소리를 낸다면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존재하는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타파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3월8일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7일, 시민단체들이 여성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날 직장갑질119는 기자회견을 열고 직장에 만연한 성차별적 갑질을 규탄했다.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을 통해 지난해 10월14∼21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여성 응답자의 36.3%가 외모 지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13.2%)의 3배 수준이다. 외모 비하나 외모 간섭을 경험한 비율 역시 여성(22.8%·24.4%)이 남성(13.2%·11.4%)보다 높았다.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김한울 노무사는 “성별이라는 우위를 이용해 여성 노동자에게 행하는 외모지적·통제·강요는 정신적 고통을 야기할 뿐 아니라 추가 노동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근로조건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여성의 신체를 쪼개어 바라보고 평가하는 행위는 직장 내 성희롱에도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용노동부는 직장괴롭힘 관련 매뉴얼에 성차별적 괴롭힘 유형을 추가하고 이러한 차별적 언행도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명시해 규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 불평등과 더불어 감정노동, 저임금에 시달리는 콜센터 상담사의 건강권 보장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는 이날 세계 여성의 날 정신을 계승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으로 콜센터에서 일하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할 법이 생겼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이) 폭언 및 성희롱 피해를 받는 건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가 2021년 발행한 ‘콜센터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콜센터 상담노동자 1990명 중 47.6%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본 적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경제적 어려움(55.6%)과 스트레스 등 직업적 문제(53.4%)가 꼽혔다. 스트레스의 원인으로는 감정노동(75.8%)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한편 여성의 날을 앞두고 세계 여성 인권이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6일(현지시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가 주도한 여성지위위원회 개회식 연설에서 “양성평등 실현에 300년은 걸릴 것”이라며 개탄했다. 그는 “여성의 권리가 세계적으로 위협, 침해받고 있다”며 “수십 년에 걸쳐 얻은 변화가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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