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 협력 무너지고 신냉전 시사
中 군사굴기·北 핵태세 강화 위협
韓, 글로벌 중추 외교안보책 필요
지난해 10월 공표된 미국 국가안보전략서는 탈냉전 시대가 완전히 종언을 맞이하였다고 선언하였다. 그 이유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대한 중국의 경쟁적 도전 등으로 인해 강대국 경쟁 관계가 본격화하였고, 그에 더해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능력 증대 및 이란 등의 핵개발 시도 등을 제기한 바 있다. 같은 해 12월 공표된 일본의 안보전략 3개 문서도 유사한 상황 인식을 보인 바 있다. 필자도 종전의 국제 안보 질서가 중대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는 관찰에 동의한다.
탈냉전 질서란 미·소 대립의 냉전 시대가 끝나고, 소련을 대체한 러시아와 미국이 분야별 협력을 확대하고, 중국을 국제 경제 질서 등에 관여시키려 한 일련의 제도 내지는 규범의 확대를 그 특징으로 한다. 1990년대 이후 미국과 러시아는 유엔과 세계은행, 핵확산금지조약(NPT) 등 주요 국제기구에서의 협력을 확대하고, 동시에 핵군축과 우주 등의 분야에서도 협력을 심화한 바 있다. 상호 영공을 개방하여 핵사찰 등을 가능하게 한 오픈 스카이 조약이 1992년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30여개 국가 간에 체결되었고, 냉전기에는 개별적으로 추진되던 국제우주정거장 건설 작업이 1994년 이후에는 미·러 양국의 공동 협력 사업으로 전환된 바 있다. 2010년에는 미·러 양국이 보유 핵탄두를 1550발 수준까지 감축한다는 뉴스타트 조약도 체결되었다.

그러나 2020년대를 전후로 이러한 양 강대국 간의 협력 기조는 무너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냉전기에 체결되었던 미·소 양국 간의 중거리 핵전력 폐기조약(INF)이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폐지되었고, 이어 오픈 스카이 조약의 종료가 선언되면서 미·러 양국 간 핵군축 기조가 동요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을 맡고 있는 유엔 안보리가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NPT에서 인정된 핵보유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술핵 사용 가능성 및 뉴스타트 조약 탈퇴까지 시사하면서, 이제는 NPT 체제와 뉴스타트 체제 등 국제 핵 질서도 동요하고 있다.
미·러 간 협력 질서의 붕괴는 남중국해 및 대만 해협 방면에, 그리고 근공간(near space) 영역에도 정찰 기구 등 군사력을 투사하고 있는 중국의 전략적 도전과 더불어 기존 국제 안보 질서에 심각한 위기 양상을 노정하고 있다. 국제질서는 바야흐로 제2차 냉전이라고 불릴 만한 위기적 시대로 변화되고 있다. 이 같은 국제 안보 질서의 위기적 양상은 북한의 공세적 핵태세 강화와 함께, 한국의 안보 상황에도 중대한 도전적 요소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국은 6·25전쟁 종전 이후 한·미동맹을 기축으로 평화를 애호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눈부신 발전을 거두어 왔다. 그 결과 지금은 경제력이나 군사력 세계 10위 이내의 글로벌 중추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적 정체성과 증진된 국제적 위상을 바탕으로 동요하는 국제 안보 질서의 안정을 위해 응분의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국가임은 분명하지만, 상대적 약소국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일방적 침공이 성공하는 사태는 막아야 하고, 중국이 남중국해나 대만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현실화하는 시나리오도 방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방부 주도로 우크라이나 인근 동유럽 국가들과 군사 협력을 확대하거나, 지난해 외교부가 공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남중국해 및 대만 해협의 안정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작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된다. 또한 3월 말에 미국, 잠비아 등 30여개의 민주주의 국가와 더불어 제2차 국제민주주의 정상회담을 주최하게 된 것도 큰 의미를 가진다. 향후에도 아시아와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 간 연대와 협력을 다지는 유라시아 민주주의 벨트 구상도 제창해 볼 만하다. 나아가 유엔 안보리와 NPT 등 국제 안보 기구가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에 대한 전략적 기여 정책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국제 안보 질서가 동요할 때 중심을 잡는 국가로서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윤석열정부가 야심적으로 표방하는 글로벌 중추국가의 국가 비전에도 부합하는 외교 안보 정책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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