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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만에 ‘부활’하는 울산공업축제 [현장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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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02 20:00:00 수정 : 2023-03-02 19: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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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가 축제로 들이쑤셔지면 보통은 ‘세금 낭비’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소모·낭비성 축제들이 많은 탓이다. 35년 만에 다시 여는 ‘울산공업축제’로 울산도 들썩이고 있지만, 여느 지자체처럼 비판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축제의 ‘부활’이라는 단어까지 쓰며 반긴다. 축제가 가진 독특한 의미 때문이다.

 

축제는 ‘산업수도 울산’의 시작을 담고 있다. 울산은 1962년 1월 27일 대한민국 최초로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되면서 지금의 대한민국 대표 산업도시가 됐다. 지정 첫해 수출 26만달러를 달성했고, 2011년엔 전국에서 처음으로 수출액이 1000억달러를 돌파했다.

이보람 사회2부 기자

울산을 이러한 공업도시로 만든 건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특정공업지구 지정을 박 전 대통령이 했다. 그 흔적은 특정공업지구였던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와 울산의 랜드마크 ‘공업탑’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62년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울산공업센타 기공식 치사문’이 새겨진 기념비가 있다.

공업탑은 1967년 ‘특정공업지구 지정’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공업탑이 세워진 해 울산시민들은 특정공업지구 지정을 기념하는 의미로 ‘울산공업축제’를 열었다. 가족끼리 도시락을 싸들고 백일장과 체육대회를 즐기는 등 그야말로 울산시민들이 축하하고 즐기는 축제였다.

‘부활’엔 다른 의미도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사회 교과서에 나온 그 이야기다. 울산 도심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죽음의 강’으로 불렸다. 공단에서 무단으로 방류한 폐수 때문이었다. 이때쯤 울산공업축제도 사라졌다. ‘공업=공해’라는 인식이 생겨난 이유가 크다. 울산공업축제는 1989년 ‘시민대축제’, 1991년 ‘처용문화제’로 이름이 바뀌었다.

공해로 얼룩진 태화강은 울산시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수달과 연어, 삵이 다시 찾는 생명의 강이 됐다. ‘다시 살아난’ 강 덕분에 태화강 옆에 자리한 태화강공원은 2019년 7월 대한민국 두 번째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울산의 시작과 변화, 역사가 모두 ‘울산공업축제’에 담겨 있는 셈이다. 세금낭비성이나 치적쌓기용 축제로 보지 않는 배경들이다.

아쉬운 점은 있다. 축제 이름이 바뀌는 동안 울산의 근간인 기업들의 참여가 낮아졌고, 시민들이 참여해 즐길 만한 콘텐츠나 프로그램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서다. 학생부터 근로자까지 참여하고, 울산지역 기업들이 자동차, 배, 석유화학제품 모형을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던 대표 프로그램인 퍼레이드도 축제의 의미를 잘 살려 마련하지 않으면 자칫 시가지 행진 수준에 그칠 수 있다. 1960∼70년대 울산공업축제가 시민들의 축제였던 것처럼 울산시와 시민들이 좋은 콘텐츠를 마련해 오는 6월 열리는 ‘울산공업축제’가 세금을 낭비하는 또 하나의 축제가 아닌 대한민국 표준이 되는 축제로, ‘새로 만드는 위대한 울산’의 시작점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


이보람 사회2부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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