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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는 다수와 다를 뿐 잘못된 것 아냐”… ‘차별’에 대한 재판부의 일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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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2-21 22:49:49 수정 : 2023-02-21 22: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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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어떠한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

 

21일 동성 배우자에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판결을 한 서울고법 행정1-3부(재판장 이승한)는 “어떠한 차별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 간략하게 덧붙이고자 한다”며 이런 의견을 덧붙였다. 재판부가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을 넘어 이런 의견을 판결문에 밝힌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재판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각국에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성애와 같은 성적 지향 소수자들에 대한 명시적·묵시적 차별이 존재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 “성적 지향은 선택이 아닌 타고난 본성으로, 이를 근거로 성격, 감정, 지능, 능력, 행위 등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영역의 평가에 있어 차별받을 이유가 없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그에 따라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기존의 차별들은 국제사회에서 점차 사라져 가고 가고 있으며, 남아 있는 차별들도 언젠가는 폐지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 역시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전형적인 평등권 침해 차별행위 유형 중 하나로 열거하는 등 사법적 관계에서조차도 성적 지향이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며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공법적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재판부가 동성혼이나 동성 간 사실혼, 동성 배우자 등에 대한 법적 권리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재판부는 성 소수자 소성욱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동성 간 사실혼 관계는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법과 민법의 규정뿐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결정례, 대법원 판례에 비춰볼 때 혼인은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풍속적으로 정당시 되는 결합”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판결문에서도 ‘동성 부부’ 또는 ‘(동성) 사실혼 배우자’라는 표현 대신 ‘동성결합 상대방’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럼에도 동성이라는 이유로 ‘배우자’의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격을 박탈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동성결합이 피부양자 자격이 인정되는 사실혼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소득이나 재산 없이 피보험자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피부양자로 인정해 건강보험의 수급권을 인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고, 여기에 피부양자 제도의 존재 이유가 있다”며 “시대 상황 변화에 따라 사회보장 차원에서 보호 대상이 돼야 할 생활공동체 개념이 기존의 가족 개념과 달라지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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