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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병역비리 의심에 두 번 우는 뇌전증 환자

입력 : 2023-02-13 06:00:00 수정 : 2023-02-12 18: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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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세계 뇌전증의 날’

국내 15만명… ‘숨은 환자’ 20만명
‘정신병’ 오해받아 취업·결혼 지장
치료 기피… 숨기고 입대 후 사고도
“체계적 관리” 보호법안 국회 계류
#. 심모(33)씨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뇌전증 진단에도 군에 다녀왔다. 초등학교 때 ‘대발작’을 일으킨 뒤 대학생 때까지 약을 복용했다. 군 신체검사 당시 뇌전증 증상을 알린 뒤 ‘면제받으면 운전면허 취득이나 일상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 면제를 원한다면 안 갈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군 복무를 택했다. 그는 “심한 뇌전증 환자는 발작 시 넘어져 이가 깨지기도 하고, 운전이나 음주도 못하는 등 위축된 사람들”이라며 “뇌전증 환자 본인은 진짜 아파서 병역 면제를 받거나 보충역 판정을 받아도 ‘연기한 거 아니냐’는 말을 들을까봐 주변 시선에 민감하다”고 토로했다.

 

최근 허위 뇌전증 진단으로 병역면탈을 시도한 운동선수, 배우 등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지면서 뇌전증이라는 질병도 주목받았다. 하루 평균 400명 이상이 진료받을 만큼 흔한 병이지만 사회적 편견이 여전한 상황에서 병역비리와 엮이면서 실제 환자들은 더욱 불편한 시선을 감내하고 있다. 2015년부터 매년 2월 둘째 주 월요일을 ‘세계 뇌전증의 날’로 정하는 등 뇌전증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해온 환자들 사이에서는 그간의 노력이 수포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12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뇌전증 환자는 14만8293명이다. 뇌전증은 뇌신경세포에 이상이 생기면 연령·성별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발병할 수 있다. 그러나 유전병, 정신병이라는 오해를 받고, 파혼당하거나 직장에서 근무하지 못하는 등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냉담한 사회의 시선을 받고 있다. 과거 ‘간질’로 불리던 병명을 2012년 뇌전증으로 바꾸고 십여년간 인식 개선 사업을 펼쳤으나 실제 환자들이 체감하는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박모(23)씨는 “11세 때 뇌전증이 발병해 멍하니 있거나 몇 초간 의식을 잃는 ‘소발작’이 나타나는 탓에 현재까지 약을 복용한다”며 “신경질환임에도 여전히 ‘일 잘 못한다’, ‘공부 못한다’ 같은 편견이 너무 많은 질병”이라고 했다.

최근 뇌전증 환자 행세를 한 뒤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고, 이를 병무청에 제출해 병역을 감면받거나 등급을 낮춘 이들로 인해 실제 뇌전증 환자들의 한숨은 더 깊어졌다.

신원철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대한뇌전증학회 사회이사)는 “젊은 환자 중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숨기고 군대를 갔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며 “군대에서 근무하다가 환자 본인이나 동료가 다칠 수 있는 상황을 막아야 해 병무청에도 의학적인 판단을 잘 활용해달라고 요구 중”이라고 전했다.

뇌전증 관리 체계를 개선하고 환자를 보호할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이어지고 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한국뇌전증협회는 전국에 숨은 뇌전증 환자가 20만명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뇌전증 관리 및 뇌전증환자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계류 중이지만 관련 논의에는 진척이 없다. 김덕수 한국뇌전증협회 사무처장은 “장애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수만명의 뇌전증 환자가 관리 경계에서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며 “뇌전증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시스템을 구축하고 일반의 인식을 개선해 차별 방지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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