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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한 구호품 대신 시신만 고향에… 12년 내전 시리아 ‘통곡’ [튀르키예 대지진]

입력 : 2023-02-09 18:20:00 수정 : 2023-02-09 23:3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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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한 운명의 난민들

전쟁 피해 떠난 튀르키예서 참변
국경지대에 난민만 100만명 달해
도로 파손… 서방 제재로 원조 막혀

희생자 주검만 잇따라 도착 ‘참담’
추위 속 난방기구·텐트 등 모자라
“시신 수습 가방도 부족” 지원 호소

7일(현지시간) 오후 튀르키예와 시리아 북서부를 잇는 바브 알하와 국경통제소. 반군이 장악한 시리아 북서부로 인도주의적 지원 물품이 들어가는 유일한 유엔 승인 통로인 이곳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혹한을 뚫고 몰려들었다. 굳은 표정들 사이로는 오직 침묵만 감돌았다.

 

튀르키예 쪽에서 온 승합차가 멈추자, 사람들은 차량 뒤쪽으로 몰려들었다. 국경 근무자가 “아흘람”이라고 이름을 불렀다.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지진 발생 사흘째인 8일(현지시간) 특히 피해가 큰 튀르키예 하타이주의 한 도시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렸던 남성이 구조대원이 건넨 밧줄을 붙잡고서 밖으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어서 가서 네 여동생의 시신을 확인해.”

 

옆에 있던 남성이 아흘람의 오빠를 재촉했다.

 

“못 하겠어.” 오빠는 고개를 저었다.

 

“가슴에 아직 동생 얼굴이 남아 있어. 내 기억 속 아흘람 얼굴이 바뀔까 봐 두려워.”

 

결국 다른 사람들이 신원을 확인한 뒤 타고 온 차량으로 시신을 옮겼다.

 

아흘람은 이제 고향땅에서 마지막 안식에 들게 될 것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 바브 알하와의 시리아 쪽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12년 전 발발한 내전 이후 공습을 피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튀르키예로 피란한 시리아인은 약 400만명. 튀르키예 보건부가 현지에서 숨진 시리아인의 시신을 이곳을 통해 송환하곤 했는데, 6일 지진 발생 후 며칠간은 인도적 지원이 끊기고 희생자들의 주검만 잇달아 도착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날 85구가 도착한 데 이어 8일에도 수십 구가 인계됐다. 일부는 시신가방 대신 방수포나 담요 따위에 싸인 채였다.

 

사촌의 13세 딸 야라 이브나야트의 시신을 인수하기 위해 7일 숙모와 함께 이곳에 온 아흐마드 알유수프는 “시리아에서 죽지 않은 사람들은 튀르키예에서 죽었다”며 허탈해했다. 야라의 가족은 2013년 내전이 격화하자 시리아 하마주의 작은 마을을 떠나 튀르키예 접경 지역으로 이동했지만,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가족은 국경을 넘었다. 그러나 지난 6일 규모 7.8의 강진이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뒤 야라는 튀르키예의 보금자리 잔해 속에서 싸늘히 식은 채 발견됐다. 부모와 남자 형제는 아직 잔해 더미 속에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간) 튀르키예에 위치한 커뮤니티센터에 마련된 지진 이재민 임시 대피소에서 이재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뉴스1

사르마다 인근에서 천막생활을 한다는 그는 “우리는 고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들 사이에 묻히길 바란다”고 했다. 야라는 할머니가 살고 있는 마을 공동묘지에 묻을 생각이다. 공습 사망자가 하도 많아 시리아 북부 지역 공동묘지에는 당장이라도 다음 망자를 맞을 수 있도록 몇 개의 묘터가 늘 파져 있다고 한다.

 

알유수프는 차량 안에서 추위를 피하다 새로운 시신이 도착할 때마다 나가 봤지만, 야라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7일 오후 11시30분쯤 국경 관료가 “오늘은 더 이상 시신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 다음날을 기약하며 천막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8일 알유수프는 야라의 시신 송환이 지연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야라 가족의 시신이 마저 수습돼 다 같이 만날 수 있기를 아마도 그는 바랄 것이다.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으로 급파된 대한민국 긴급구호대가 9일(현지시간) 하타이주 안타키아에서 구호활동을 하고 있다. 구호대는 이날 70대 남성 등을 구조했다. 외교부 제공

이처럼 시신 송환이 간간이 이어지고 있으나 구호 손길이 끊겨버린 것은 주변 도로의 파손이 심하고 튀르키예의 구호 단체들이 입은 지진 타격도 컸기 때문이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국제적십자위원회 중동지부는 난방기구, 텐트, 식음료 등은 물론 시신을 수습할 가방도 부족한 상태라며 지원을 호소했다.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에서 구호활동을 하는 살라흐 압둘레가셈은 영국 스카이뉴스에 “튀르키예에서는 조직적인 수색·구조가 이뤄지고 있으나 시리아에는 그런 게 없다”며 “오랜 내전으로 국경지대에 난민이 100만명이나 되고 가장 추운 계절이어서 상황이 더 악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리아는 미국,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고립된 처지여서 구호활동에도 어려움이 크다. 국제사회는 내전, 전염병, 혹한에 이은 지진 피해로 신음하는 시리아 북부 주민들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유엔 측은 바브 알하와를 통한 유엔 구호품 전달이 9일부터는 재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EU는 시리아 정부가 공식적인 지원 요청을 해옴에 따라 회원국들에 의약품과 식량 지원을 권고했다.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구호물자를 실은 트럭 6대가 이날 시리아 서북부 국경을 넘어 반군 장악 지역으로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AFP는 이 트럭에 텐트와 위생용품이 실려 있었다고 전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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