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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재가동 기다리다 줄폐업… “특별법 만들어 보상을” [심층기획-공단 폐쇄 7년,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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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2-09 06:00:00 수정 : 2023-02-09 16: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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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입주기업의 30%가 회사 문 닫고
일부는 수십억원대 완제품 못가져와

“중국서 일주일 걸릴 제품을 당일 출고
北근로자 혈육보다 가깝게 느꼈는데…”

기업인들 “정부, 피해액 30%만 보상”
‘공단폐쇄 적법’ 헌재 결정에 좌절도
“남북관계 회복돼야… 국민 관심 필요”

“내일이라도 개성공단이 열리면 100m 달리기하는 심정으로 달려가고 싶다.”(신한용 신한물산 대표)

10일은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7년이 되는 날이다.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북한이 ‘공업지구 개발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면서 첫발을 뗀 개성공단은 박근혜정부 때인 2016년 2월10일 문을 닫았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도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당시 결정으로, 이제 개성공단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그런데도 개성공단의 문이 닫히던 그날을 잊지 못하는 기업인들에게 그 의미와 남아 있는 희망을 들어봤다.

경기 파주시 판문점 3초소에서 북한의 개성공단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개성공단 전성기 지나 인건비 상승에 일부 사업 정리

올해 창립 28주년을 맞은 신한물산의 신한용 대표는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2004년을 기업의 전성기로 기억한다. 그는 8일 “중국에서 생산하는 데 일주일 걸릴 물건이 개성에서는 오전에 원부자재가 들어가 오후에 출고돼 신속성이 있었다”고 했다.

근로자들끼리 언어가 통하는 점도 장점이었다. 신씨는 “처음에는 북한 사람들이 이마에 뿔 난,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2년 정도 지나니 혈육인 사촌들보다 더 가깝게 느끼게 됐다”고 했다.

개성공단기업협회 전 회장인 정기섭 SNG 대표는 개성공단 폐쇄 뒤 섬유와 의류 제조 사업을 아예 정리해야 했다. SNG는 2004년 개성공단에 입주해 남한 측 직원 10명, 북한 측 근로자 1000명을 둔 기업이었으나 나머지 124개 기업과 마찬가지로 완제품을 수거하지도 못한 채 개성공단을 떠났다.

그는 섬유 제조업에 대해 “개성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사업”이라며 “스스로 접었다기보다 다시 열릴 것을 기다렸고, 기다리다가 타의에 의해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면서 대전 공장의 결손을 개성공단이 메꿔줄 수 없게 되자 사업을 정리했다. 공장 건물을 활용해 어린이 놀이시설로 업종을 바꿨다. 그는 “정상적인 사업이라 보기 힘들고, 마지못해 명맥만 이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제씨콤 대표인 이재철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도 개성공단 입주 당시 주력했던 야구공, 인공치아 제조 사업에서 손을 뗐다. 그는 “남한에서는 만들수록 적자인 업종”이라고 부연했다. 현재는 인터넷용 광통신 케이블만 생산 중인데 그는 개성공단에 두고 온 완제품만 15억원 규모라고 추산했다. 이 회장은 “중국 쑤저우시(?州市)에도 공장이 있는데 당시 설 연휴로 중국에서 생산하면 납기일을 못 맞추니까 개성공단에서 완제품을 미리 많이 만들어 놨다”며 폐쇄 다음 날 직원 1명, 차 한 대로 생산 설비와 완제품을 가져오긴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개성공단 기업들은 실질 피해 금액의 3분의 1만 정부 보상이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원부자재, 토지, 건물 등을 포함해 기업들이 추산하는 피해 규모는 대략 1조5000억원이다. 정부가 개성공단 투자 공공기관에 지급한 210억여원의 경협보험금을 빼면 5412억원만 지원금이 지급됐다는 주장이다. 반면 정부는 피해액을 7861억원으로 추산했다. 협회에 따르면 지친 기업인들 다수는 폐업에 들어갔다. 신 대표는 “전체 개성공단 기업의 30%가 폐업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에 있는 한 의류공장에서 북측 근로자들이 작업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1월 헌법재판소 결정에 또 한 번 좌절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월27일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을 기각·각하했다. 헌재는 개성공단 폐쇄 조치가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려는 국제적 합의에 이바지하고, 절차도 적법했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재산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도 없다고 했다.

기업인들의 좌절은 깊어졌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근거로 보상을 추진하려 했던 의지가 꺾였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그 결정은 개성공단, 나아가 남북경협에 대한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정 대표는 “지난해 7월 북한이 개성공단 내 일부 공장을 무단 가동했을 때 우리 정부가 ‘재산권 침해를 중단하라’고 촉구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통일부 말대로 개성공단 무단 가동이 재산권 침해라면 개성공단 폐쇄도 재산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논리다.

기업인들은 피해보상 특별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1년 정부가 코로나19로 영업손실을 입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손실액의 일부를 보상한 것처럼 개성공단 폐쇄도 손실보상법을 만들어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부뿐 아니라 중소벤처기업부, 산업통상자원부와 같은 유관부처의 공동 대응도 주문했다. 신 대표는 “개성공단기업협회장 당시 2년간 수없이 요구한 내용”이라며 “협회 측에서 중기부나 산자부에 직접 접촉하기 어려웠고, 지금처럼 남북 관계가 악화한 상황에서는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기업인들은 근본적으로 남북 관계가 회복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 대표는 “윤 정부는 ‘담대한 구상’이라고 하는데 실체가 없다”며 “그러니 시민들도 이제는 개성공단이 물 건너갔다고 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개성공단이 흘러간 유행가 같지만, 언론과 시민들이 관심을 계속 가져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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