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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공판 취재를 위해 법정에 앉아 있다 보면 문득 피고인의 머릿속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피고인이 법정을 내려다보던 재판장석이나 피고인을 마주 보던 검사석에서 돌연 자리를 바꿔 앉게 된 사람일 때는 더욱 그렇다. 그는 법률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검사의 주장을 배척할 만한 획기적인 논리를 구상하고 있을까, 상대의 사법연수원 기수를 따져보고 있을까, 그저 뒤바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을까.

법조인보다는 좀 더 친숙한 사람도 있었다. 대장동 사건으로 1년 넘게 재판을 받고 있는 김만배씨다. 기사에서 그를 언급할 때는 주로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라는 설명을 달지만, 한때는 그도 기자였다. 수사 기관에 출석하는 피의자에게 심경을 묻거나 법정에 선 피고인들을 봤을 것이다. 취재하던 사람에서 취재받는 사람이 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까마득한 후배들을 보며 자신도 (개발업자가 아닌) 기자로서 열정이 있던 때를 떠올렸을까. 모든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이 상황을 통탄했을까.

이종민 사회부 기자

2021년 여름쯤 대장동 사건이 처음 알려졌을 때 김씨를 두고 “기자도 저런 ‘큰일’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다. 기자가 촌지를 받거나 기사를 무기로 갑질을 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업무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개발 업계에서 1000배가 넘는 투자 수익을 냈다고 하니 보통내기는 아니다 싶었다. 한편으론 김씨가 가진 기자 명함은 그에게 로비 활동을 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기에 기자나 언론이 싸잡아 비난받을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듯하다. 다른 기자들이 그와 수상한 금전 거래를 했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김씨와 억대의 돈을 주고받은 일간지 기자 세 명은 최근 회사에서 해고됐거나 사표를 냈다. 이외에도 김씨와 기자 시절 선후배 관계로 지내다 화천대유 같은 대장동 개발업체에서 수천만원을 받아간 사람이 여럿이다. 김씨가 벌인 ‘큰일’이 생각보다 나와 가까운 곳에서도 벌어졌겠다 싶었다.

대장동보다 30년 앞선 1991년 보건사회부(보건복지부) 출입 기자들이 업계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아챙긴 ‘촌지 사건’이 있었다. 언론 나름의 자정 노력이 있었고 2016년 언론인에게도 적용되는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시행됐다. 그럼에도 이듬해인 2017년 삼성 미래전략실 장충기 사장과 주요 언론사 간부들 사이 청탁이 오간 ‘장충기 문자’ 사건이 터졌다. 지난해엔 일명 가짜 수산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중견 언론인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뉴욕타임스(NYT)가 만든 ‘혁신보고서’는 저널리즘의 윤리 기준 원칙과 비즈니스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의 언론사들도 이 영향을 받아 저마다 ‘디지털 퍼스트’라는 구호를 외쳐오고 있다. 그러나 NYT의 윤리 기준을 들여올 생각은 없어 보인다. NYT는 주요 보직자의 주식 보유를 제한하고 취재 대상에게 선물을 받았을 때 거절하는 편지 양식까지 세세하게 정해놨다. 가이드라인을 만든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일로 허탈감을 느끼는 동료 기자를 위해, 언론을 향한 불신의 골을 메우기 위해, 지금은 다시 머리를 맞대 고민할 때다.


이종민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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