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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비만해 보이는 중년 여인이 쇼핑 카트 한가득 물건을 담았다. 한 묶음의 코카콜라와 우유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초코칩과 갖가지 인스턴트 스낵, 잡다한 물건을 쌓아올려 카트가 금방 넘어질 것 같다. 미장원에서 방금 나온 듯 헤어롤을 만 머리에 보자기를 뒤집어쓴 채 담배까지 물고 있다. 나만 좋고 만족하면 된다는 듯 남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뻔뻔함이 읽힌다.

미술작품 같지 않고 현실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조각가 두에인 핸슨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실제 인물로 조각작품의 주형을 뜨고, 그녀가 입었던 옷과 신발과 핸드백을 사용했다. 카트와 그 안의 물건도 실제 것들로 채웠다. 이른바 극사실주의 작품인데, 미니멀 아트나 색면 회화 같은 극단적인 추상 미술이 공허한 형식이 되었다고 비판하며 나타난 양식이다.

두에인 핸슨, ‘슈퍼마켓 부인’(1969)

극사실주의자들은 미술을 삶의 내용과 다시 결합하기 위해서 생활 속 대상이나 환경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주로 다룬 소재들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인데, 작품 속 소재보다 묘사 방법과 기교에 주목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기법에 주목하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생활 속의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는 의도였다. 일상적인 생각을 다듬고 승화시킨 생활환경에서 살게 하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는 점에서다.

어떤 점을 주목하고 생각하게 했을까? 물질적 풍요를 누리던 1960년대 미국 사회 모습을 나타냈는데, 핸슨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물질적 풍요 뒷면의 어두운 점도 생각해 보자는 제안을 담았다. 물품구매력과 소비행태로 사람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와 과잉소비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경종도 있었다.

경제가 어렵다.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고,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선지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은 끝나 가지만 마음은 편치가 않다. 소비가 아닌 낭비와 방종처럼 보이는 이 작품이 그리 낯설게 보이지만은 않는다는 게 좀 더 씁쓸하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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