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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지휘 거장과 음반사 사로잡은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 “외국서 태어나고 오래 살았지만 나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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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1-27 17:00:00 수정 : 2023-01-27 16: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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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DG)을 통해 새 음반 ‘바버, 브루흐’를 발매한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 마스트미디어 제공 

세계적 지휘 거장과 클래식 레이블이 낙점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미국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유럽에서 자랐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자부심을 느끼는 에스더 유(29·한국명 유지연)가 새 음반 ‘바버, 브루흐’를 들고 돌아왔다. 

에스더 유는 26일 서울 강남구 복합문화공간 오드포트에서 열린 신보 발매 간담회에서 음반 소개와 함께 어려서부터 푹 빠진 음악에 대한 애정 등을 담담하게 풀어 놓았다. 

 

바실리 페트렌코가 이끄는 영국의 로열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이번 음반에는 독일 낭만주의 전통을 고수한 막스 브루흐(1838∼1920)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미국적 선율을 품은 사무엘 바버(1910∼1981)의 바이올린 협주곡, 벨기에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 앙리 비외탕(1820~1881)의 ‘아메리카의 추억’ 중 ‘양키두들’이 수록됐다. 도이치그라모폰(DG)을 통해 발매한 다섯 번째 음반이다. 그래미상을 열 번 이상 받은 앨범 프로듀서 크리스토퍼 알더가 맡아 런던 헨리 우드 홀과 왓퍼드 콜로세움에서 녹음했다.

 

에스더 유는 “제게 너무나 소중하고 가까운 곡들을 담았다”고 했다. “브루흐 곡은 어릴 때부터 사랑했던 협주곡이어서 꼭 녹음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성장하며 많은 단계를 함께 경험한 곡이에요. 바버 협주곡은 최근 알게 됐는데 처음부터 친숙하게 느껴졌어요.” 그는 이어 브루흐와 바버가 각각 28살과 29살 때 해당 협주곡을 작곡했다면서 “지금 제 나이와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두 곡이 다른 면도 있지만 감정 표현에선 비슷한 부분도 있어 골랐다”고 말했다.

 

비외탕이 미국에 방문했을 때 동요 ‘양키두들’을 접하고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을 이날 직접 연주해 들려준 에스더 유는 “어릴 적 미국에서 아빠랑 차를 타고 여행을 갈 때 카세트테이프로 들으며 함께 노래하곤 했던 곡”이라며 “제 스토리와도 어울려 녹음했다”고 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4살 때 뉴욕 스즈키 스쿨에서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6살 때 부모를 따라 벨기에로 이주한 뒤 8살 때 현지 오케스트라와 협주곡 데뷔 무대에 올랐다. 그저 음악이 좋고 연주를 많이 하고 싶어서 지역 학교와 교회 등을 두루 다니며 연주하다 8살에 이탈리아 포스타치니 콩쿠르와 10살에 폴란드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주니어 부문 1위도 했다. 하지만 뮌헨국립음대를 들어가기 전까지 중고교 시절 일반 학교를 다니며 학업과 음악을 병행했다. 그러면서도 16살이던 2010년 시벨리우스 콩쿠르에 나가 최연소 입상(3위)을 해 세계 클래식계 주목을 끌었다. ”당시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배우고 있었는데 결선에 오르면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핀란드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수 있다고 해 참가하게 됐어요.”

 

2년 후인 2012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도 역대 최연소 입상(4위)을 했다. 그해 프랑스 출신 세계적 지휘 거장 로린 마젤(1930~2014)은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아시아 투어 공연 협연자로 에스더 유를 점찍었다. 2014년에는 명피아니스트이자 지휘 거장인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86)와 남미 5개국 순회 공연을 함께했다. 아시케나지·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는 ‘시벨리우스, 글라주노프 협주곡’(2015)과 ‘차이콥스키 협주곡’(2017) 음반(DG)도 냈다. 

 

2018년엔 로열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주연주자가 돼 10대 장애 청소년을 위한 음악 치료 등 다양한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필하모니아와 로열 필하모닉 모두 ‘런던 빅5 명문악단’에 속한다.

영화음악과 현대음악에도 관심이 많은 에스더 유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주인공인 영국 영화 ‘체실 비치에서(On Chesil Beach, 2017)’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음반(데카)을 내놨다.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작곡가가 라디오에서 그의 연주를 듣고 먼저 연락해 맡겼다고 한다. 미니멀리즘 계열 연주자 채드 로슨과 손잡고 지난해 낸 음반 ‘Breathe’(데카)도 호평을 받았다.

피아니스트 장 주오, 첼리스트 나렉 하크나자리안과 결성한 ‘젠(Z.E.N)’ 트리오로 ‘브람스 드보르자크 트리오’(2017), ‘Burning Through the Cold’(2020) 음반도 DG를 통해 낸 바 있다. 

이들 음반은 모두 그가 사용하는 170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프린스 오볼렌스키’로 녹음했다. 약 10년 전 미국인 소장자가 그의 연주에 감동해 사용하라고 빌려준 것이라고 한다. “(옛날) 러시아 왕자가 한동안 갖고 있던 악기여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데, 제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연주회도 계속 찾아와주시던 분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고 처음 빌려주는 악기’라며 건넸어요.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미국과 벨기에·독일·영국 등 해외에서 보낸 시간이 많은 에스더 유는 점차 한국인이란 정체성이 강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아무래도 외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한국에선 저를 외국 사람으로 보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외국에서 오래 살아도 저는 한국인이고 외국(미국·유럽)에선 항상 아시아인 소수자입니다. 어느 나라에서 살든지 항상 집안에선 한국말을 썼어요. 영어, 불어, 독어를 모두 하지만 처음 배운 언어는 한국어였고, 학교 다닐 때도 밥과 계란말이 등 한식으로 싼 도시락을 들고 다녔습니다. 맵고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서 ‘시원하다’고 말하죠. 영락없이 한국 사람이라고 느껴요.(웃음)”

해외 공연 중 한국 식당을 찾기 어려울 때도 있다 보니 가장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스스로 끓여 먹게 됐고, 이제는 외국 친구들도 맛있다며 끓여달라고 할 정도다.

에스더 유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의 신년음악회에 협연자로 나서 앨범 수록곡인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선보일 예정이다. 

앞으로 한국에서 리사이틀도 열고 싶다고 하는 그는 해외 공연 일정도 바쁘게 이어간다. 다음달 태국 방콕을 비롯해 독일, 콜롬비아 등에서 연주할 예정이다. 페트렌코와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투어를 진행한다. 가을엔 호주 멜버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데뷔 무대를 갖고 뉴질랜드에서도 첫 무대에 오른다. 그는 “너무나 사랑하는 음악을 다양한 음악가들과 작업하고 도전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싶습다”며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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