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혼부부나 청년 주택 구입 등 지원책이 있지만 불충분한 측면이 있다… 원금에 대해 일정 부분 탕감할 수 있는 부분은 없나 들여다보고 있다.” (2023년 1월5일, 당시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신년간담회에서)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 부위원장이 밝힌 자녀 수에 따라 대출금 탕감하거나 면제하는 정책방향은 개인 의견일 뿐.” (1월6일,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지난해 10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위촉으로 윤석열 대통령 옆에 섰던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불과 3개월여 사이에 부위원장 해임에 이어 차기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기까지는 앞서 언급한 두 대목 영향이 가장 크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나 전 의원은 지난 5일 부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한 신년간담회에서 결혼하면 4000만원을 대출해주고 첫 자녀 출산 시 무이자 전환, 둘째·셋째 출산 시 각각 원금 일부 또는 전액을 탕감해주는 헝가리의 출산 장려 정책을 언급했다. 대통령실 참모가 간담회 이튿날 실명으로 나 전 의원을 비판하는 이례적 상황이 펼쳐지면서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전당대회에 개입하는 모양새라는 해석이 나왔고, 윤 대통령에게 사의를 전달했다가 ‘해임’된 나 전 의원은 ‘대통령의 본의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후 대통령실과 초선 의원들의 거센 십자포화까지 일으키면서 사실상 ‘윤심’이 등을 돌렸다는 분석을 낳았다.

‘친윤(친윤석열)’을 자임했던 나 전 의원은 이 시점에 ‘반윤(반윤석열)’ 낙인까지 선명해지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 됐을 것으로 보이는데, 보수 정당 4선 출신에 한때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의 원내대표를 지냈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과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등 굵직한 이력을 지닌 대표적인 ‘스타 여성 정치인’이었으나, 차기 집권 여당 사령탑 자리를 노리는 상황에서 후보 등록도 하지 못한 채 하차하면서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봉착한 셈이 됐다.
높은 대중적 인지도와 보수층 내 지지기반으로 드문 ‘스타 중진’으로 손꼽히는 나 전 의원은 지난해 연말부터 당 대표 출마설이 거론된 데 이어 각종 여론조사에 적합도 1위에도 오르는 등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지지도를 자랑했지만, 김기현 의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보이는 주류 ‘친윤계’로부터 거센 불출마 압박을 받더니 25일 결국 차기 당 대표 불출마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나 전 의원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 출마가 분열의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국민들께 정말 안 좋은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는 부분이 있기에 당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출마를) 그만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솔로몬의 재판’에 나오는 ‘진짜 엄마’에 자신을 비유했다. 아무런 목격자가 없는 가운데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기가 엄마라며 다툰 두 여인에게 자식을 소중히 여기는 모성을 이용해 ‘아이를 갈라 나눠주라’는 솔로몬의 말을 듣고서, 아이를 살려 상대에게 주라던 진짜 엄마를 끌어온 것이다.
이는 자식을 지키기 위해 자식을 포기한 진짜 엄마처럼 당의 화합과 국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 당권 도전을 포기한다는 나 전 의원의 생각으로 해석됐다.
특히 불출마 선언 이후 일문일답에서 나 전 의원은 극히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실 불출마 압박 여부에 대한 질문이나 선언문에 포함된 ‘포용과 존중을 포기하지 말라’는 호소가 누구를 겨냥했냐는 물음에 “제가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불필요한 오해를 살 것 같다”는 답변으로 오로지 당의 화합과 통합을 바란다고 나 전 의원은 강조했다. 계속해서 당권 경쟁자인 김 의원이나 안철수 의원 중 누구를 도울 계획이 있냐는 물음에도 “어떤 후보나 다른 세력의 요구·압박에 의해 결정한 게 아니다”라며 “제가 앞으로 전당대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공간은 없고, 어떤 역할을 할 생각도 없다”고 답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저는 영원한 당원입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