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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도 찾은 그 국숫집 물려받은 딸 “편가르기 바쁜 세상, 따뜻한 밥 한끼에 웃었으면”

입력 : 2023-01-23 17:54:16 수정 : 2023-01-24 18: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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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역사’ 삼각지 국숫집 주인 배혜자씨 별세…무전취식 노숙자에도 “뛰지마, 다쳐” 걱정한 일화 '유명'
尹 취임 후 참모진과 첫 외식 장소로도 화제
옛집국수 물려받은 딸 “어머니처럼 온정의 손길 계속 건넬 것”
지난 18일 주인 배혜자씨 별세 후 잠시 휴점했다 다시 영업을 재개한 서울 용산 삼각지역 인근 ‘옛집국수’ 전경. 김수연 기자

 

1998년 겨울 무전취식하고 도망치는 노숙자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넨 미담으로 화제가 됐던 서울 삼각지역 인근의 ‘옛집국수’ 주인 배혜자씨가 최근 향년 8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들은 고인의 뜻을 받들어 이 자리에서 ‘어머니의 마음’처럼 장사를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전했다.

 

지난 18일 옛집국수에서 만난 배씨의 딸 김진숙(63)씨는 “어머니 삼우제를 지낸 후 이번 주부터 다시 영업을 재개했다”고 운을 뗐다. 이달 8일 병세가 악화돼 영면에 든 배씨는 1981년 식당 문을 연 이래로 42년간 지금의 자리를 지켜왔다.

 

배씨는 암으로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3남1녀 자식들의 생계를 위해 이 국숫집을 시작했다고 한다. 4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만큼 삼각지 토박이들에게는 추억의 명소다. 아침 시간대에는 4000원엔 우거짓국을, 5000원엔 온국수를 먹을 수 있어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이들도 자주 발걸음 한다고 한다.

 

이 식당은 배씨가 식사를 한 뒤 금액을 지불하지 않고 도망가는 노숙자에게 “뛰지 마, 다쳐”라고 말한 일화가 방송을 통해 전해지면서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1998년 겨울 어느 날 새벽 6시, 남루한 옷차림으로 가게에 들어선 40대 남성은 당시 2000원이었던 국수를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이 모습에 배씨는 혹여 체할까 그릇을 빼앗아 들고 국수 한 그릇을 다시 가득 채워주었다. 두 그릇을 먹은 이 남성은 냉수를 한 잔 달라고 하고선 문밖으로 달아났다.

 

“그냥 가, 뛰어가지 말고. 넘어지면 다쳐!” 배씨는 그저 이렇게 외치고선 남성을 보내줬다.

 

이 사연이 알려진 건 10년 뒤, ‘옛집국수’가 방송을 타자 해당 남성이 직접 프로그램 PD에게 연락을 보내오면서다. 당시 사기를 당해 전재산을 잃고 아내도 떠나버린 상황에서 노숙자가 된 그는 지하철역을 전전하며 구걸을 하고 지냈다고 한다. 밥 한 끼 먹기 위해 찾아간 음식점마다 문전박대를 당하자 불을 질러버리겠다는 나쁜 생각까지 하게 됐다는 이 남성.

 

마지막으로 들른 국숫집에서 배씨가 외친 따뜻한 말 한마디에 세상에 품은 증오를 버리게 됐다고 한다.

 

이후 재기에 성공해 사업가가 된 그는 “IMF 시절 사업에 실패해 재산도 잃고 아내도 도망쳐 세상을 원망하던 나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를 준 분”이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19일 점심 서울 용산 삼각지 인근 ‘옛집국수’를 찾아 참모진과 식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그저 배고픈 사람에게 국수 몇 그릇 말아준 것으로 과분한 치사를 받았다”고 했던 배씨는 그 이후에도 한 그릇 값만 내면 두 그릇이고 세 그릇이고 무제한으로 국수를 말아 굶주린 이들의 배를 채워줬다.

 

이 식당은 지난해 5월19일 윤 대통령이 취임 직후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긴 뒤 처음으로 참모들과 함께 점심 외식을 하며 재조명되기도 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 가게의 대표 메뉴이자 멸치 육수에 국수를 말아 낸 5000원짜리 잔치국수를 주문해 먹었다.

 

어머니의 뒤를 이어 사장이 된 딸 김씨는 윤 대통령에게 재차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김씨는 “어머니가 지난해 4월부터 입원하셨는데, 그 이후에 대통령님이 방문해 붙잡고 많이 울었다. 어머니가 뵀으면 정말 좋아하셨을 것”이라며 “대통령님 덕에 장사가 더 잘 돼 어머니 좋은 병실에 모시고 잘 보내드렸다. 장례 때도 직접 오시진 못하셨지만 애도의 말씀을 전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고 말했다.

 

아픈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단골들 걱정, 가게 걱정을 했다는 배씨. 김씨는 남아있는 어머니의 흔적을 찾듯 가게를 둘러보고선 “어머니께서는 손님들이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늘 가족처럼 대하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도 국수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한 남성은 “20년 단골이다. 이 물가에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양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은 많이 없다”며 “사장님이 베풀며 사신만큼 좋은 곳에 가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딸 김씨는 “요즘 무슨 말만 하면 서로 편 가르고 싸우기 바쁜 세상”이라며 “네 편 내 편 다 떠나서 그냥 다 같이 배불리 먹고 마음 편했으면 좋겠다. 여기 안에서만은 그저 따뜻한 밥 한 끼 먹으며 웃으면서 나갈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어머니 뜻을 이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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