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간 '앙숙'이던 프랑스·독일 화해 견인
"이제 통합 유럽과 미래 향해 함께 달리자"
“우리가 하나가 된다면 불가능은 없습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는 단결하고 있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엘리제 조약 체결 60주년을 맞아 프랑스·독일의 ‘단일대오’를 강조했다. 1963년 1월22일 샤를 드골 당시 프랑스 대통령, 그리고 콘라트 아데나워 당시 독일(서독) 총리가 파리 엘리제궁에서 나란히 서명한 이 조약은 수백년간 반목을 거듭한 프랑스와 독일이 서로 화해하고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드골의 사진을 올리는 등 자신이 드골 시대에 프랑스가 걸은 노선을 따르고 있음을 은연중에 과시했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엘리제 조약 체결 60주년을 맞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장관들을 파리로 초청해 엘리제궁에서 공동 각료회의를 주재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숄츠 총리는 따로 정상회담도 가졌다.
엘리제궁 행사에 앞서 두 정상은 소르본 대학에서 열린 엘리제 조약 관련 기념행사에 나란히 참석해 연설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독일과 프랑스는 과거 화해의 길을 개척했듯 이제 유럽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와 독일을 일컬어 “하나의 몸에 깃든 두 개의 영혼”이라고도 했다. 이에 숄츠 총리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유럽의 통합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으로서 우리 두 나라의 협력에 미래가 달려 있다”고 화답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서로 국경을 접한 탓에 수백년 동안 영토와 각종 이권을 놓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여왔다. 독일이 프로이센을 비롯해 여러 나라로 분열돼 있을 때는 프랑스의 힘이 독일을 압도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 대혁명 이후 집권한 나폴레옹 황제는 프로이센 등 오늘날 독일 국토에 해당하는 영역을 정복하고 지배자로 행세하기도 했다.

이후 프로이센의 국력이 일취월장하며 두 나라 관계는 역전됐다. 1870∼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은 프로이센의 완승으로 끝나 프랑스는 알사스·로렌 두 주(州)를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다. 이 전쟁을 계기로 프로이센 중심의 통일 독일이 탄생해 한동안 유럽 대륙의 패자로 군림했다.
두 나라는 20세기 들어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에서 다시 맞붙었다. 프랑스는 엄청난 희생을 치른 끝에 독일군의 진격을 막아내고 동맹인 영국, 미국과 더불어 승리를 쟁취했다. 프랑스에 굴복한 독일은 과거에 강탈했던 알사스·로렌을 반환했다.
하지만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군비를 증강한 끝에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이듬해 프랑스를 공격해 항복을 받아냈다. 프랑스 본토가 독일의 점령통치 아래 있는 동안 드골이 이끄는 ‘자유프랑스’는 해외에서 독일을 상대로 한 저항운동을 지속했다. 덕분에 미국·영국·소련(현 러시아) 3대 연합국이 1945년 5월 독일을 무너뜨렸을 때 프랑스도 전승국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프랑스는 미·영·소와 더불어 패전국 독일의 분할점령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드골은 평생 독일과 싸운 인물이었지만 2차대전 종전 후에는 ‘유럽의 통합’을 외치며 가장 먼저 독일과 손잡았다. 한때 ‘적’이었던 프랑스·독일 두 나라가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서 특수한 관계를 형성하는 내용의 엘리제 조약 체결을 밀어붙인 것이 대표적이다.
이날 마크롱 대통령은 60년 전 엘리제 조약 체결식에서 드골이 문서에 서명하는 흑백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그러면서 “1963년 1월22일 아데나워의 독일과 드골의 프랑스는 화해를 이뤘다”며 “그날 우리 두 나라는 독일, 프랑스, 그리고 유럽의 새로운 미래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었다”고 적었다.
이를 두고 마크롱 대통령이 20세기 프랑스는 물론 국제정치의 거목이었던 드골의 이미지를 자신에게 덧씌우려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오늘날에도 드골은 프랑스에서 좌우를 뛰어넘어 진정한 애국자, 위대한 군인이자 정치가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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