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과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데 대한 시민사회계의 반발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민주노총·전국민중행동·참여연대·전국농민회총연맹·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인권센터 등 관계자 약 30명은 이날 오후 대통령실 인근인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안탄압’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가 시대를 역행하는 국정원과 국보법의 망령을 되살리려 한다”며 “국정원 댓글부대·여론조작·간첩 조작 등을 저지른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회견에서 “이미 공안몰이는 시작됐고 정부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시민·사회단체, 민주노총에 공안의 재갈을 물리고 있다”며 “국보법은 사라져야 한다는 게 국민의 요구다. 민주노총에 대한 탄압은 국민에 대한 탄압”이라고 날을 세웠다.
황인근 NCCK인권센터 소장(목사)도 “국민을 겁박하고 국민의 사상과 자유를 재단하려고 한다면 멈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조지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센터 정보권력기관개혁소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댓글 공작·국고 손실에 관여한 전직 국정원장과 관련자 대부분을 사면한 직후 전면적인 국보법 수사에 나섰다는 점을 짚었다.
회견문에는 231개 단체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노총은 이날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수십 년 쌓아온 민주주의가 대통령 한 명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했다”며 “국보법은 역사의 유물로 사라졌어야 할 법”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국가정보원 등 공안당국은 18일 민주노총 본부, 보건의료산업노조 등의 간부급 인사들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잡고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민주노총에 대한 공권력의 압수수색이 최초는 아니지만, 국가보안법 혐의로는 처음이다. 공안당국은 이들이 해외에서 북측 공작원에게 포섭돼 공작금을 받아 국내에서 지하조직을 구축하는 데 사용했는지를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공안당국에 따르면 이들이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혐의를 두는 민주노총관련 인사는 현재까지 4명이다. 이 가운데 민주노총 조직국장 A씨는 2016년 8월 중국 베이징, 2017년 9월 캄보디아 프놈펜, 2019년 8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한 노동당 대남 공작부서인 문화교류국 인사와 접촉했다고 국정원은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산업노조 조직실장 B씨와, 금속노조 출신으로 제주도 평화쉼터 운영위원장 C씨는 2017년 9월 프놈펜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선한 혐의를 받는다. 금속노조 전 부위원장을 지낸 기아 광주공장 소속 D씨는 2019년 8월 A씨와 하노이에 동행해 북한 공작원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공안당국은 A씨가 민주노총 본부의 간부급이고 나머지 3명은 산하 조직에 속했던 만큼 이들이 북측에 포섭돼 민주노총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여 북측의 지령대로 노조의 정책과 활동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