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는 화재에 취약하다. 내화성 입증된 철근콘크리트로 짓는 게 낫다.’
‘목조 건물에서 불이 나면 대형 참사가 발생할 것이다. 목재야말로 건축 자재로서 최악이다….’
지난해 11월 세계일보가 보도한 ‘탄소중립 시대, 나무를 다시 생각한다’ 시리즈 기사에 대한 누리꾼 반응이다. 목조 건축이 탄소중립의 한 방법이라는 기사 내용에 안전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반면 임업계에서는 목구조 건물이 철근콘크리트 구조 건물과 비교해 화재 시 더 위험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안전성에 대한 의심이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탄소중립 목적이라도 목조 건축이 확산할 수 없다. 이에 목조 건물 화재 안전성을 각계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짚어봤다.
◆화재에도 일정 시간 버티는 ‘내화성’ 증명
건물을 지을 때는 화재 시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힘, 즉 내화성이 보장돼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대피할 시간을 벌고 붕괴로 인한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다.
국내 건축법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제시하는 내화구조 성능기준에 따르면 어떤 용도의 건축물이든 4층까지는 1시간, 5~12층 2시간, 13층 이상은 3시간동안 화재에도 구조가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목조는 철근콘크리트조와 마찬가지로 내화구조 성능이 입증됐다. 목재의 경우 열전도는 철의 약 350분의 1, 알루미늄의 1000분의 1로 매우 느리다. 불이 붙긴 해도 빨리 타지 않고, 까맣게 탄 부분에 탄화층이 형성되면서 산소를 차단하기 때문에 안쪽은 더욱 천천히 타들어 간다. 나무 기둥 겉면이 불에 타더라도 안쪽은 건물 하중을 그대로 지탱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국립산림과학원은 2017년 가로·세로 각 33㎝인 집성재(목재를 겹겹이 붙인 부재) 기둥을 1000도 이상 고온에서 2시간가량 태우며 41t의 하중을 견디게 했다. 사방에서 9㎝가 탄화됐지만 안쪽은 타지 않았고 변형은 4.6㎜로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벽체와 보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도 같았다.

해당 시험을 통과한 국산 집성재로 지은 건물이 2019년 경북 영주에 문을 연 한그린목조관(5층)이다.
앞서 한국화재보험협회에서도 비슷한 실험을 한 바 있다. ‘경골목구조의 내화성능 실험연구’(2001) 보고서를 작성한 성시창 당시 선임연구원은 “목구조를 실대 구조로 제작해 화재실험을 진행한 결과 목재는 화재에 노출되어 구조단면 일부가 손실되더라도 구조내력을 완전히 상실하지는 않는다”며 “따라서 일정 규모 건축물에 대해 구조재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복합재난대응연구센터 안재홍 박사는 5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다른 건축재료와 달리 목재는 탄화되면서 자연히 피복층이 생기기 때문에 내화성이 우수하다고 볼 수 있다”면서 “수종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목재는 1시간에 40㎜가량 타들어 가기 때문에 2시간 더 버티려면 80㎜, 3시간 더 버티려면 120㎜ 더 두꺼운 목재를 사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 불에 타지 않는 콘크리트가 내화성능이 훨씬 높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콘크리트는 불에 타지 않지만 고온에서 바스러지거나 터지는 등 변형이 일어난다. 이때 내부에 있던 철근이 열에 노출되면 엿가락처럼 휘면서 건물이 순식간에 붕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1년 9·11 월드트레이드센터 붕괴 사고가 그 예다. 당초 항공기 충돌 직후 무너지지 않았던 빌딩이 56분, 102분 뒤 붕괴한 것은 화재로 골조가 손상되고 변형됐기 때문이었다.

◆“취약부분 있지만 특히 더 위험한 것은 아냐”
목재의 내화성은 확인됐다. 그렇다면 나무를 구조재가 아닌 내·외장재로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이 역시 목재가 유리한 측면이 있다. 화재 시 유독가스를 배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화재 사망자 사망 원인 1위는 질식(63%)이었다. 단열, 방음력 등 성능은 뛰어나지만 불에 잘 타고 유독가스가 많이 발생하는 내·외장재를 사용한 건물이 많아서였다.
유독가스는 연기와 달리 적은 양을 마셔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큰불이 아닌데도 짧은 시간 여러 사망자가 나오는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백민호 문화재방재학회장(강원대 소방방재학부 교수)은 “화재현장에서 치명적인 인명 피해를 야기하는 것은 주로 현대건축재료에서 발생하는 유독가스”라면서 “목재 자체가 불에 약한 것은 맞지만 건축물은 한가지 재료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화재시 위험 수준을 단편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나무가 불에 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건축업계에서는 목재에 대해 공통적으로 “화재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연소된다는 측면에서 보면 목조 주택이 철근콘크리트 주택에 비해 잘 타는 것은 당연하다”며 “목재에 난연처리를 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지만 성능이 오래가지 않고 결국 불이 붙으면 계속 탄다”고 말했다.

김수영 국립소방연구원 연구관은 “불이 시작돼 가구나 벽지 등을 타고 번지는 초기 화재에서는 건물의 구조재료가 무엇이든 큰 차이가 없다”면서도 “다만 불이 커질 경우 목조 건물의 화재 진압이 더 어려운 건 사실이다. 숭례문 화재처럼 심부화재(고체물질의 내부에서 불꽃이 연소하는 것)가 발생하면 해당 부분을 부수고 불을 꺼야하기 때문에 파손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 목조주택과 콘크리트 주택의 화재 피해를 비교하면 목조주택의 재산피해가 더 크기도 하다.
보험개발원은 “보험업계에서 집계한 화재 통계로 보면 목조주택의 경우 전소율이 높고 피해 규모가 더 크다”면서 “이때문에 각 보험사에 제시하는 목조주택 화재보험료 참조순율을 일반 주택의 4배로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화재 우려가 목조 건축을 기피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내화성 외에도 건축자재로서 목재가 가진 장점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목재는 구조재로서는 어떤 재료에도 뒤지지 않는다. 또 지진에 강하고 가공성과 단열성이 우수하며 심신에 안정을 주는 친환경 재료”라면서 “최근엔 내구성 등 목재의 단점을 보완한 여러가지 재료도 개발됐다. 스스로 집을 짓는다면 망설임 없이 목재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관은 “집은 죄가 없다. 화재 발생 시 목조 주택이 일부 취약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화재에는 여러 변수가 있기 때문에 목재를 사용한다고 특별히 불이 더 잘 나거나 잘 번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불이 나기 쉬운 부분에 방염페인트를 칠하고 화재 경보 시스템과 스프링클러 등을 잘 설치하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목조 건축이 탄소중립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목재는 탄소를 저장하며, 목조 건물은 건축 과정에서 소요되는 에너지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다. 산림청에 따르면 같은 조건의 집을 목조로 지을 경우 철근콘크리트조로 지을 때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안 박사는 “목조 건물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오스트리아, 캐나다, 미국 등에서 어떻게 10층이 넘는 고층 목조 빌딩을 짓고 있겠느냐”며 “한국에선 목조 주택에 대한 관심이 미풍에 머무르고 있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 개발과 실제 건축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탄소중립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고, 목조 주택은 사람과 환경에 모두 이롭다. 향후 한국에서도 국산 목재를 활용한 목조 건축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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