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된 진료 중단 사태
인천 가천길대병원 진료 잠정 중단
이대목동·한양대·강남세브란스 등
상급병원에서 야간진료 중단·축소
비수도권선 ‘치료 원정’ 일상다반사
소아과 의사 부족 왜
2023년 전공의지원율 16%… 6년 새 80% ↓
소아암 중증 치료 의사는 전국 68명뿐
저출산에 수익율 악화·위험 부담은 커
의사 적으니 전문의 따도 고강도 업무
필수의료 대책은
산부인과·흉부외과도 사정 마찬가지
진료할수록 손해인 의료수가 조정
병원서 필수과목 인력 기준 의무화
국가 평가 반영 등 ‘당근책’ 마련을

#1 생후 100일 된 아이가 저녁부터 계속 울어 다음날 아침 일찍 병원을 찾은 A씨. 8시30분부터 진료예약이 시작된다기에 시간 맞춰 등록했더니 벌써 대기 37번에 낮 12시45분 진료였다. A씨는 “첫 아이라서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게 되는데, 갈 때마다 오래 기다린다”며 “병원에서 4시간 넘게 기다리다 보면 아이도 지쳐 잠든다”고 씁쓸해했다.
#2 3세 아이를 키우는 B씨는 아이가 밤에 자다가 구토를 해 크게 당황했다. 점점 구토가 심해져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에 문의했는데 소아과 의사가 없다고 다른 병원을 가라는 답을 들었다. 119에 전화해 겨우 진료 가능한 응급실을 안내받았고, 차로 30분이나 걸리는 곳으로 가야 했다.
아이가 아파도 갈 수 있는 병원이 줄어들고 있다. 곳곳에서 ‘소아과 오픈런’이 벌어지고, 야간에는 응급실을 찾기 위해 전전한다. 이 같은 ‘고생’은 갈수록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동네의원에서부터 종합병원까지 소아청소년을 진료하는 의사가 급격히 줄고 있기 때문이다. 소아청소년뿐 아니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필수의료에 구멍이 커지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야간·주말 응급 중단·축소
2일 보건복지부와 대한병원협회 등에 따르면 최근 진료과목별 전공의 지원율에서 소아청소년과의 급격한 하락이 눈에 띈다. 2018년 지원율은 101.0%로 정원 대비 지원자가 많았으나 2019년 80%로 미달했고, 2020년 74%, 2022년 27.5%로 떨어지더니, 2023년도 전공의 지원율은 15.9%로 20%에도 못 미쳤다.
병원도 사라지고 있다. 2017년 2229개였던 소아청소년 의원은 지난해 2111개로 118개 감소했다. 대신, 내과와 정신건강의학과, 정형외과 등이 늘었다.
큰 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상급종합병원인 인천 가천대길병원이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를 당분간 중단하기로 한 것이 단적인 예다. 서울의 강남세브란스병원과 이대목동병원, 한양대병원 등은 야간진료나 소아 환자 응급실 진료를 전면 중단 또는 축소한 상태다.
소아암과 같은 중증질환을 보는 의사는 더 심각하다. 소아암 진료 의사는 전국 68명에 불과하다. 이미 비수도권의 소아암 환자들은 지역에서 치료할 수 없어 수도권으로 원정치료를 가야 하는 실정이다.

의료계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이 유례없이 급감한 이유로 ‘수익 악화’와 ‘위험 부담’을 꼽는다. 비급여 항목이 적어 고정된 수가로 운영이 되는데, 저출산으로 아이가 줄어드는 데다 최근 2∼3년 사이 코로나19로 병원 이용이 줄면서 “비전이 없다”는 인식이 생겼다.
큰 병원도 치료할수록 적자가 발생하니 의사를 충분히 뽑지 않는다. 여기에 최종 무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가 사망한 뒤 의료진이 줄줄이 구속된 일이 부정적 기류를 더했다는 분석이다.
한 전공의는 “3∼4년의 고된 시간을 갈아 넣어서 전공의 과정을 겪는 이유는 전문의가 돼 전문성 등에서 ‘좋은 미래’를 보장받기 위함인데 소아청소년과는 그런 보상이 전혀 없다”며 “다른 경쟁률이 치열한 과에서 탈락하면 의원으로 개원하거나 경쟁이 치열한 과 ‘재수’를 한다“고 전했다.

◆위험부담 높고 보상 낮아 기피… 개선해야
소아청소년과뿐이 아니다.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도 만성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산부인과(74%), 흉부외과(65%), 외과(65%) 등도 내년 전공의 지원율이 미달했다. 흉부외과에 지원한 전문의는 지난해 20명에 불과했고, 올해 소폭 늘었다고 해도 37명이다. 산부인과 전문의 중 60세 이상이 26.8%, 외과는 25.5%, 흉부외과는 23.5%다. 고령 의사들이 은퇴하면 뒤를 받쳐줄 신규 의사가 급격히 줄고 있는 셈이다.
이들 진료과 역시 위험부담은 높은 데 비해 받는 보상은 낮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의사 5명이 4시간 넘게 매달리는 폐절제 수술과 한두 명이 30분 걸리는 쌍꺼풀 수술의 수가가 비슷하다. 병원에 의사가 적으니 전문의가 돼도 고강도 업무가 계속된다. 2019년 흉부외과 의료진 실태조사 결과 흉부외과 전문의는 주 5일 기준 평균 63.5시간, 하루 평균 12.7시간을 근무한다. ‘워라밸’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사명감만 강요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해결을 위해 의료수가 조정이 방안으로 제시된다. 수가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비용으로, 환자 부담과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급되는 급여의 합계다. 수가를 높이면 의사·병원이 받는 금액이 커진다. 정부는 올해 소아과 의료기관의 적자를 보상해주는 시범사업을 도입하고, 뇌동맥류나 중증외상 등 응급 수술·시술과 고난도·고위험 수술에 추가보상을 해주는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마련 중이다.
정의석 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이사(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수가는 병원이 돈을 얼마 번다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 제반 환경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특정 진료과가 계속 적자만 내는 상황에서는 병원에서도 달가워하지 않는 만큼 각 진료과가 ‘손익분기점’은 맞출 만큼의 적정 수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필수의료는 시장에만 맡길 수 없고 별도 조치가 필요하다”며 “필수의료임에도 낮은 진료과는 일정 수입이 유지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정부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다만 수가만 높인다면 국민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며 “진료과별로 어디가 부족하고, 남는지 분석해 균형을 맞추는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병원이 필수과목 인력 기준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병원 전문의 자리가 있어야 필수의료를 지망하는 전공의들이 갈 곳이 생긴다는 것이다. 현재 300병상 이하 종합병원은 내과·외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중 3개 진료과목에 전속 전문의를 두고, 입원환자에 비례한 의사 정원을 배치하도록 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장(고려대의대 예방의학과)은 “상급종합병원은 ‘사회안전망’이라고 봐야 한다. 1차 의원에서 치료가 안 된 환자들이 오는 병원인 만큼 많은 경험과 더 높은 기술이 필요한데 전공의가 없어서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못 받는 것 자체가 기형적인 면이 있다”며 “큰 병원일수록 병원 평가에 이런 전문의 채용을 반영하는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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