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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너 아빠 만나기 싫다고 말해”… 면접교섭 방해에 우는 부모들

, 이슈팀

입력 : 2022-12-29 16:22:26 수정 : 2022-12-30 16: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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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가정에서 ‘부모 따돌림’으로 인한 갈등 늘어
양육 부모가 아이에 “다른 부모 만나지 말라” 종용
공동 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피해 공론화 나서
해외에서는 적발 시 법원이 양육권 박탈하기도

“너 아빠 만나면 무조건 울어.”

 

5년 전 아내와 이혼소송 중이던 A(46)씨는 당시 네 살이었던 자녀를 만나기 위해 배우자의 집 앞에 찾아갔다가 우연히 이런 말을 여러차례 듣게 됐다고 말했다. A씨의 아내는 현관문 안에서 아이에게 ‘아빠를 만나기 싫다’고 말할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는 이 대화를 녹음해 가정법원에도 제출했지만 아내는 요지부동이었다. 아이가 싫어한다는 이유를 들며 면접교섭 사전처분을 계속 거부했고 법원은 개입하지 않았다. 재판은 5년이나 걸렸고 그중 3년은 만남조차 갖지 못한 시간이었다.

 

A씨는 “면접교섭권만 겨우 얻게 됐지만 아내가 계속 거부해 결국 면접교섭 횟수와 시간도 축소됐다”며 “나를 거부하는 아이의 표정을 보는 것도 힘들지만 법원이 어떤 조치도 취해주지 않는 것에 너무 화가난다”고 했다.

 

이처럼 이혼 과정에서 자녀가 한쪽 부모에게 영향을 받아 다른 부모에게 등을 돌리는 현상을 ‘부모 따돌림’(Parental Alienation)이라고 부른다. 1980년대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리차드 가드너가 제시한 개념으로 자녀가 양육 부모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발생할 수도 있지만 상당수는 양육 부모가 자녀에게 비양육 부모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거나 비양육 부모를 만나지 말라고 종용할 때 나타난다. 이때 자녀들은 양육 부모에게 심리 지배를 당해 비양육 부모 대한 사랑이나 그리움을 숨기게 되고 스스로 면접교섭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도 부모 따돌림으로 인해 비양육 부모들이 이혼 과정에서 법적 불이익을 겪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면접교섭방해 피해자들의 공동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법률사무소 흰여울 김승유 변호사 외 3명은 공동소송플랫폼 ‘화난사람들’을 통해 지난 16일부터 부모 따돌림 피해자를 모집하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화난사람들’ 게시판에는 이혼 후 배우자의 부모 따돌림으로 피해입은 사람들의 사연이 여럿 올라와 있다. 남편의 폭력 때문에 집을 나왔다는 한 여성은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아이에게 ‘엄마는 너를 버리고 간 나쁜 사람이야’라며 나를 가해자로 몰았고, ‘(엄마와 통화하면) 아빠가 너를 싫어할 거야”’라고 겁을 줬다”고 했다. 결국 아이가 엄마를 보기만 해도 “집에 갈래”라며 울었고 시댁은 이를 빌미로 면접교섭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법률상(민법 제837조의2 제1항) 자녀를 직접 양육하지 않는 부모는 자녀와 상호 면접 교섭할 권리가 있지만 부모 따돌림이 벌어지면 면접교섭권이 무시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게 비양육 부모들의 설명이다. 법적으로 ‘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한 때에는 면접교섭을 제한하거나 배제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 양육 부모들이 이를 내세워 면접교섭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특히 재판부가 부모 따돌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 비양육 부모들은 아이에게 거부당했다는 정신적인 충격에 더해 재판에서 불리한 환경에 놓이게 된다.

 

해외에서는 일찍이 ‘부모 따돌림’ 개념이 자리잡았으며 재판 결과에 반영되기도 한다.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는 실제 부모 따돌림을 종용한 사실이 드러난 양육부모의 양육권이 박탈된 판례가 나오고 있다.

 

올해 1월 캐나다 온타리오주 항소법원에서는 다섯살, 일곱살 두 자녀를 남편으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했던 아내의 양육권을 박탈하고 67만7610 캐나다 달러를 남편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재판부는 아내는 남편이 아이들에게 신체적, 성적 학대를 가했다며 경찰에 허위신고를 하는가 하면 남편과 아이들이 만날 때도 ‘포옹과 뽀뽀 금지’, ‘생일 케이크 및 파티 금지’ 등의 지시를 하며 아이들과 남편의 사이를 의도적으로 멀어지게 했다고 봤다. 

 

호주 연방법률은 부모 따돌림을 가정폭력으로 규정했다. 영국 가정법원 자문기구는 부모 따돌림을 겪는 부모와 자녀들에게 정부 출연 기금을 통해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부모 따돌림 피해자들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김승유 변호사는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부모 따돌림이 벌어지면 법원이 개입해 가해 부모의 양육권을 박탈하기도 하고 이혼소송에서도 자녀에게 다른 부모를 만나지 말라고 세뇌하는지가 양육권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라면서 “한국 가정법원은 아직까지 부모 따돌림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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