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 2018년 출시 당시 큰 호응 얻어
택시업계 반발에 정치권 ‘금지법’ 강행
결국 실패한 대표적 규제 사례로 전락
최근 ‘직방금지법’ 같은 길 걸을까 우려
지나친 규제환경 창업 저해 부작용 커
스타트업 4곳 중 1곳 해외 이전도 고려
헌법상 독립된 규제개혁위 필요성 커져
“‘혁신’ 장기 국가경쟁력 측면서 접근해야” 끝>
“역사의 경험에 비춰 보면 새롭게 생겨나는 걸 막을 수 없잖아요. 겨울에 아주 두껍게 입고 버틴다고 봄이 안 오더랍니까?”
다큐멘터리 ‘타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에서 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타다금지법’을 빠르게 처리했던 2020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당시 여당 법사위원이었던 이 전 정무수석은 정부·여당이 마련한 타다금지법을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며 비판했지만, 법사위는 만장일치 관행을 깨고 타다금지법 처리를 강행했다.

2018년 출시한 타다는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타다는 드라이버에게 고객 탑승 전까지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택시 승차거부를 겪어본 이들은 12인승 카니발을 이용해 비싼 가격에도 재차 타다를 불렀다. 맞춤형 음악, 말 걸지 않음 요청 등도 택시에서 볼 수 없던 서비스였다.
그러나 택시업계 반발이 거셌다. 이들은 승합차를 임차하는 사람은 운전자 알선이 허용되는 점을 이용한 타다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타다를 합법적인 초단기 렌터카 서비스로 봤지만, 정치권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업계 표심을 의식했다. 2년 반이 지나, 지난 10월 정부의 심야 택시난 대책 발표는 타다금지법 실패의 고백이었다.
◆정치가 망치는 혁신
타다 사례처럼 혁신을 막는 규제는 포퓰리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20일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혁신이 막히는 원인의 중요 지점은 두 가지”라며 “하나는 기득권, 다른 하나는 정치권”이라고 짚었다. 그는 “타다 같은 서비스가 들어오면 사실 업계에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기는데, 그걸 못 보고 현재의 구조에 집착한다. 구 산업 종사자들의 기득권에 대한 집착”이라며 “거기에 휘둘리는 정치인들 역시 우리나라 산업 전체의 혁신을 가로막는 중요한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직방금지법’도 비슷한 사례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한국공인중개사협회(한공협)는 중개사들을 지도·감독할 수 있고 부동산 거래 교란 단속에 있어 행정처분을 요청할 수 있게 된다.
직방 같은 ‘프롭테크’(정보통신기술을 결합한 부동산 서비스) 업체들은 저렴한 수수료로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는 부동산 중개 서비스가 위축되고 업계 전반에도 타격이 가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반면 한공협은 시장 교란을 방지해 국민 피해를 막자는 취지라며 반박한다. 이런 상황을 두고 부동산 중개업이 지역을 기반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국회의원들이 한공협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밖에 관료주의도 혁신을 지체시키는 요소로 지적받는다. 신산업이 나타날 때 이를 어떻게 규정하고 규제할 것인지에 대해 공무원들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규제에 대한 권한을 서로 차지하려는 과정에서 혁신이 가로막히기도 한다.

◆늘어나는 규제에 줄어드는 신생기업
한국 산업계가 각종 규제에 둘러싸이면서 사라지는 혁신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지난 정부 5년(2017∼2022년 사이) 동안 발의된 의원 입법안 중 규제안으로 분류된 안은 총 4047건으로 하루 평균 2.77건꼴이었다. 이전 정부에 비해서도 3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반면 지난해 12월 한국경영자총연합회가 국무조정실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에 총 51건의 규제개혁 건의 사항을 제출한 결과 수용된 과제는 5건(9.8%)에 그쳤다.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는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서도 엄격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한국의 상품시장규제지수(PMR)는 2018년 기준 1.7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42)을 웃돌았다. 순위는 OECD 조사 대상 38개국 중 33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이런 규제 환경은 국내 창업을 저해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장한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달 스타트업 256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사 44.1%가 국내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또 기업 4곳 중 1곳(25.4%)은 규제 탓에 해외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의 신생기업 감소와 거시경제적 영향 보고서를 보면 국내 신생기업 비중은 2002년 19%에서 2018년 11.7%로 크게 줄었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신생기업의 진입을 북돋우려면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규제영향평가 기관 설립, 새 정부 리더십 필요
혁신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규제 분석의 체계화, 크게는 포퓰리즘에 좌우되지 않는 정치권의 역할 등이 요구된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규제개혁위원회 같은 기관을 헌법상 독립된 기관으로 만들어 의원 입법안을 검토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발의 법안은 규제개혁위원회로부터의 규제영향평가를 받고 있지만, 각종 표심에 좌우되는 의원들의 발의안엔 이 절차가 생략돼 있다. 국회가 헌법적 독립 기관인 점을 고려해 규제영향평가를 받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의 규제영향평가에 대해서도 “편익 분석 등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영향 분석의 품질을 높일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지난 정부가 시행한 규제 샌드박스(새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유예시켜주는 제도)와 관련해선 “제도 도입 4년이 다 됐는데 규제 샌드박스의 4년 만기가 지난 뒤 어떻게 될지 정확하지 않아 걱정하는 기업이 많다”며 후속 조치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정권과 관계없이 규제개혁이 일관성을 갖고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새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도 필요하다. 위 교수는 “정부·정당이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강력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 부분을 밀고 나가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구한말 쇄국정책을 펼치면서 나라가 식민지가 되지 않았느냐”며 “중국의 경우 특히 IT에서 엄청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규제개혁은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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