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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은 힙한 어촌 근무… 주민들은 힘찬 손님맞이 [S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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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2-10 17:00:00 수정 : 2022-12-10 21: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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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케이션’ 지역회생 대안 부상

직장인 ‘꿈의 근무환경’ 中企로 확산
직원들 기 살리고 지역 경제에 도움

# 제주 구좌읍 세화마을 가보니
휴양림서 새벽 요가, 퇴근 후 스노클링
바닷가 원격근무 창의력·업무 효율 ‘업’
마을 숙박집·식당 손님 늘어 ‘싱글벙글’
공유오피스 짓고 해녀투어·트레킹 운영

# 중소기업에겐 그림의 떡?
서울시 산하 SBA 직장인들 체험 지원
3박4일 프로그램 올해 2000여명 참여
“이직 방지 효과” 인사담당 63% 긍정적
원격근무 인프라·근무 유연화 등 숙제

# 인구소멸지역 살릴 ‘관계인구’
단순 관광객과 달리 주민친화적 체류
“재방문율 높다” 인프라 구축 마을 늘어
활성화 땐 4조5000억원 생산효과 기대
“마을 특색 콘텐츠 개발·지원 강화 필요”

고요하고 울창한 제주 송당 비자림 인근 잔디밭에 마치 광고의 한 장면처럼 매트를 깔고 강사의 지시에 따라 다리 위로 길게 팔을 뻗어 스트레칭을 한다. 눈을 감고 명상을 하니, 새벽이슬을 머금은 나무와 풀 내음이 코끝을 간질인다.

 

아침 요가를 마친 뒤 어느덧 해가 눈높이 위로 떠오를 때쯤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질그랭이 거점센터’로 여유롭게 발길을 옮긴다. 창밖으로 눈앞에 탁 트인 제주 앞바다가 펼쳐진다. ‘디지털 노마드족’(디지털 장비를 갖추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일하는 사람)을 위한 공유오피스인 이곳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커피를 마시며 업무를 시작한다.

 

업무를 마친 뒤엔 물질하는 해녀들 옆에서 스노클링을 즐길 예정이다. 제주의 바다는 전신 수영복만 입으면 늦가을까지도 들어갈 만하다.

 

자연휴양림 속에서의 새벽 요가, 파도 소리가 들리는 바닷가의 사무실, 퇴근 후 해양 스포츠…. 기자가 직접 체험한 11월 제주의 어느 하루다.

 

직장인들이 꿈꿔온 이런 근무 환경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와 정보통신기술(ICT) 발달의 영향, 직원의 복지 향상 요구 등이 맞물리며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결합한 ‘워케이션’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정보기술(IT) 업계를 중심으로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채택하는 기업이 늘고 있고, 기업 지원기관과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균형 발전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 속에 워케이션 기업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실제로는 어떨까. 지난달 13∼16일 제주 구좌읍에서 워케이션을 직접 체험해보고 함께 온 중소기업 직장인들과 동행하며 이야기를 들어봤다.

 

◆중소기업 다니는데 워케이션 갈 수 있나요

 

그동안 워케이션은 직원복지가 좋은 몇몇 대기업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많았다. 회사 입장에선 워케이션 문화 자체도 낯설 뿐 아니라, 거점 오피스 혹은 숙박비 등 제공에 대한 경제적 부담도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자체 지원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에서도 워케이션 문화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서울시 산하 서울산업진흥원(SBA)은 올해부터 서울 소재 중소기업 직원들을 대상으로 제주도, 포항, 남해 등에 위치한 ‘어촌체험휴양마을’로 3박4일 워케이션을 보내주는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SBA와 지역별 협업기관에서 비용을 일부 부담하기 때문에 참여 기업은 1인당 4만∼10만원 정도의 참가비만 내면 된다. 이미 이 프로그램을 통해 총 2000명 이상이 제휴한 숙박시설, 공유오피스에서 워케이션을 체험했다.

 

제주 송당 비자림 인근 요가원에서 출근 전 아침요가 수업을 체험해보는 모습.

구좌읍 하도 어촌체험마을에서 만난 손효정(25)씨는 IT 분야 중소기업인 오내피플의 인사담당으로,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워케이션을 왔다.

 

손씨는 “업무 시간에는 가족들만 관광을 하고 퇴근 후에는 함께 수상보트를 타러 가거나 월정리 해수욕장에 다녀오기도 했다”며 “아침에 숙소에서 공유오피스까지 해안가를 따라 자전거로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즐겁다”고 말했다. SBA와 회사의 지원금을 빼고, 손씨 가족이 나흘 동안 쓴 사비는 항공권 제외 1인당 20만원 남짓이다.

 

손씨는 “슬랙(온라인 협업툴)과 게더타운(메타버스 애플리케이션)으로 화상미팅을 하는 등 회사와 실시간으로 소통했다”면서 “제주도에 있으면서도 화상면접 등 채용 업무, 팀블로그 콘텐츠 회의 등 평소와 다르지 않게 일정을 소화했고, 업무에도 전혀 지장이 없었다”고 말했다. 손씨 회사의 경우 워케이션이 업무 만족도를 높인다고 보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워케이션에 대한 기업들의 호감도는 이미 상당하다. 지난해 한국관광공사가 국내 주요 기업 인사담당자 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가운데 63.4%가 워케이션 제도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일함으로써 창의력이 개발되고 직무 만족도를 향상시켜 이직을 방지하는 효과를 준다는 것이다.

다만 아직 많은 기업이 비용 부담 문제와 정보 부족으로 워케이션에 선뜻 나서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SBA 관계자는 “대기업에 비해 재정 여건이 열악한 중소기업들은 독자적으로 워케이션을 운영할 여력도 없고 워케이션이 뭐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많았다”며 “이 워케이션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 간 복지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중소기업 근로자들도 새로운 업무 방식을 경험하며 직장생활에 활력을 얻게끔 하고 싶었다”고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워케이션 유치한 지자체, 소비증가·고용창출 효과

 

워케이션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정말 도움이 되는지도 궁금하다.

 

구좌읍 하도리 어촌체험마을에서 숙박집을 운영하는 전미림(57)씨는 “지금과 같은 비수기에는 원래 방이 15%밖에 차지 않았고, 코로나19로 더욱 어려워졌었다”며 “올해부터 워케이션 프로그램 덕택에 방이 거의 다 차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 직장을 둔 손효정씨가 해변이 보이는 제구 구좌읍 세화리의 질그랭이센터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세화리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김은지(40)씨는 “최근 들어 매출이 1.5∼2배로 늘어난 것 같다”며 “과거와 달리 점심을 먹으러 오는 직장인분들이 많아진 게 보인다. 혼자 오시는 분들을 위해 ‘혼밥석’을 만들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구좌읍 마을들은 자체적으로 워케이션 인프라 마련을 위해 잰걸음 중이다. 세화마을 주민들은 워케이션 공간(질그랭이센터)을 만들고, 해녀투어(해녀 탈의장, 해녀 해물라면 등 체험), 다랑쉬오름 트레킹 등 각종 투어·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기업과 지자체를 연결시켜주는 스타트업인 ‘스트리밍하우스’와도 제휴, 매주 끊임없이 기업들이 이곳을 찾게 만들었다. 세화마을협동조합은 워케이션 기간 한 사람당 약 60만원 정도 소비하고 떠나는 것으로 추산했다.

세화마을 질그랭이센터는 세화항 앞에 있는 오래된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해 세운 공간으로 1층에는 마을회관 겸 여행자센터, 2층은 베이커리 카페와 세화의 특산품인 당근과 함께 각종 소품을 파는 가게, 3층은 공유오피스, 4층은 숙박시설로 구성됐다. 공유오피스에는 프린터, 모니터 등 각종 사무도구와 세미나, 회의 등을 할 수 있는 세미나룸이 갖춰져 있고, 덤으로 창밖의 다랑쉬오름과 세화해변을 감상할 수 있다.

 

퇴근 후 외지 직장인이 제주 구좌읍 하도해수욕장에서 해양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이곳을 찾은 직장인 김모(30)씨는 “업무하기도 너무 편하고, 카페나 숙박비 등 가격도 생각보다 저렴해서 좋았다”며 “내년에 또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유오피스를 관리하는 양군모 세화마을 피디(PD)는 “이 센터는 지역민과 외지인들이 함께 모이는 사랑방 같은 공간인데, 방문자들은 일반 사무실과 달리 정겨운 느낌이 난다며 좋아한다”고 말했다.

 

구좌읍 김녕리도 워케이션을 위한 공유오피스를 준비 중이다. 김녕마을 임시찬 이장은 “(워케이션을 온 사람들은) 일반 관광객들과 달리 우리 마을에서 숙식을 하면서 지역에 융화되고, 우리 지역의 맛도 알게 되지 않나”라면서 “재방문율도 높을 것이고 서울 올라가서도 우리 마을과 농수산물을 알릴 테니, 이렇게 좋은 손님이 어디 또 있겠느냐”며 웃었다.

 

◆정주인구보단 관계인구 늘려 지역 활성화해야

 

이처럼 워케이션이나 ‘한 달 살기’ 등으로 지역에 머물다 가는 사람들은 ‘관계인구’라고 불린다. 단순 관광객과 달리 상당 기간 지역에 머무르는데, 최근 일본에서도 이들 관계인구가 지역소멸의 해결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 언론인인 다나카 데루미는 2017년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을 살리려면 이주를 통한 ‘정주인구’를 늘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관계인구를 늘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가 방문한 구좌읍은 애월이나 중문처럼 유명 관광지가 아님에도 워케이션이 본격화한 올 상반기 방문객이 지난해에 비해 약 56% 증가했다.

 

제주 구좌읍 세화리 질그랭이센터. 1층에는 여행자센터, 2층에는 카페 및 기념품 가게, 3층에는 공유오피스, 4층에는 숙소가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워케이션 활성화를 통해 약 3500억원의 직접지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한다. 워케이션의 생산유발 효과는 약 4조5000억원, 고용유발 효과는 2만7000명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다는 분석이다.

 

다만 워케이션 보편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먼저 기업의 인식 변화와 제도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지난해 박효연 한국관광대 관광경영학과 교수와 황지영 경희대 일반대학원 관광학 박사가 국내 기업 임원 및 인사총무담당자 8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워케이션 도입을 위한 선결과제로 △대표 및 임원진의 의지 △원격근무 가능 인프라 구축 △유연근무제 등 일반적 인식 확산이 꼽혔다.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우 비용 등 별도의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자체와 지역민의 노력도 필요하다. 특히 제주도처럼 주요 관광지가 아닌 대부분 지역은 콘텐츠나 인프라가 부족하다. 지자체의 워케이션 사업에 대해 조언해주고 전북, 강원 평창 등에서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는 스트리밍하우스 신동훈 대표는 “편리한 교통이나 깔끔한 숙소, 접근성이 좋은 공유오피스 등 인프라 준비가 잘되어 있어야 하고,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며 “이런 준비가 됐다면, 워케이션을 오고 싶게 만드는 지역의 통일된 콘셉트와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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