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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귀걸이·은허리띠 한 신라 무덤 주인은…"키 165cm 이상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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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2-07 10:14:27 수정 : 2022-12-07 13: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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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경주 황남동 120호분 발굴 현장 설명회…"신라 문화 이해 위한 학술 가치 커"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경주 대릉원 일원에 있는 '황남동 120호분'은 5세기 후반에 만들어졌으며 무덤 주인은 키가 165㎝ 이상인 남성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조사 결과가 나왔다.

문화재청은 신라문화유산연구원와 함께 이런 내용을 담은 발굴조사 성과를 7일 공개했다.

황남동 120호분은 흙더미를 쌓아 올려 만든 봉분(封墳) 3개가 포개어진 형태의 무덤이다.

이 무덤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사가 이뤄져 '120호'라는 번호가 부여됐으나 이후 봉분 위에 가옥이 들어서며 일부가 훼손됐고, 고분의 존재조차 확인하기 어려웠다.

이에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2018년부터 조사에 나서 주변부인 120-1호와 120-2호분을 확인했다.

그 중 120-2호분에서는 금동 관, 금동 신발, 금제 태환이식(太環耳飾·굵은 고리 귀걸이), 유리구슬 가슴걸이, 은제 허리띠, 은제 팔찌, 은제 반지 등이 나와 주목받았다.

화려한 장신구 일체가 무덤 주인이 착용했던 상태로 발견되면서 당시 학계에서는 무덤에 매장된 피장자가 여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도 했다.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중심부에 있는 120호분은 봉분 지름이 28m에 이르는 돌무지덧널무덤이다.

땅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 덧널을 넣은 뒤, 그 위를 다시 돌을 쌓아 올리는 형태로, 조사 결과 시신을 안치하는 '주곽'과 각종 부장품을 넣는 '부곽'으로 돼 있었다.

주곽은 길이 380㎝, 너비 165㎝ 크기로, 시신을 안치하는 '주검 칸'에는 무덤 주인을 동쪽으로 향하게 둔 것으로 파악됐다. '부장 칸'에는 청동 다리미와 각종 토기 등을 함께 묻었다.

시신을 안치할 때는 목관 바닥에 납작한 철 덩이쇠를 깔고 가장자리에 석단을 둔 것으로 확인됐다. 덩이쇠는 얇고 긴 형태의 철물로 권력과 부를 상징한다.

이민형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석단 하부에 남은 흔적 등으로 보아 주곽은 나무로 만든 목곽임을 알 수 있다"며 "구조적 특성을 보면 다른 무덤을 연구·조사할 때도 좋은 자료"라고 강조했다.

문화재청과 연구원은 "무덤의 주인공은 신장 165cm 이상의 남성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무덤 주인은 금으로 만든 가는 귀걸이와 유리구슬로 만든 가슴걸이를 착장한 상태였고 허리 부분과 그 주변에서 은으로 만든 허리띠, 철제대도(大刀·큰 칼) 등이 발견됐다.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머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은제 투조(透彫·금속판 일부를 도려내는 것) 관 꾸미개(관식·冠飾), 금동 투조 관모 등이 뒤집어진 채 나와 부장 칸에 같이 묻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선임연구원은 "정강이뼈로 추정되는 인골 흔적 등을 고려할 때 무덤 주인은 남성으로 추정된다. 관(冠)을 쓰지는 않았으나 함께 묻었다는 점에서 왕보다는 아래, 왕족이나 귀족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문화재청 등은 출토된 유물의 제작 시기 등을 고려할 때 무덤이 5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봉분에 산에서 가져온 흙이나 모래가 사용된 점, 그간 신라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투조 문양이 나온 점 등을 볼 때 신라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학술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조사 내용은 8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경주 발굴 현장에서 설명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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