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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살며] 한국어 아는 것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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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1-30 22:50:01 수정 : 2022-11-30 22: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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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중국에서 온 다문화 학생이 전교생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2학기부터 학부모와 자녀, 학부모와 학교 간 원활한 소통을 지원하기 위하여 학부모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게 되었다. 첫 수업에서 학부모들이 자기소개를 했다. 어머니 3명이 왔는데 모두 중국 한족 출신이었고 남편들은 중국 조선족이었다. 한국에 온 지는 1명은 3개월이 되었고 2명은 2년이 넘었다.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점을 묻는 질문에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어를 잘 몰라 소통이 힘들다”고 했다.

요즘 중국에서 조선족이 외국으로 나가거나 국내 대도시로 이주하며 조선족 학교가 하나둘 사라져 가고 있다. 남편들도 조선족이지만 어려서부터 한족 학교에 다녀 한국어를 모르고 중국어만 한다는 것이었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모두 중국어로 대화하다 보니 밖에 나오면 한국어가 서툴 수밖에 없다.

배정순 이중언어강사

이들을 보며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일이 떠올랐다. 중국에 있을 때 한국 문학을 전공하고 조선족 초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던 나도 80% 정도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특히 전화를 받으면 알아듣기 힘들었다. 전화번호를 부르는데 ‘국번’이나 ‘다시’(줄표)가 뭔지, 또 ‘샤프(#) 버튼을 누르세요’ 이런 말들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메일 주소를 불러주면 영어 알파벳을 읽는 법이 중국과 발음이 달라 받아 적을 수가 없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안내 방송도 억양이 다르니 잘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하였다. 게다가 사람들이 한국어로 말해도 되는데 굳이 영어를 뒤섞어 쓰니 더 알아듣기 힘들었다.

담임선생님들은 다문화 학부모들이 알림장을 제대로 보지 않고 준비물도 챙겨 보내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전화로 한 시간 상담을 해도 전화를 끊으려고 하면 또 처음부터 물어본다는 것이다. 즉,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채 한국에 온 이 학부모들은 얼마나 어려울까 생각하니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한국어를 잘 가르쳐 빨리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 학부모는 “잘 못 알아들어도 상황을 보고 대개 내용을 짐작해요. 그렇게 답답하지 않아요”라고 의외의 말을 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한국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말을 해도 (항의 등을) 표현할 수 없으니 그저 못 들은 척하고 참고 지나가요”라고 털어놨다. 결국 중국 학부모끼리만 만나게 된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일단 ‘몰라도 답답하지 않다’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왜 그럴까? 내가 현재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분간이 안 되는 자기 이해 능력 부족이다. 한국에서 적응하고 살아가려면 어려운 문제가 무엇이고 해결 방법은 무엇인지 상황 파악이 안 되니 무력감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 중국 학부모끼리만 만나면 인맥도 부족해지고 그만큼 정보도 뒤떨어진다. 더욱이 다른 사람이 무시해도 그냥 참고 지낸다는 것은 불공정할뿐더러 위험천만하다.

아는 것이 힘이다. 언어도 일종의 강력한 무기다. 한국에서 살고 자녀를 키우는 이주민으로서 한국어를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어야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고, 주변과 소통할 수도 있으며, 또 자녀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 더 나아가 부당함에서 나를 지킬 수도 있지 않겠는가.


배정순 이중언어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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