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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사랑하는 그가 나타났다. 그의 모습을 보니 순간 울컥했다. 안와골절 수술로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 손흥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딪히고 넘어지는 일이 다반사인 거친 경기 축구를 하기 위해 나왔다. 조국을 위해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월드컵은 1930년 프랑스의 쥘 리메의 제안에 따라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으로 우루과이에서 처음 열렸다. 유럽의 4팀, 남미의 7팀, 북미의 2팀이 참가했으며, 첫 번째 FIFA 월드컵 개최국 우루과이는 우승도 함께 차지했다. 초기 월드컵은 대륙 간 장거리 여행의 어려움과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등으로 인해 참가하지 못하는 국가가 많았다. 종전 이후 1950년 제4회 월드컵 대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안정적으로 개최될 수 있었다.

우리는 기억한다. 국민 모두에게 첫사랑을 막 시작할 때의 설렘과 뜨거움과 환희를 안겨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그때 우리는 행복했다. 너와 내가 아닌 우리로 서로를 포옹했다. 그 짜릿한 일체감은 우리를 단단히 결속시켰다. 월드컵은 단순한 운동경기가 아니라 아름다운 화합의 장이었으며 오색 폭죽이 팡팡 터지는 축제의 장이었다. 그 기억을 잊지 못해서였을까? 나는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보기 위해 독일로 갔다. 우리나라는 토고, 스위스, 프랑스와 맞붙는 G조였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은 붉은악마를 비롯해 한국 교민, 유학생, 여행객 등 태극전사 응원단으로 북적거렸다. 그들은 ‘아∼대한민국’을 부르며 응원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특히 그곳에는 미술을 전공하는 독일 학생들이 나와서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고 있었다. 대부분 자기 나라 국기를 뺨에 팔에 손등에 그려 응원 도구로 삼았다. “한국 사람들은 애국심이 남달라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멋있게 예쁘게 그려달라고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정확하게 그려 달라고 해요. 태극기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해요.” 한 학생의 말에 자긍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곳에서 나는 느슨하고 자유로운 관람객도 여행객도 될 수 없었다. 빨간 티셔츠에 태극 마크가 찍힌 모자 등 응원복장으로 다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한눈에 한국인임을 알아봤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나라 대표선수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지난 추억도 소환시키는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오랜 시간 힘들었던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와 즐거움을 줄 것이다. 특히 손흥민 선수의 마스크 투혼은 가슴 뭉클하다. 한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그 상태로 뛰는 게 힘들고 불안하지 않습니까?” 그가 대답했다. “조국을 위해서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0-0으로 비긴 우루과이전, 코너킥을 얻은 상황에서 주심이 그대로 경기를 종료시켜 더욱 아쉬운 2-3 패배의 가나전, 결과가 있는 운동경기이지만 우리는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뜨거운 응원만 보내자.


조연경 드라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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