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변형생물·기후위기 불신론자들 등
범람하는 가짜뉴스 시대 과학적 소통 실험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리 매킨타이어/노윤기 옮김/위즈덤하우스/2만2000원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시대는 과학도 내버려두지 않는다. 온갖 낭설이 과학의 외피를 입고 대중을 현혹한다. 또 믿고 싶은 대로만 믿으려 하는 ‘현실 부정’이란 사회 병폐의 뿌리에는 ‘과학 부정’이 숨어있다. 과학 부정 현상이 사회 문제로 처음 대두한 것은 1950년대 대형 담배회사들 탓이다. 홍보전문가를 동원해서 ‘흡연은 폐암을 유발한다’는 과학적 사실을 전략적으로 무력화하면서부터였다. 이후 진화론이나 기후위기에 대한 불신에 이어 코로나19 시대의 백신 음모론 등으로 과학 부정은 그 폐해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국제지평설연구학회(International Flat Earth Research Society·평평한 지구 학회)’가 대표적이다. ‘지구’ 대신 ‘지평’을 주장하며 1956년에 영국인 새뮤얼 셴턴이 조직 활동을 시작한 후 부침을 거듭하며 존속해오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지구는 구형이 아니라 원반형이다. 북극이 원반의 중심에 있고, 원반의 바깥쪽은 45m 높이의 얼음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태양과 달의 지름은 모두 52㎞ 정도다’로 압축된다.
지평설과 더불어 “기후변화 위기는 사기다”, “백신은 몸에 해롭다”는 식의 과학을 부정하는 황당한 주장이 너무도 진지하게 퍼지는 이 시대, 신간은 미시간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철학자가 연구실을 벗어나 ‘평평한 지구 국제 학회’에 참석해 대체 어떤 이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지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고백건대, 2018년 평평한 지구 국제 학회 등록 테이블에서 흰 가운을 입고 미소로 참석자를 응대하는 젊은 여성에게서 출입증을 건네받아 목에 거는 순간 잠시 멈칫했다. 혹시라도 누군가 알은체할까 걱정되었고, 그가 사진을 찍지나 않을까 우려되었다. … 남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자신들도 모두 둥근 지구론자였지만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평평한 지구를 믿게 되었다.”
평평한 지구론자를 시작으로 저자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석탄 광부와 저녁 식사 자리를 만들고 기후위기를 실시간으로 체감 중인 몰디브로 직접 떠나 현지인의 삶을 조사한다. 또 유전자변형생물(GMO)에 대한 강한 불신을 표명하는 친구들과 토론한다. 목적은 설득을 위한 대화다. 그러나 저자 뜻대로 일이 술술 풀린 적이라곤 거의 없다. 언제나 예상치 못한 장벽에 부딪히고 좌절을 맛보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곤 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증거를 토대로 한 과학적 논쟁에는 실상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증거가 아니라 정체성이었다. 어떤 이념이나 신념을 믿느냐보다 경험적으로 어떤 편에 속하게 되었는지, 어떤 정체성을 선택했는지가 더 중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을 설명해주는 식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부정당할 상황임을 직감했을 때 더 강하게 저항하는 한편 상대 논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자신을 정당화했다.

또 기후변화 부정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과는 별개로, 개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머지않아 섬이 가라앉을 위험에 직면한 몰디브인에게는 다가올 미래가 아닌 눈앞의 현실이지만,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진위를 다투며 소모적인 논쟁을 벌인다. 저자가 직접 만난 몰디브 소년은 다음의 말을 남겼다. “몰디브 바깥 사람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죠.”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과정에서 당장 생계를 위협받는 석탄 광부는 기후위기의 존재 자체는 인정했다. 다만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바꿔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불안과 우려를 표했다.
과학 부정론이 정치적 우파의 전유물이라고 속단해선 안 된다. GMO에 저항하는 진보적 환경론자는 GMO가 안전하다는 과학적 합의가 정말로 존재하는지 의심한다. 몬산토 같은 부패한 생명공학 회사가 농업 산업을 지배하기 위해 GMO를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모든 악전고투 끝에도 저자는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저자가 소개한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방법은 깊이 새겨둘 만하다. 첫째, 소통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 둘째, 토론하되 공격하지는 말아야 한다. 셋째, 상대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그의 입장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넷째,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다섯째, 상대방이 그런 의견을 가지게 된 배경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여섯째, 사실관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세계관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 비단 ‘세상은 평평하다’는 이들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지켜야 할 대화의 원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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