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과 경기 불확실성의 여파로 비제조업을 중심으로 이달 기업들의 체감 경기가 약 2년 만에 최악 수준으로 나빠졌다. 비제조업의 상황이 더욱 악화했지만, 모든 기업이 불확실한 경제상황 및 원자재 가격 상승, 내수 부진, 환율 등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올해 3분기 합계출산율이 0.8명 밑으로 떨어지면 연간 합계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0.7명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 체감경기 2년 만에 ‘최악’
한국은행이 23일 발표한 11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달 모든 산업의 업황 실적 BSI는 75로, 10월(76)보다 1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2020년 12월(75) 이후 1년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체 산업의 BSI는 지난 7월 80에서 8월 81로 올랐지만, 이후 3개월 연속 하락했다.
BSI는 현재 경영상황에 대한 기업가의 판단과 전망을 바탕으로 지수화한 수치다. 지수가 100을 넘으면 업황이 좋다고 응답한 기업이, 100을 밑돌면 업황이 나쁘다는 기업이 더 많다는 의미다.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 체감 경기는 나아졌지만 비제조업이 악화하면서 전체 지수를 끌어내렸다. 이달 제조업 업황 BSI는 74로, 전월보다 2포인트 상승했다. 세부 업종별로는 글로벌 여행수요가 회복돼 항공유 수요 증가로 석유정제·코크스(85)가 한 달 새 12포인트 급등했다. 화학물질·제품(65)은 신소재 분야 확대 등 수익성 다변화에 따른 업황 개선으로, 전기장비(90)는 계절적 수요가 늘면서 각각 11포인트씩 뛰었다.
반면 11월 비제조업 업황 BSI는 전월 대비 3포인트 하락한 76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2월(72) 이후 1년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세부 업종별로 살펴보면 도·소매업(75)이 내수 부진으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 영향으로 한 달 새 5포인트 떨어졌다. 주택경기 둔화와 유동성 악화로 건설업(64)이 4포인트 하락했고, 건설경기 부진에 장비임대 수요가 줄면서 사업지원·임대서비스(77)도 7포인트 낮아졌다.

제조업·비제조업 기업들은 모두 경영 애로사항으로 불확실한 경제상황을 가장 많이 꼽았고 △원자재 가격 상승 △인력난·인건비 상승 △내수 부진 △자금 부족 △환율 등이 뒤를 이었다.
다음달 업황에 대한 전망 BSI지수도 2포인트 하락한 74로 나타났다. 제조업(69)에서 4포인트, 비제조업(77)에서 1포인트 떨어졌다. BSI에 소비자동향지수(CSI)까지 반영한 11월 경제심리지수(ESI)는 10월보다 4.1포인트 하락한 91.4를 기록했다. ESI는 모든 민간 경제주체의 경제심리를 보여주는 지수로 수치가 100을 넘으면 과거 평균보다 경기가 나아졌다는 평가로 해석된다.
한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4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올해 마지막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현재 기업들의 금융상황 등을 고려하면 급격한 금리 인상은 불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전경련은 이날 발표한 ‘물가·경제펀더멘털 주요국 비교를 위한 통화정책 방향성 검토’ 보고서에서 △인플레이션을 고려해도 높은 실질기준금리 △우수한 대외신인도와 지급 능력에 따른 높은 자본유출 방어력 △악화하고 있는 국내기업의 금융 상황 등의 근거를 들어 금리 인상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국내비금융기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올해 1분기 기준 115.2%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말(101.3%)보다 13.9%포인트 올랐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통계가 있는 19개 국가 중 3번째로 빠른 속도다. 부채 상환능력을 보여주는 DSR(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율)도 한국은 비금융기업 기준 2019년 말 38.3%에서 올해 1분기 39.7%로 1.4%포인트 올라 부채 상환 여력이 줄었다.
◆대외금융자산·부채 감소… 주식시장 침체 등 영향
국내외 주식시장 침체와 미국 달러화 강세 등이 맞물리며 올해 3분기 우리나라의 대외금융자산과 부채가 모두 감소했다. 우리나라의 해외 투자가 줄었지만 해외에서 국내 주식과 채권 등에 대한 투자가 더 많이 줄면서 순대외금융자산은 증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23일 발표한 ‘국제투자대조표’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대외금융자산(대외투자)은 2조829억달러로 집계됐다. 지난 6월 말(2조1235억달러) 대비 406억달러 감소하는 등 2분기째 줄었다. 한은 경제통계국 국외투자통계팀 유복근 팀장은 “글로벌 주가 및 미 달러화 대비 주요국 통화가치 하락 등 비거래요인으로 대외금융자산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대외금융부채(외국인의 국내 투자)는 9월 말 기준 1조2969억달러로 전 분기 대비 826억달러 감소하는 등 3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대외금융자산보다 대외금융부채가 더 많이 줄면서 한국의 대외지급 능력을 반영하는 순대외금융자산(대외금융자산–대외금융부채)은 3분기 말 기준 7860억달러를 기록했다. 전분기 말(7441억달러) 대비 419억달러 증가한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3분기 말 기준 대외채권은 1조186억달러로, 2분기 말 대비 296억달러 줄었다. 대외채무는 3분기 말 기준 6390억달러로 3개월 전보다 231억달러 줄었다. 글로벌 금융시장 불확실성으로 해외투자 수요가 둔화하면서 예금취급기관의 차입금이 줄어 단기외채가 129억달러 감소했다. 대외채권에서 대외채무를 뺀 순대외채권은 3분기 말 기준 3796억달러로 전분기 말(3861억달러)에 비해 65억달러 줄었다.
한편, 금융당국은 한국 증시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요인으로 지목돼온 불투명한 배당 제도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편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28일 코리아 디스카운트 릴레이 세미나에서 배당 제도와 외국인 투자 등록제 개편을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 초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현재 국내에선 대다수 상장 기업들이 매년 12월 말에 배당받을 주주를 확정(배당 기준일)한 뒤 다음 해 3월 주주총회에서 배당금을 결정하고, 4월에 지급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당국은 이러한 순서를 바꿔 배당금 결정일 이후 주주를 확정하는 방식으로 제도 개편에 나설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합계출산율 첫 0.7명대 유력
지난 3분기 합계출산율(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이 0.8명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9월 출생아 수 역시 동월 기준 가장 낮았다. 다만, 9월 출생아 수가 전년 대비 20명 줄어드는 데 그치는 등 감소세가 둔화됐다. 1990년대 초중반 연간 출생아 수가 70만명대로 늘었는데, 이들이 본격적으로 출산연령대에 진입하면서 생긴 효과인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90년대생 부모가 증가하는 시기를 출산율 반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면서 정부가 조속히 노동 등 각 분야의 구조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출생아 수는 6만4085명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2466명(3.7%) 줄었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출생아 수 역시 19만2223명에 그쳐 20만명을 밑돌았다. 3분기 합계출산율은 0.79명으로 1년 전보다 0.03명 감소했다. 이는 분기별 합계출산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9년 이후 3분기 기준 역대 최저치다. 통상 연말로 갈수록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합계출산율은 사상 처음으로 0.7명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9월 출생아 수는 2만1885명으로 동월 기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2015년 12월부터 82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감소하는 흐름이 지속됐다. 다만, 전년 동월 대비 20명(0.1%) 줄어드는 데 그쳐 감소세는 둔화됐다. 출생아 수가 두 자릿수 감소에 그친 것은 2012년 3월(-51명) 이후 10년6개월 만이다.
이에 대해 1990년대 초중반 출생아 수가 늘어난 점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출생아 수는 연평균 63만6523명이었지만 1991년부터 1995년까지는 연평균 71만8396명으로 늘었다. 또 여아 100명당 남아 수를 의미하는 총출생성비도 1990년 116.5명에서 1995년 113.2명을 기록하는 등 개선됐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90년대생은 실질적인 베이비부머 자녀 세대이고 인구정책 2기에 해당돼 산아제한정책이 풀리는 등 볼륨 자체가 늘어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성비불균형이 완화된 90년대생이 출산연령대로 진입한 점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아직도 월별로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저출산 현상이 완화되고 있는지는 앞으로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90년대생 이후 세대가 경제적 문제로 출산을 기피하지 않도록 대대적인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 교수는 “조금 반등의 기미가 있는 지금이 굉장히 중요한 타이밍이기 때문에 90년대생의 결혼, 출산과 관련된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확실한 신호를 줘야 한다”면서 “고용과 주거의 안정성을 높여주고, 양육환경과 관련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 돌봄의 사회화 등 전폭적으로 장기적인 방안을 세트로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모 입장에서 노동시간이 너무 길고, 충분한 임금이 확보되지 않으면 출산을 꺼릴 수밖에 없다”면서 “비정규직 증가에 따라 노동시간 및 임금 측면에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데, 네덜란드처럼 비정규직의 적정임금을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구조 개혁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복지 차원에서 추진되어 온 기존 대책과 달리 주택·일자리 등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종합적 차원에서 제대로 된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 “그간 소홀했던 고령사회 적응 정책을 강화함과 동시에, 이민이나 고령자 고용 연장 같은 예민한 이슈까지 면밀히 검토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인구 미래전략을 기획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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