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독 소유 보수 매체들 등 돌려…NYT는 트럼프 맹비난 사설 실어
트럼프의 백악관, 과거 기자들에 “예의 갖춰라… 책임 묻겠다”으름장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편협한 언론관’은 유명하다. 그는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2월18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가짜 뉴스 언론(망해가는 뉴욕타임스, NBC 뉴스, ABC, CBS, CNN)은 나의 적이 아니다. 미국 국민의 적이다!”라고 썼다. 설전을 벌인 기자의 백악관 출입증을 뺏고, 기자들이 앞으로 ‘예의’를 갖추고 행동하지 않으면 기자회견장에서 나가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4년 내내 자신에게 비판적인 미국 주요 언론들을 향해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공격을 계속했고, 폭스뉴스 등 ‘친트럼프 언론’과는 밀착 관계를 이어갔다. 이같은 행보를 예측했던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취임 후 한달이 지났을 무렵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Democracy Dies in Darkness)’는 슬로건을 1면에 싣고, 홈페이지에 내걸었다.
그리고 다시 대선 출마를 선언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제 언론의 조롱을 받고 있다. 한때 그를 열렬히 지지하던 보수 매체마저 등을 돌린 모습이다.

◆다시 대선 출마 선언한 트럼프, 조롱한 언론들
트럼프 전 대통령이 3번째 대선 도전을 선언한 다음날인 지난 16일 뉴욕포스트는 1면 맨 아래에 ‘플로리다 남자가 발표하다’라는 모호한 예고성 제목과 함께 26면을 보라고 적었다. 전날 밤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4년 대권 도전 선언 기사를 1면이 아닌 26면에 배치한 것도 모자라 ‘트럼프’라는 이름이나 ‘전직 대통령’과 같은 직위가 아닌 마치 평범한 플로리다 주민인 것처럼 쓴 것이다.
심지어 뉴욕포스트는 26면에서도 한 줄짜리 단신 기사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출마 선언을 다뤘다. 신문은 ‘이미 다 겪어봐서 안다’(Been there, Done that)라는 영어 문장에서 ‘Done’을 발음이 비슷한 도널드의 약칭 ‘Don’으로 바꾼 기사 제목(Been there, Don that)으로 그의 3연속 대권 도전을 폄하했다. 기사 본문에서도 “플로리다의 한 은퇴자가 대선에 출마한다는 깜짝 선언을 했다”라며 “열혈 골퍼(avid golfer)인 도널드 트럼프가 기밀문서 도서관인 자신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대권 도전을) 시작했다”고 조롱했다.

뉴욕포스트는 오는 2024년 만 78세가 되는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 함께 최고령 대통령 타이기록을 세운다는 점을 부각한 뒤 “그의 콜레스테롤 수치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비꼬기도 했다. 이 기사에서 신문은 맨 마지막 문장에서야 “트럼프는 또한 45대 대통령으로 재직한 바 있다”고 부연했다. 뉴욕의 대표적인 타블로이드 신문 중 하나인 뉴욕포스트는 2020년 대선 때만 해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개 지지하면서 민주당 후보였던 바이든 대통령을 맹렬히 공격했으나, 불과 2년 만에 완전히 달라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폭스뉴스 등 보수 성향 미디어 재벌인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다른 매체들도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관심을 주지 않거나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고 있다. WSJ은 중간선거 직후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 비판하는 사설을 두 차례나 실었다.
진보 성향인 뉴욕타임스(NYT)는 말할 것도 없다. NYT는 트럼프의 출마 선언을 진지하게 조목조목 비판하는 논설위원실 명의의 사설을 펴냈다. NYT는 “그의 새 대선 캠페인은 거짓말과 혼돈이라는 똑같은 추악함으로 시작됐다. 이는 미국의 민주주의에 훨씬 더 큰 위협을 제기한다”라며 “트럼프는 공직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더이상 민주적 절차에서 선의의 참가자인 것처럼 위장할 수 없다”며 대선 불복 문제를 거론한 뒤 “트럼프는 인종주의를 부추기려고 대중을 선동했으며, 크고 작은 거짓말을 했고,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사익을 국가 안보보다 우선했으며, 독재자들의 친구였다”고 비판했다.
◆트럼프와 기자들 대놓고 수차례 충돌
트럼프는 과거 대통령에 취임한지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언론을 옥죄기 시작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과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의 항공 사진을 놓고 참가자 규모를 비교한 보도를 문제 삼은 것이다.
션 스파이서 당시 백악관 대변인은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취임식 참석 인원을 의도적으로 줄여서 보도하고, 대통령 집무실 내 마틴 루터 킹 목사 흉상에 대해서도 오보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기자들의 책임을 묻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같은 백악관 대변인의 언론을 향한 “의도적인 거짓 보도” 등 발언에 정계와 언론계는 충격적이라고 반응했다.

오죽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출입 기자와 공개적 설전을 벌여 ‘앙숙’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2018년 11월7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을 거론하려는 짐 아코스타 CNN 기자를 가리키며 “그걸로 충분하다. 자리에 앉으라. 마이크를 내려놓으라”고 언성을 높였다. 백악관 여성 인턴은 아코스타 기자에게 다가가 마이크를 빼앗으려 했고, 회견은 잠시 중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그를 가리키면서 “당신은 무례한, 끔찍한 사람”이라며 “당신은 CNN에서 일해서는 안 된다”고 비난했다.
백악관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아코스타 기자의 백악관 출입을 정지시켰다. CNN은 즉각 법원에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며 맞불을 놨다. 백악관 출입기자단은 당시 공동성명을 내 “(백악관 출입을 위한)보안 허가를 불편한 관계의 기자를 벌주는 도구로 사용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에 강하게 반대한다”고 했다.
결국 법원은 CNN의 손을 들어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사람들이 예의 바르게 처신해야 한다”며 “백악관 직원들이 기자들이 준수해야 할 규정을 작성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우린 다시 법원에 갈 것이다”라며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냥 (회견장을) 떠나버릴 거라는 것. 그럼 기자들은 그리 기쁘지 않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대통령 재임 당시 NYT와도 정면 충돌했다. 2018년 7월 트럼프 대통령과 비공개회의를 가진 뉴욕타임스 아서 그렉 설즈버그 발행인은 기자들을 ‘국민의 적’이라고 칭하는 것을 가리켜 “언론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엔 이 비공개회의가 “매우 좋았다”고 말했으나, 이후 “언론이 국민의 삶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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