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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안돼 월드컵’… 그래도 팬들은 즐거워 [서필웅 기자의 중동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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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1-22 19:00:07 수정 : 2022-11-30 15: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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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저녁 네덜란드와 세네갈의 2022 카타르 월드컵 A조 조별리그 첫 경기를 취재하기 위해 경기장인 알투마마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이날은 지하철로 이동한 뒤 경기 당일 역과 경기장을 오가며 팬들을 실어 나르는 셔틀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정류장 앞에 오렌지색 유니폼을 맞춰 입은 네덜란드 팬들과 녹색 유니폼의 세네갈 팬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결전을 앞둬서 긴장한 탓인지 모두 조용하고 침착하게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21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B조 1차전 잉글랜드 대 이란 경기에서 킥오프를 알리는 축포가 터지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막상 버스에 오르고 나니 분위기가 바뀐다. 한 네덜란드 팬이 응원 구호를 외치자 호응이 나오고, 세네갈 팬들도 대응하며 버스 안에선 순식간에 응원전이 펼쳐졌다. 곧 경기를 치를 라이벌이지만 경쟁심보다는 함께 즐기는 듯한 느낌의 응원전이었다. 여기에 버스에 탄 멕시코 팬들이 덩달아 ‘멕시코’를 외치며 시끄럽게 응수한다. 곧 다가올 경기의 설렘까지 더해 마치 수학여행을 가는 버스 같았다. 팬들의 표정도 밝고 즐거워 보였다.

즐거울 만도 하다. 응축된 열정을 터뜨릴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월드컵은 축구팬들이 4년에 한 번씩 마음껏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지만 이번 대회는 오로지 열정만으로 행동해서는 곤란하다. 철저한 이슬람 율법으로 운영되는 국가인지라 금지된 것들이 매우 많은 탓이다. 잘 알려진 술, 돼지고기 외에도 지나친 소란행위와 사진 촬영에 제약이 있는 등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넘친다. 경기장 주변에 관광객의 금지 물품과 금지행위 안내문이 붙어 있는데 벽보 크기가 성인 상반신에 가까울 정도로 내용이 빽빽하다.

국가 분위기도 한창 월드컵을 치르고 있는 나라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지나치게 차분하다. 거리 곳곳에 월드컵을 알리는 여러 장식과 광고들이 붙어 있지만 현지인들에게서 들뜬 모습을 찾기 힘들다. 이런 여러 이유로 카타르를 방문한 축구팬들은 어느 정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도하 시내 공원에서 열리는 팬 페스티벌에 가면 술도 마실 수 있고, 시끄러운 음악 속 춤추고 소리도 지를 수 있기는 하다. 사실상 유일한 해방구이기에 매일 축구팬 수천명이 모여 월드컵 분위기를 만끽한다. 하지만, 팬 페스티벌도 어디까지나 제한된 공간에서 이뤄지는 행사라 이곳 분위기가 국가 전체로 퍼지진 않는다.

이렇게 카타르 월드컵은 앞선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여느 국제 스포츠 이벤트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속 대회 초반을 지나고 있다. 대회가 무르익어 가면 분위기가 바뀔까. 아직은 미지수다. 하지만, 축구팬들이 작은 기회에서도 열정을 터뜨리며 월드컵을 즐길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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