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종규칼럼] 굿바이 버냉키, 헬로 마르크스

관련이슈 이종규 칼럼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2-11-20 22:51:13 수정 : 2022-11-20 22:51:1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前 연준의장 주도한 금융정책
최근의 금융불안·불황 등 원인
‘금융과잉 경제 위축’ 망령 우려
돈 의존한 섣부른 정책은 금물

지난 10월 노벨경제학상이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 등에게 수여되었다. 금융안정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기여하였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버냉키 의장 주도 정책들이 지금의 금융불안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수상의 논거가 썩 와 닿지 않았다.

근래 세계는 금융불안에 휩싸여 있다. 이는 미국이 고물가를 배경으로 금리를 급격히 인상하고 나서면서 비롯되었다. 주요국의 환율이 급등하고 주식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 많은 개도국은 심각한 외환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종규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전 대구가톨릭대 초빙교수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환율이 급등하고 외환보유액도 줄고 있다. 고환율이 국제유가 상승효과를 증폭시켜 국내 물가를 부추기고 있다. 이에 따른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국내 채권시장에서는 일부 채무자들이 대출 상환과 만기 연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가계부채 문제가 현실화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이러한 금융불안의 단초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고물가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물가 급등의 근본 원인은 어디까지나 돈 문제이다. 지난 20여년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경기부양, 금융안정 등의 목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이 공급되었다. 결국 과잉 유동성의 부작용이 최근의 물가불안과 금융불안으로 나타난 것이다. 앞으로 이어질 경기후퇴마저도 그 후과라 하겠다.

문제는 지금의 고물가, 금융불안, 그리고 불경기 등 일련의 현상들이 새로운 유형의 경제위기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는 점이다. 대개 경제위기는 경제시스템의 일부가 작동을 멈추는 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금융 과잉 상황에서는 금융불안 등으로 경제가 무력화되는 식으로 위기가 서서히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마치 마르크스가 예상했던 자본주의가 쇠락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금융 축적으로 자본의 값(금리)이 싸지면 자본이 노동을 대체하게 된다고 한다. 그 결과 수요가 감퇴하면서 자본수익률이 더욱 낮아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추가로 자본을 투입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경제성장률은 더욱 낮아지게 된다. 자본 부족이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게 아니라 금융과잉이 경제를 위축시킨다는 것이 마르크스 이론의 요체이다.

사실 현대 사회는 과잉 유동성에 더하여 금전만능주의 풍토마저 형성되었다. 돈이 돈을 버는 수단이 되면서 근로의식은 크게 퇴색되었다. 윤리와 도덕마저도 돈으로 갈음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돈 위주의 사회는 불안을 잉태하고 약육강식의 논리가 적용되고 말았다. 하버드대학교 철학과 마이클 샌델 교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점을 들어 과잉 유동성 시대의 병리현상에 대해 개탄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정책당국이 이러한 풍조를 부추겼다는 사실이다. 2000년대 이후 반복되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돈을 주로 활용하여 왔다. 특히 미국에서는 ‘대이완기’라는 말을 만들어 돈을 풀어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호도하였다. 심지어는 유동성 과잉 공급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였음에도 돈을 풀어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 일에 바로 버냉키 의장이 간여하였다. 그리고 그 부작용이 지금의 금융불안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정책을 답습하였다. 박근혜정부는 ‘빚 내서 집 사라’는 식의 정책을 펼쳤다. 문재인정부에서는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그 결과는 가계부채 누적과 정부 채무부담 증대였다. 당시 정책들이 지금 우리 경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 국내외 금융불안정과 관련하여 적어도 넘쳐나는 돈에는 부작용이 뒤따른다는 점을 세상이 직시하였으면 좋겠다. 이는 개인적 차원의 재산축적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이 인식이 결여되면 실제로 마르크스의 망령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이제는 돈에 의존한 섣부른 정책은 시행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에 부작용이 덜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도 경제활동에 도움을 주는 정책수단을 개발, 시행하는 데 정책당국의 노력이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이종규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전 대구가톨릭대 초빙교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