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흙더미 속 꼭꼭 숨은 쓰레기… ‘비양심’ 곳곳에 묻혀있다 [심층기획-폐기물 7000t의 딜레마]

, 폐기물 7000t의 딜레마 , 세계뉴스룸 , 환경팀

입력 : 2022-11-18 06:00:00 수정 : 2022-11-18 13:49:5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1부> 나는 쓰레기다 - 5회 그 많은 사업장폐기물은 어디로 갈까

‘관리 사각’ 불법 매립 폐기물
보령 상중마을 악취 풍기는 ‘쓰레기산’
市, 불법 매립 업자에 처리 명령했지만
2600t 중 70% 이상 방치 주민들 고통
정부서 확인한 불법 폐기물만 190만t
30만t은 업주 버티기로 아직 처리 안돼

적발 어려워 통계서 누락
원주 채석장에 불법 매립 건폐물 40t
업체·직원 임금 갈등에 우연히 드러나
강원 시멘트공장도 강제 검사 착수
‘감춰진 업체 폐기물’ 연간 178만t 추정
장기 매립 땐 주민 유해물질 노출 우려

재활용률 과장 ‘통계 착시’
사업장폐기물 1억7816만t… 5년 새 30%↑
재활용업체 반입돼도 다 재활용 못 돼
재활용률 99% 건폐물, 실제 70% 그쳐
“사업장 폐기물 정부 통계 현실화 시급
공정 효율화… 산업별 감축방안 마련을”

“밤에는 산 아래로 바람이 부는데 이 냄새 때문에 문도 못 열어놔요.”

 

지난 8일 오후 충남 보령시 청라면 라원2리 상중마을 뒷산. 주민 김미나(57)씨가 사람 키 두 배를 훌쩍 넘는 높이인 흙더미를 가리킨 채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며 이렇게 말했다. 보령 성주산 자락인 이 산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이 흙더미는 인근 주민 A씨가 불법으로 매립한 사업장폐기물 중 일부를 퍼내 토사와 섞은 채 방치해놓은 것이었다. 김씨는 불법 매립이 추정되는 산지와 불과 30m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지난 8일 충남 보령시 청라면 라원2리 상중마을 주민 김미나(57)씨가 불법 매립된 사업장폐기물이 섞여 있는 흙더미를 가리키고 있다. 

이날 현장을 찾은 기자 또한 바람이 불 때마다 느껴지는 악취에 몇 차례 헛구역질을 했다. 김씨는 “우리 마을 새마을지도자분도 여기 와서 냄새가 너무 역하니까 못 견디겠다며 10분 만에 소주를 들이켰다”고 말했다.

 

기자가 흙더미를 한번 들춰보니 금세 폐기물을 담는 데 쓰였던 포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령시는 현재 폐기물 출처를 특정하지 못했지만, 주민들은 지역 사업장에서 나온 폐기물로 보고 있다. 김씨는 “근처 수산물 가공업체가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폐기물을 수년간 여기 산에 묻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가 되는 건 악취만이 아니었다. 불법 매립지 부근에는 이 산에서 마을로 흘러내려 오는 물길이 있다. 상중마을 200가구는 모두 지하수를 마신다. 주민 신종임(67)씨는 “여름철에 비가 올 때는 침출수가 물길에 섞여 마을로 내려온다”며 “지하수를 이용해 생활하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흙더미와 함께 매립지로 추정되는 땅 위로 침출수가 스며 나온 흔적을 여럿 찾아볼 수 있었다. 

 

마을에 불법 매립된 이 쓰레기는 일종의 ‘숨은 사업장폐기물’이다. 적법한 처리 절차를 밟지 않아 정부 통계에서 누락된 폐기물이란 뜻이다. 상중마을처럼 그 존재가 외부에 드러난 경우라도 처리가 지연돼 주민 피해가 장기화하는 경우가 잦다. 더 큰 문제는 사업주가 비용 절약을 목적으로 ‘진짜 사각지대’에 꼭꼭 숨겨버린 사업장폐기물이 도처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드러나지 않은 사업장폐기물은 그 규모를 정확히 가늠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충남 보령시 청라면 라원2리 상중마을 뒷산에 불법 매립된 사업장폐기물이 흙더미에 섞여 드러난 모습이다.

◆통계에 없는 사업장폐기물

 

정부가 2019년 방치·불법투기 등 불법폐기물 전수조사에 나선 이후 최근까지 확인된 양만 190만t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 전수조사 이후 최근(11월7일 기준)까지 적발된 불법폐기물은 총 191만3000t이었고, 이 중 처리되지 못한 폐기물은 30만8000t(16.1%)으로 집계됐다.

 

환경부는 2019년 당시 불법폐기물 문제가 공론화되자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전수조사를 벌였고 불법폐기물 120만3000t을 확인했다. 이들 폐기물은 당시 올해까지 처리를 완료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2% 가까운 2만1000t이 남은 상황이다. 전수조사 이후 추가 확인된 71만t의 경우 미처리 비율이 40.4%(28만7000t)나 됐다.

 

불법폐기물이 드러나더라도 불법 매립 행위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처리는 지연될 수밖에 없다. 상중마을의 경우에도 주민들이 올 4월 보령시에 정식으로 진정을 접수한 뒤 A씨가 폐기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지만, 현재까지 매립 추정량 2600t(혼합토 기준·보령시 추정치)의 70% 이상이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령시가 A씨에게 폐기물 처리를 명령하는 행정처분을 최근까지 세 차례나 내렸지만, 1·2차 행정처분 때 26% 남짓인 686t가량만이 반출됐다. 3차 처분 기한은 애초 이달 7일까지였으나 추가 처리가 이뤄지지 않아 오는 21일로 연장된 상태다.

A씨는 비용 문제뿐 아니라, 폐기물을 인수하겠다는 업체를 찾는 게 쉽지 않아 명령 이행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 김씨는 “보령시가 말하는 폐기물 양은 과소 추산됐다. 우리가 눈으로 불법 매립지 출입을 확인한 25t 트럭만 2000대 분량”이라며 “A씨 개인에게 맡겨놓을 게 아니라 보령시가 직접 집행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령시 관계자는 “폐기물 양은 불법 매립 면적 1845㎡에 기초해 측정 기준에 따라 계산한 것”이라며 “A씨가 반출 명령을 이행하도록 계속 협의하고 있고, 행정대집행도 대안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상중마을의 불법폐기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주민들을 괴롭히는 악취가 없었다면 영영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사업장폐기물 불법 매립이 적발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9월 강원 원주 섬강 인근 채석장 부지에서 불법 매립이 발각된 40t가량의 건설폐기물·지정폐기물 또한 매립을 주도한 업체가 중장비 기사들과 임금체불로 갈등을 빚어 우연히 드러난 것이었다. 최근 원주시는 폐기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이 업체 관계자 2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불법 매립이 확인된 이 폐기물 또한 아직 처리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원주시 관계자는 “문제가 된 업체가 소속 직원들이 벌인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업체는 폐기물을 우선 처리한 뒤 직원들에게 민사소송을 통해 비용을 받아내겠다는 입장을 전달해왔는데 수사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 시민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경찰에 폐기물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한 쌍용C&E의 강원 동해·영월 시멘트공장 염소더스트 불법 매립 역시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 기간 중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실이 한국환경공단과 함께 공장 부지 내 매립지 시료 검사를 진행하면서 드러난 사안이었다. 염소더스트는 폐기물을 이용한 시멘트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지정폐기물이다. 김삼수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실장은 “현재도 매립지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이 공장 측으로부터 철저히 차단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불법폐기물의 전모를 완벽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비율로 따져보면 한창 기승을 부릴 때 기준으로 총 사업장폐기물 1% 수준이고, 현재는 그보다 적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라고 말했다. 비율로는 미미해 보이지만 실제 그 양을 따져보면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양이 아니다.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전체 사업장폐기물의 1%는 약 178만t 수준이다. 사업장폐기물은 특히 그 자체에 유해물질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토에 장기간 매립돼 있다면 인근 주민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홍 소장은 “불법폐기물이 1만∼2만t만 묻혀 있다고 해도 그 처리 비용이나 유해성을 따져보면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 했다. 다만 최근 사업장폐기물 시장 여건이 변화하면서 불법폐기물 대량 발생 가능성이 낮아졌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이전에는 처리업체가 충분치 않아 사업장폐기물 처리 비용이 높았던 탓에 불법 매립에 대한 유인이 컸는데, 지난해부터 업체가 늘면서 이 문제가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남훈 안양대 교수(환경에너지공학)는 “지난해 사업장폐기물 매립장 7곳이 새로 가동에 들어갔다”며 “그 영향으로 예전에는 지정폐기물 기준으로 t당 40만∼50만원 하던 게 최근 30만∼40만원 이하로 떨어진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업장폐기물 매립장 확대에 우려를 표하는 의견도 있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민간 매립장 대부분이 농촌 지역에 추진되면서 사업장폐기물 발생 책임이 없는 농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99% 재활용’이라는 착시

 

불법폐기물을 제외한 채 정부 통계에 잡힌 수치만 봐도 사업장폐기물은 계속 증가세를 기록 중이다. 특히 2019년 이후 증가율은 10% 안팎으로 이전보다 크게 늘었다.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5∼2018년 적게는 0.2%, 많게는 3.9%를 기록한 증가율은 2019년 13.0%, 2020년 8.2%로 급증했다. 이런 현상에 대한 원인이 현재로서는 뚜렷하지 않다. 같은 기간 폐기물 발생량이 많은 산업 부문의 성장세가 가팔랐거나 요인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불법폐기물 문제 공론화 등으로 2019년 들어 정부의 폐기물 관리 체계가 강화된 영향으로 자연스레 그간에 통계에 잡히지 않던 폐기물이 새로 반영돼 생겨난 수치상 조정일 가능성도 있다.

이런 정도의 차이는 제쳐두더라도 사업장폐기물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건 명백하다. 2015년 1억3680만t이던 사업장폐기물은 2020년 1억7816만t으로 5년 새 30.2%(4136t)나 늘었다.

 

정부는 이렇게 늘어나는 사업장폐기물에 대해 재활용률을 제고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통계만 보면 2020년 기준 건설폐기물은 재활용률이 99.0%에 이른다. 사업장배출시설계폐기물과 지정폐기물도 재활용률이 각각 84.3%, 63.7% 수준이다. 생활계폐기물(생활폐기물·사업장비배출시설계폐기물)의 재활용률이 59.5%인 걸 고려하면 꽤 활발하게 재활용이 이뤄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통계상 착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재활용업체에 반입된 사업장폐기물 전부가 ‘재활용’ 항목에 할당되는데, 업체에 반입된 모든 사업장폐기물이 실제 재활용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남훈 교수는 “개별 폐기물마다 다르겠지만, 재활용업체로 들어간 폐기물 중 보통 15% 이상이 재활용되지 못하고 소각되거나 매립된다”며 “중요한 건 이렇게 재활용업체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사업장폐기물은 통계에 잡히지 않고 누락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상 재활용률이 100%에 육박하는 건설폐기물 또한 실제 재활용률은 70% 정도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나마 재활용되는 건설폐기물의 경우 그 재활용 수준이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콘크리트만 하더라도 순환골재로 재활용된다고 하지만 품질 수준이 높지 않아 단순히 부순 뒤 자갈과 섞어 도로나 주차장을 까는 데 그칠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제 재활용률이 반영되도록 정부 통계를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재활용업체 반입량이 아닌 실제로 재생원료에 쓰인 폐기물 양에 대한 집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업장폐기물의 재활용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전제될 때 실질적인 재활용률을 제고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계속 증가하는 사업장폐기물 양 자체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사업장폐기물 감축은 정부 일방의 노력으로 절대 달성할 수 없으며 산업계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이남훈 교수는 “사업장폐기물은 결국 경제·산업 성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일방적으로 감축을 추진한다고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했다. 홍수열 소장은 “공정을 효율화해 폐기물 발생량을 줄여야 한다”며 “각 산업마다, 폐기물의 종류마다 그 방법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기에 정부 노력만으로 폐기물을 줄이긴 어렵다. 민간 차원에서 산업별 로드맵을 만들어 협력 체계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보령=글·사진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
  •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
  • 수지 '하트 여신'
  • 탕웨이 '순백의 여신'
  • 트리플에스 코토네 '예쁨 폭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