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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 상승에 말라가는 나일강…“올리브도 대추야자도 안열려” [COP27 '기후정의'를 외치다]

, 세계뉴스룸 , 환경팀

입력 : 2022-11-15 06:00:00 수정 : 2022-11-15 20:3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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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열리지 않는 대추야차

계절별 강수량 최대 19.4%↓
나일강 담수 85%가 ‘농업용’
“농사 접어야 하나” 깊은 시름

“가뭄 때문에 올해는 대추야자가 거의 열리지 않았어요.”

 

12일(현지시간) 오후 1시쯤 이집트 기자와 베헤이라 경계의 한 과수원에서 만난 아흐마드 살라(35)는 최근 작황에 대해 설명하던 중 근처에 있던 나무 한 그루를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향한 곳에서 흙빛으로 시든 야자 잎 사이 열리다 만 대추야자 열매가 드문드문 보였다. 아흐마드는 본인 머리와 허리에 양손을 각각 갖다 대더니 “원래 이 정도 늘어지게 열린다”고 했다. 이집트가 원산지인 대추야자는 과육이 달고 영양분이 풍부해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주식처럼 섭취하는 작물이다. 아흐마드는 “계속 더워지고 물도 부족하니까 앞으로 대추야자 농사는 접어야 하나 고민 중”이라며 잔뜩 찌푸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열매 맺지 못한 대추야자 12일(현지시간) 이집트 기자와 베헤이라 경계 지역의 한 농장에서 아흐마드 살라가 올해 기온 상승과 가뭄으로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한 대추야자 나무를 가리키고 있다. 그는 “계속 더워지고 물도 부족하다”며 대추야자 농사를 접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아흐마드가 그간 농사에 쓴 물은 모두 나일강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가 농사짓는 땅은 나일강 지류에서 약 20㎞ 떨어져 있다. 아흐마드뿐 아니라 이집트에서 쓰이는 담수 대부분은 나일강을 출처로 삼는다. 이 담수 중 85%가 농업에 쓰인다.

 

아흐마드가 대추야자 농사를 접을지 고민하게 된 건 이 나일강이 기후변화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기온이 점차 올라 증발량이 빠르게 늘어 나일강의 물이 줄고 있는 것이다. 실제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이집트의 1991∼2020년 계절별 평균 온도는 1961∼1990년 대비 0.64∼1.07도 올랐다. 알렉산드리아 등 지중해 연안 지역을 제외하면 가뭄 또한 계속 심화하고 있다. 1991∼2020년 계절별 강수량은 1.57∼7.23㎜로 1961∼1990년(1.62∼7.35㎜)보다 최대 19.4% 줄었다.

 

아흐마드의 대추야자 나무에 열매 대신 달린 건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였다. ‘손실과 피해’는 2007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경제적·비경제적 손실을 가리키기 위해 처음 사용한 용어다.

 

아흐마드의 나무로부터 약 500㎞ 떨어진 홍해 연안 휴양도시에서 이 ‘손실과 피해’에 대한 보상을 둘러싸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논쟁이 계속되는 중이다. 이집트가 의장국을 맡아 샤름엘셰이크에서 진행 중인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는 기후 피해 보상을 다루는 ‘손실과 피해’를 처음 정식 의제로 채택했다.

 

아흐마드는 이런 ‘손실과 피해’를 직접 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수많은 이집트 농민들 중 한 명일 뿐이다.

 

기자 지역 농장주인 무함마드 살라(55)도 최근 아흐마드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원래 올리브를 한 해 10만파운드(약 45t) 수확하는데 작년에는 4만파운드(약 18t)에 그쳤다”며 “물이 워낙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함마드의 농장은 애초 물이 적게 필요한 올리브, 콩, 오렌지, 레몬 등 작물을 위주로 생산하는데, 최근에 이 중 올리브 작황이 급격히 나빠졌다는 것이다. 무함마드는 “이전에 콩 농사도 짓다가 생산량이 안 나와서 작물을 바꾼 적 있다”며 “물 상황이 좋지 못하니까 키울 수 있는 작물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열매가 열리지 않는 것뿐만이 아니다. 물 부족으로 작물 성장 또한 더뎌지는 중이었다. 베헤이라 지역에서 비닐하우스로 가지 농사를 짓는 후세인 파합(36)은 “온도와 습도가 변화하면서 원래 25일이면 싹을 틔우던 게 지금은 45일이나 걸린다”며 “기간이 느니 비용도 그만큼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용 상승은 기업형 농장에도 큰 부담이 된다. 대규모 농장 ‘일아말’을 경영 중인 아흐마드 사이드(38)는 “온도가 너무 올라 작물 생장에 문제가 생기니 돈이 더 많이 들어가고 있다”며 “그런데도 생산량은 줄어서 2019년과 비교할 때 우리는 30% 정도 감소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네덜란드, 스페인에서 들여오는 종자 가격도 최근 40% 이상 올랐다고 했다. 그의 농장은 포도, 오렌지 등 과일 37종과 토마토, 감자, 오이 등 채소 13종을 생산하고 있다.

 

아흐마드는 비용 상승과 생산량 감소에 대처하기 위해 재배면적을 늘리는 안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다만 이 또한 이집트의 자연 조건 때문에 쉽게 할 수 있는 결정은 아니다. 그는 “여기 부근이 모두 사막이라 노는 땅이 많은데 거기에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규모를 늘려볼 수 있다”며 “다만 물을 끌어오는 데 투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앞으로 생산성이 더 나빠질 걸 생각하면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아흐마드의 농장이 있는 곳은 베헤이라 지역 내 사막과 나일강 삼각주 경계였다. 나일강 삼각주는 이집트의 농업이 주로 이뤄지는 곳으로, 이집트 북부 지역 나일강 하류에 형성돼 지중해를 맞대고 있는 지형이다. 이집트 전체 면적(약 100만1450㎢) 중 나일강 삼각주(약 2만4000㎢)는 약 2%에 불과하다.

 

이런 여건 때문에 이집트의 식량안보는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후변화로 농업 생산성이 악화하는 중에 올해 2월부터 밀 주요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시작되면서 이집트의 식량 수급 불안정이 급격하게 심화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자료에 따르면 이집트 주식인 밀의 경우 연간 소비량 중 60% 가까이를 수입에 의존한다.

 

전 세계 탄소배출량 중 이집트가 포함된 아프리카의 기여도는 2.8%(2020년 기준)에 불과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아프리카와 같은 개도국에 집중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기후재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들 국가에 막대한 재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집트 정부는 기후변화로 심화하는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37년까지 500억달러(약 66조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샤름엘셰이크에서 진행 중인 COP27이 반환점을 돈 가운데 기자가 만난 이집트 농민 중 일부는 국제사회가 이집트와 같은 개도국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기자 지역 농장주 무함마드는 “각 나라의 힘 있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농장 ‘일아말’을 경영하는 아흐마드는 “미국 대통령도 샤름엘셰이크에 왔으니까 해결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1일 샤름엘셰이크를 방문해 이집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COP27 연설 일정을 끝낸 뒤 하루 만에 캄보디아로 떠났다. 미국은 전 세계 배출량 13.5%를 차지해 2위 국가다. 배출량 비중 30.6%로 1위인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COP27에 아예 참여하지 않았다. 비중 1.7%로 10위 국가인 한국도 윤석열 대통령 대신 나경원 기후환경대사가 대통령 특사로 참석했을 뿐이다. 일부 유럽 국가가 개도국 보상을 위한 ‘손실과 피해’ 기금 출연을 약속했지만 COP27에서 구체적 절차에 대한 합의까지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베헤이라=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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