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유네스코 ‘인종은 없다’
각계 학자들 연구 통해 공식화
현실은 뿌리깊은 인종주의 만연
혐오와 차별 역사 낱낱이 추적
박제된 비과학적 실체 꼬집어
인종이라는 신화/로버트 월드 서스먼/김승진 옮김/지와 사랑/2만5000원
인종(人種)차별은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문제다. 이미 국제 사회 중심이 된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양상의 인종차별 행태가 만연하다. 과학계에서도 DNA 구조를 규명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제임스 왓슨 같은 이가 2007년 인터뷰에서 “서구 사회의 아프리카 정책은 흑인과 백인이 동등한 지적 능력을 갖췄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모든 테스트 결과 사실이 아니다”며 “모든 사람의 능력이 같기를 바라지만 흑인 직원을 다뤄본 사람들은 그게 진실이 아니란 걸 안다”는 망언을 뱉을 정도다.

인종 갈등으로 세상이 들끓는데 이미 1950년 유네스코는 ‘인종은 없다’고 선언했다. 모든 인간이 동일한 종에 속하며 ‘인종’은 생물학적 실재가 아니라 ‘신화’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인류학자, 유전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등이 모인 국제 패널에서 방대한 연구를 거쳐 내놓은 성명은 모두 16개항에 이르는데 주요한 골자는 이렇다.
1. 과학자들은 인류가 ‘인간종(호모 사피엔스)’이라는 동일종에 속한다는 데 일반적인 합의에 도달했다.
2. 생물학적 관점에서 인간종은 특정 유전자 빈도에서 차이를 보이는 여러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3. 인종은 그러므로 인간종을 이루는 집단들의 집합들이며, 비록 상호교배 가능하지만 어느 정도 고립하여 특정한 형질적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인종주의의 기반을 부정하는 논의가 오래전 이뤄졌지만 현실은 요지부동이다. 영장류의 행동과 인간의 진화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가 쓴 신간은 아직도 뿌리 깊은 인종주의가 나타나 득세한 과정을 밝힌다. 서유럽 초기 인종주의에서 다윈발생설과 우생학의 결합, 그리고 우생학을 홀로코스트 등 최악의 전쟁범죄로 끌어간 나치 독일에서 벌어진 일들까지….

인류학자 프랜츠 보애스의 체질인류학이 등장하면서 우생학은 비로소 몰락하기 시작했다. 보애스는 두개골 모양 같은 신체적 특질도 환경의 영향으로 불과 한 시대 만에 달라질 수 있음을 입증했다. 또 인구 집단 사이의 사회적, 행동적 차이에 대해 생물학적 결정론보다 더 가능성 있어 보이는 설명을 제시했다. 그리고 인종 대신 과학적이고 인류학적인 ‘문화’ 개념을 발달시켰다.
이처럼 인류학자들은 한참 전에 인종이 생물학적 토대를 갖는 실체가 아님을 입증했다. 복잡성이 높은 인간 행동 중 ‘인종적’ 특성이라고 흔히 여기는 것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밝혀진 행동은 하나도 없다. 법 준수성, 경제 행위 등과 인종 사이에는 내재적인 관련이 없다. 코의 크기, 키, 혈액형, 피부색이 복잡한 인간 행동 중 어느 것과도 내재적인 관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종차별의 도구로 악용된 지능지수(IQ)도 마찬가지다.
“IQ가 단순한 유전적 특질이 아니고 측정이 쉽지 않다. 모든 측정은 지능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여기에는 문화적 편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종에는 생물학적 인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적 증거가 아주 많은데도, 현대 인종주의자들은 여전히 IQ가 측정할 수 있고 유전되는 단일 형질이며 인종이라고 불리는 무언가와 관련 있다고 주장한다.”
노골적인 인종주의 정책은 차차 완화되어 온 듯 보이지만, 인종에 대한 신화는 미국과 서유럽 전역에 아직도 건재하다. 저자는 생물학적으로 입증되는 인종 구분은 존재하지 않지만 문화적 인종주의는 존재한다며, 과학·지식과 인종주의 역사에 대한 평가를 무기로 인종주의와 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 역시 우리가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왔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배운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미국과 서구에 인종주의는 여전히 건재하다. 인간 사이의 차이의 진정한 속성과 인종주의의 역사에 대해 교육을 하는 것만이 우리가 무지, 증오, 두려움의 지속적인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길이다…우리는 인종이 생물학적 실재는 아니지만 문화적 실재임에는 명확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은 서로 다르지만, 주된 차이는 그들이 자라온 환경과 문화 때문이지 불변한다고 하는 모호한 생물학적, 유전적 차이 때문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말해서 호모 사피엔스는 하나의 종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고 역사를 알아야만 언젠가 모든 사람이 인종과 문화에 관계없이 존엄, 평등, 친절을 누리는 존재로서 대우받는 사회를 일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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