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특수 끝… 메모리 다운사이클
파운드리는 호황… TSMC 3분기 1위
삼성 영업익 31% 추락 SK ‘어닝쇼크’
미·중 패권경쟁에 낀 K반도체
반도체법 1년 유예됐지만 불확실성 커
국내 업계, 기술은 美·수요는 中 의존
中 견제용 ‘칩4’ 동맹 참여 여파도 우려
“제조 기반 강화·시스템 역량 확보”
“TSMC 성공, 대만 반도체 생태계의 힘
설계·제조업체 등 균형 발전 시너지 커
韓, 시스템반도체 기술·인력 투자 강화를”

글로벌 경기침체와 금리 인상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반도체 혹한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를 주력으로 삼고 있는 국내 반도체 기업에 닥친 추위는 더욱 매섭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면서 ‘슈퍼사이클’(호황기)이 찾아왔지만, 주문량 급감과 가격 하락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다운사이클에 진입했다. 미·중 간 반도체 패권전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TSMC 전 세계 반도체 매출 1위 ‘충격’… 파운드리 생태계 강화해야
올해 3분기 글로벌 반도체 기업 매출 1위는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였다. 그간 매출 1위를 엎치락뒤치락하던 삼성전자와 인텔을 모두 제치고, 반도체 매출 세계 1위를 기록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파운드리만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 반도체 관련 모든 것을 다루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인 인텔과 삼성전자를 제친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운드리 시장의 급성장과 더불어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불황, 반도체 제왕인 인텔의 쇠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동시에 더는 메모리 반도체만으로는 반도체 산업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메모리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메모리 업황 악화에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31% 넘게 감소했고, SK하이닉스도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우리 기업들도 파운드리 사업에서 TSMC와 격차를 좁혀나가기 위해 맹추격 중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TSMC보다 앞서 3나노(㎚·1㎚는 10억분의 1m) 제품을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이달 초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2’에서 2025년까지 2나노, 2027년부터 1.4나노 공정을 적용한 반도체 양산을 시작하겠다고 공표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파운드리 점유율은 직전 분기보다 0.2%포인트 상승한 16.5%를 기록하며 1위인 TSMC(53.4%)와 격차가 소폭 줄어들었다.
그러나 전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TSMC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수율(생산품 대비 양품 비율)과 고객사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TSMC는 최근 ‘2022 세계 반도체 대회’를 통해 자사 3나노 공정 수율이 80%에 달한다고 공개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TSMC 4나노 공정 수율 역시 70% 정도로 알려져 있다. TSMC가 스스로 강점으로 꼽는 경영철학은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TSMC는 고객 맞춤형 제품 생산을 통해서 애플과 엔비디아, 퀄컴 등 대형 고객사부터 영세한 고객사까지 9000개에 가까운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다.
산업입지연구소 김광일 책임연구원은 “TSMC의 성공은 생태계의 힘”이라며 “대만은 팹리스(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 후공정 분야 선두 업체들이 균형 있게 발전하고 있어 산업 간 시너지 효과로 기획부터 제조까지 고객 맞춤형 제조가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까지 균형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중 반도체 패권갈등 심화도 풀어야 할 숙제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기술패권 경쟁도 우리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다. 미국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 각종 제재를 가하는 과정에서 국내 기업에도 그 여파가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달 초 중국 업체들에 대한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을 통제하는 정책을 내놨다. 미국은 중국에 생산시설을 둔 해외 업체에 대해서는 건별 심사를 통해 장비 반입을 승인하겠다는 방침이다.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수출 통제 조치를 1년 유예받았지만, 장기적으로는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앞서 미국은 자국 주도로 반도체 생산의 안정화와 공급망 형성을 위해 한국과 대만, 일본이 협력을 강화하는 ‘칩(Chip)4’ 동맹을 추진하며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다툼 등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술·인력 투자를 통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반도체 산업 구조상 생산은 미국 기술이 필요하고 수요는 중국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한 방향으로 노선을 정하기 어렵다”며 “우리는 현재 강점인 반도체 제조 기반을 강화하고 시스템 반도체 역량을 확보해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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