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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샤 → 게샤로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 [박영순의 커피 언어]

입력 : 2022-10-15 19:00:00 수정 : 2022-10-14 19: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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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샤(Geisha) 커피가 2005년 파나마에서 고가에 낙찰됐을 때, 커피 애호가들은 일본을 부러워했다. 일본에서 예능인을 지칭하는 게이샤(藝者)와 표기가 똑같은 탓에 일본 커피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영국인이 생식세포은행에 품종을 등재할 때, 에티오피아 말인 게샤(Gesha)를 발음하기 좋도록 ‘i’를 끼워 넣은 게 문제였다. 한순간의 무심함으로 인해 게샤는 자신을 품어낸 에티오피아 땅이라는 의미가 산산이 부서졌고,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으로 거의 한 세기를 허공에 맴돌고 있다.

콜롬비아 한 농장에서 자라고 있는 게샤 커피 묘목. 농장주는 올 시즌 수확물부터 게샤(Gesha)로 표기를 바꾸기로 했다. 커피비평가협회(CCA) 제공

이름은 그 사물의 본질과 혼을 담기 때문에 함부로 부를 게 아니다. 커피 품종 이름에는 각각 다양한 사연이 들어 있다. ‘에어룸(Heirloom)’은 사전적으로는 ‘가보’를 뜻하는데, 에티오피아에서 대를 이어 자생하는 품종 또는 유전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야생 품종을 뜻한다. 에어룸 중에서 몇 그루가 다른 나라로 가서 자라나 대를 이어 증식하면 유전적으로 단일한 품종이 무리를 이루어 재배종이 되면서 고유한 이름을 얻게 된다.

티피카(Typica)는 15세기나 16세기경 에티오피아에서 예멘으로 전해진 소수의 나무들이 그룹을 이룬 것이다. ‘상징적인’ 또는 ‘구체적인’을 의미하는 라틴어 티피쿠스(Typicus)에서 비롯됐는데, 에어룸에서 “유전형이 특정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티피카는 유전적으로 ‘아라비카 원종’으로 분류되고, 이후 인도에 전해져 찬드라기리, 인도네시아에서는 자바, 자메이카에서는 블루마운틴으로 불렸다.

티피카, 게샤와 함께 3대 아라비카 원종으로 꼽히는 버번(Bourbon)은 프랑스 부르봉 왕조에서 따온 이름이다. 동아프리카에 접한 서인도양의 프랑스령 부르봉섬(현 레위니옹섬)에서 그룹을 이루어 브라질로 전해져 꽤 오랜 기간 가장 많이 재배되는 품종이 됐다. 버번은 18세기에 들어 예멘의 커피나무를 섬으로 옮긴 것이어서, 처음에는 티피카로 알았다. 그러다 나무의 모양과 커피 향미가 달라 한때 티피카의 돌연변이종으로 분류되기도 했으나 유전자 분석 결과 에어룸에 토대를 둔 원종임이 확인됐다. 부르봉은 ‘진흙(Borvo)’을 뜻하는 켈트어에서 유래됐다.

버번에서 파생된 많은 품종 가운데 ‘시드라(Sidra)’ 또는 ‘버번 시드라’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시드라는 2019년 세계바리스타대회에서 우승한 한국의 전주연이 사용한 품종이다. 나무가 그늘을 좋아하고 씨앗의 모양도 날씬하고 길쭉한 것이 게샤와 유사하다. 당시 대회에서는 이 품종을 레드버번과 티피카의 교배종이라고 소개했지만, 에티오피아 에어룸에 뿌리를 둔 원종일 것이란 기대를 낳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커피 품종 개량이 가속화하고 있다. 병충해를 이겨내면서도 맛이 더 좋고 수확량도 많아야 한다. 이로 인해 교배와 선택, 돌연변이 유발 등 다양한 기법이 혼합돼 이름 짓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름은 혈통을 아우르고 그 의미를 집약해야 한다. 이런 마당에 발음하기 좋으라고 없는 글자를 넣어 게이샤로 부른 것은 참으로 무심한 일이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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