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부동산 개발업체가 사들여 콘도 건설 추진
참전용사 후손 등 수천명 항의 편지… 결국 무산돼
“캐나다인의 피가 그토록 많이 뿌려진 곳에서 어떻게 개발을 진행할 수 있단 말이오?”

제2차 세계대전 판도를 바꾼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캐나다군이 상륙한 지점을 리조트로 개발하려던 프랑스 업체의 계획이 무산됐다. 해당 부동산 개발업체가 해안가 토지 매입에 나선 지 꼭 3년 만이다. 캐나다의 2차대전 참전용사와 그 후손들이 프랑스 및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총력을 다한 끝에 개발을 저지한 것이다.
7일(현지시간) 영국 BBC에 따르면 캐나다 국가보훈부는 이날 400만캐나다달러(약 41억원)를 들여 노르망디 ‘주노’(Juno) 해변의 캐나다군 상륙 지점이 포함된 토지를 구매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주노는 원래는 없는 가공의 지명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연합군이 선정한 5개 상륙 지점 중 하나에 붙여진 일종의 암호다. 5개 지점 중 ‘유타’(Utah)와 ‘오마하’(Omaha)에는 미군, ‘골드’(Gold)와 ‘소드’(Sword)에는 영국군, 그리고 주노에 캐나다군이 각각 상륙했다.
프랑스 부동산 개발업체 ‘퐁심’은 주노 해변 일대의 땅을 사들여 2개동의 대규모 콘도미니엄 건물을 지은 뒤 고급 숙박시설 등으로 활용함으로써 그 일대를 리조트로 탈바꿈시키려는 야심찬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토지 매입 및 기초공사 단계에서부터 캐나다인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주노 해변과 캐나다의 숭고한 관계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1944년 6월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일을 뜻하는 디데이(D-Day) 하루 동안에만 주노 해변에 상륙한 캐나다 장병 381명이 숨졌다. 노르망디 해안가를 점령하고 안전한 교두보를 만들기까지 약 5500명의 캐나다군이 독일군과의 교전에서 목숨을 잃었다. 2차대전 기간 프랑스 등 서유럽 전선에서 전사한 캐나다 군인은 총 4만50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의 넋을 기리고자 2002년 주노 해변에 박물관 겸 추모시설인 ‘주노비치센터’(Juno Beach Centre)가 들어섰다.

캐나다인들은 퐁심이 개발하려는 콘도미니엄 부지가 주노비치센터 바로 옆이란 점을 알고 “캐나다인이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린 곳을 어떻게 개발할 수 있느냐”며 격분했다. 참전용사 및 그 후손들을 중심으로 캐나다인 수천명이 프랑스와 캐나다 양국 정부 관료들에게 “개발 계획을 당장 중단하라”는 내용의 항의 편지 보내기 캠페인을 전개했다. 캐나다 정부는 부동산 개발을 막기 위한 소송에 직접 당사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 3년 만에 법적 분쟁이 마무리되고 해당 토지는 캐나다 정부가 구매해 주노비치센터 측에 향후 99년간 무상임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주노비치센터의 관리자이자 예비역 준장인 에니스트 베노는 “개발이 진행됐다면 캐나다인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려는 우리 노력을 위협했을 것”이라며 “도움을 준 모든 캐나다, 그리고 프랑스 국민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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