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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공공 극장엔 시장·정치 논리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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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05 22:57:22 수정 : 2022-10-05 22:5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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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가르고 수익에만 치중… 예술생태계 황폐화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이 ‘백범일지’ 끝에 소개한 ‘나의 소원’ 중 일부다. 많은 사람이 들어봤을 터다. 백범은 “인류가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와 자비,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라고 하면서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이 되길 원했다. 김구 선생 사후 7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소원은 얼마나 이뤄졌을까.

이강은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물론 K팝·영화·드라마를 앞세워 전 세계를 휩쓰는 ‘한류 열풍’은 매우 고무적이다. 정부와 정치권도 한류 인기에 편승해 ‘문화강국 코리아’를 입에 달고 산다.

그렇다고 백범이 하늘에서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대중문화 중심 한류 열풍의 뿌리가 되는 순수·전통 예술 분야 생명력이 위태로운 지경이다. 문화예술계에선 헌법에도 있는 국민의 문화 향유를 위해 다양한 순수예술 분야를 지원하고 키워야 할 공공 영역에서마저 수익성을 우선시하는 시장 논리와 ‘우리 편이냐, 표심에 도움이 되느냐’를 따지는 정치 논리에 눌린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중앙·지방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는 전국 수백 개 문화예술기관(극장·공연장)만 해도 운영 상황이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능력이 검증된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자율성을 보장받으며 책임지고 잘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 곳도 상당하단다. 공무원들이 인사 때마다 돌아가며 책임자를 맡거나 당선자 측의 낙하산 인사가 폼만 잡고 앉았다 가는 바람에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에 따라, 또는 국회나 지방 의회에서 공공 극장의 최우선 가치가 마치 수익성인 듯 걸핏하면 적자 운영과 프로그램별 티켓 판매율(좌석 점유율)을 걸고넘어지는 행태도 문제다. 단체장과 소속이 다른 의회 다수 당의 갈등에 잡혀 있던 문화예술 행사가 차질을 빚기도 한다고.

이 때문에 상당수 공공 극장 프로그램이 소수의 유명 대중 가수·클래식 연주자·오케스트라·뮤지컬 공연 등 극장을 꽉 채울 만한 프로그램에 치우친다. 특히, 순수예술의 경우 지명도가 높고 티켓 파워가 있는 예술가가 무대에 오를 때를 빼곤 클래식이든 연극·오페라·발레·무용·국악이든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기 쉽지 않은 셈이다. 자연스레 콘텐츠가 빈약해진 극장들은 연중 문을 열기도 벅차다. 이 때문에 신진 예술가와 순수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설 수 있는 무대를 찾아 헤매는 게 다반사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 역시 취향에 따라 다양한 문화예술을 맛보며 문화예술 감수성을 키우고 정신적 여유를 갖기가 힘들다. 이런 악순환이 우리 문화예술 생태계를 황폐화한다. 백범의 바람과는 거꾸로 적개심과 무자비가 판치는 사회가 돼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한 클래식계 인사의 호소다. “독일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문화예술은 한번 파괴되면 되살리기 어렵다’며 한국인 연주자 등 외국인까지 포함한 예술인들에게 기초생활비를 지급했어요. 정부와 정치권이 보건소에는 ‘왜 수익을 안 내냐’고 뭐라 하지 않잖아요. 공공 극장도 ‘시민 복지’ 차원에서 바라보고 지원했으면 좋겠습니다.” 공공 극장은 남녀노소 누구든 좋고 다양한 예술 작품을 부담 없이 즐기면서 꿈을 꾸고 위안을 얻는 공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겨들을 만하다.


이강은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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