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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 재연되는 외환위기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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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04 23:32:09 수정 : 2022-10-04 23:3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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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달러 속 물가·무역 등 곳곳 비상
당국 “과거 위기와 다르다”지만
‘가계·나랏빚 등 더 심각’ 지적 일어
서민 위한 정책 방파제 마련 시급

‘○○그룹 부도’. 기업의 이름만 바꿔가며 신문과 방송엔 몇개월간 매일 비슷한 뉴스가 쏟아졌다. ‘정리해고’라는 낯선 칼에 베인 이들이 길거리에 수두룩했다. 일부는 서울역 노숙인으로, 또 다른 이들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졸업반이던 내게 열렸던 좁은 취업문은 굳게 닫혀 버렸다.

800원대 초중반이던 원·달러 환율은 1997년 12월23일에는 1962원까지 치솟았다. 은행 금리는 미친 듯이 올랐고, 은행의 1년 확정금리가 20%인 예금 상품까지 나왔다. 주식시장에서 ‘반의반 토막’은 기본이었고, 집값은 바닥을 모른 채 추락했다. ‘단군 이래 최대 환란’이라고들 했다.

이천종 경제부장

떠올리고 싶지 않던 25년 전 외환위기의 악몽이 요즘 다시 스멀거리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은 1997년처럼 아시아 금융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킹달러’ 흐름 속에 아시아의 경제·무역 강국인 일본과 중국의 통화가치가 급락하면 글로벌펀드들이 아시아에서 자금을 대량으로 회수해 진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무역수지 흐름만 놓고 보면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상황이다. 지난달 37억달러가 넘는 무역적자가 발생하면서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6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무역수지 적자가 48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206억2000만달러의 2배가 넘는다.

미국의 긴축 여파로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을 넘어서더니 이젠 1500원도 위협한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건 외환위기와 세계 금융위기 때뿐이다.

올 6월과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0%, 6.3%를 기록했다. 두 달 연속 물가상승률이 6%대 이상을 기록한 건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10월(7.2%), 11월(6.8%) 이후 처음이다.

부정적인 지표를 보고 있으면 외환위기 때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난다.

과연 한국경제는 지금 퍼펙트스톰의 중심으로 진입한 것인가. 이제라도 핸들을 바로잡으면 폭풍을 피할 수 있는 지점을 지나고 있는가.

일단 우리 경제사령탑은 충분히 위기를 피할 수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외환보유액이 충분하고 대외 건전성도 양호해 복합위기 국면을 견딜 체력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외환보유액은 올해 8월 기준 4364억3000만달러로 1997년 말(204억1000만달러)의 약 21배 수준이다. 대외자산도 2분기 말 기준 2조1235억달러로 1997년의 1176억달러, 2008년의 5328억달러를 크게 웃돈다. 한 나라의 화폐가 지닌 실질적인 구매력을 측정하는 지표인 실질실효환율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은 103.03으로, 일본의 엔화(70.14), 유로존의 유로화(88.35)보다 양호한 모습이다. 한국은행도 국회에 제출한 현안 보고서에서 “최근 환율 상승은 미국의 긴축 강화, 글로벌 달러 강세라는 대외 요인에 주요 기인하며 우리나라 대내외 건전성이 양호하다는 점에서 과거 두 차례 위기(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와 다르다”고 단언했다.

재정·통화당국의 판단은 다행이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가계부채와 재정건전성, 후진적 정치환경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지금이 외환위기 때보다 되레 심각하다는 지적도 적잖다. 올해 2분기 가계신용 잔액은 1869조4000억원으로 2003년 통계 집계 이후 역대 최고치다. OECD가 집계한 한국의 가구 가처분 소득 대비 가구 부채 총액 통계를 보면 2008년 138.5%였던 것이 지난해 200.7%로 급증했다. 2017년 660조2000억원이었던 국가채무는 코로나19를 거치며 올해 1037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쟁만 난무하는 후진적 정치 환경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 경제 발목을 잡고 있다. 가계부채와 국가채무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정치환경 개선은 의지의 문제다. 4일 막 올린 국정감사에서 여야가 벼랑 끝에 몰린 서민을 위한 정책 방파제를 마련하는 데서 협치의 싹을 틔워보자!


이천종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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